흔적 남기는 습관 (67)
카스테라를 만들어보았다

정말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대폭발 중.

그 와중에 카스테라가 너무 땡기는 것이다. 카스테라를 구할 수 없으니 스스로 만들 수 밖에.

레시피를 급히 찾아보니 일단 보기에는 그냥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고 작업자체는 길지 않은 것 같아, 그래, 딱 1시간만 쉬는 겸 하자는 마음으로 카스테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제대로 된 도구가 없는 내게 이 작업은 1시간 짜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달걀을 섞는 것과 달걀을 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빨리 깨닫지 못했고, 왜 다들 유산지를 깔아대는지를 진작 이해하지 못했다.

안일하게 달걀은 안되면 믹서기 (믹서기에 'whip'라는 버튼이 있었다. 나중에 매뉴얼 보니까 달걀 휘핑은 등은 안 된다고 친절히 나와있었음...)를 쓰고, 유산지 대신 기름을 바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서 핸드블렌더는 커녕 손거품기도 없는 상황에 튀김용 젓가락 네 짝을 들고 노른자가 들어간 달걀을 1시간 넘게 쳐댔다...

저울이 없어서 모든 계량은 컵으로 환산해서 했고 

용기에 반죽을 좀 과하게 넣어서 베이킹 중 반죽이 넘쳐 오븐 바닥을 태우는 일도 있었다. 

기름을 바른 유리용기로는 카스테라가 예쁘게 떨어지지도 않아서 갈색 부분은 다 떨어져 나갔다.


아직 식지도 않고 숙성도 안 시킨 카스테라인데, 살짝 잘라서 먹어보니까 아랫부분이 반쯤 떡이 된듯 하다. 게다가 뭔 꿀을 썼는지 온통 꿀맛... 아니 맛있다의 꿀맛이 아니라 진짜 꿀향기가 아주 진하게 난다.

재료값도 못 뽑을 카스테라지만 그래도 손거품기도 없는 상태에서 젓가락만으로 이 정도로 만들었으면 훌륭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로 함... 


결국 아마존에서 6불주고 손거품기 방금 주문했다. 생각보다 카스테라 비싼 음식이었구나.. 달걀이랑 꿀이 너무 비싸다....설탕도 엄청 들어가는구나 (....)

그래도 서울서 자취할 때 아주 처절하게 실패했던 밥통 카스테라보단 결과가 조금 더 나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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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Shenzhen I/O (선전 I/O)

작년 연말, 연쇄할인마 스팀의 여러 신기한 게임들을 둘러보던 와중 우연히 한 게임이 눈에 띄었다. 

"Shenzhen I/O"라는, "선전 (심천/深圳)"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정체가 뭐든 무조건 사야만 해! 라는 일념으로 질렀다. 왜냐면 나는 심천을 연구하니까...그리고 난 게임을 좋아하니까... 관심있는 지명이나 지역 정보 등이 컨셉이 되는 게임들은 가급적 모아두려고 하고, 영화들도 꼭 기록을 해두려하는 편이다.

아무튼 그렇게 즐겁게 게임을 지르고 지난 달 어느 주말, 이것은 연구의 일환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게임을 시동해보았다.




정말 아무 설명 없이 로딩화면이 지나자마자 이런 화면이 뜬다. 심지어 그 로딩화면 조차도 개발사인 Zachtronics의 화면이 아니라 "概念CS"라는 게임 내 프로그램명이 뜬다... 난 진지하게 중국 쪽에서 개발한 게임인가 생각했다. 

Shenzhen, Huaqiangbei District-CAM 04-LIVE라고 쓰여진 글자는 마치 해당 지역에 CCTV를 라이브로 보여주는 듯한 착각을 준다. 나는 무척 흥분했다. Huaqiangbei (华强北/화창베이)는 실제 심천의 전자기기 메카같은 곳이다. 쉽게 설명하면 용산 같은 곳이지만 용산과는 비교도 안되는 인력과 자본, 상업 네트워크가 집적된 곳이다. (물론 이곳에도 온갖 종류의 호객행위가 넘쳐난다....) 참고로 라이브카메라는 아닌 듯 하다. 비가 오는 것 같은 날씨로 표현되었는데 심천은 쨍한 더운 날이었다... 

게임의 정체를 전혀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대뜸 받았는데, 알고보니 이 게임은 내가 여태껏 해본 그 어느 게임보다도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이었다...


초반에 접속하면 스크린샷 화면에 나오는 버튼 중 Solitaire을 제외하고 세 가지가 있다. 뭘 해야할지 몰라서 일단 conceptMAIL을 열어보니 "Welcome"을 비롯한 각종 메시지들이 등장한다. 만약 온라인 게임이라면 공지사항이겠거니와 하고 무시하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읽어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글이 많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Shenzhen Longteng Electronics Company LTD. (深圳龙腾科技有限公司, Longteng은 롱텅이라 읽으면 됨)에서 일하게 된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말 앞뒤 설명 다 자르고 바로 회사에서의 웰컴 패키지(...)를 받는 사원의 입장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사원들의 이메일 교신들을 통해 대충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하는 일은 어떠한지, 심천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이 게임이 기초하고 있는 배경은 어떠한지 등을 유추해낼 수 있다. 물론 게임 플레이 그 자체와는 별 관계는 없지만 뭔가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재미는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어 못하는, 취업전선에 밀리고 밀려 심천에 난생 처음 떨어진 외국인 (아마도 백인) 남자 근로자 정도를 상정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게임의 포인트 1: 게임의 메시지함을 통해 플레이어의 상황 및 각종 배경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바로 그 다음 메시지는 Important: Read the Manual!이다. 매뉴얼을 읽어라는 내용인데, 이거 농담이 아니다. 이 게임의 가장 주요 포인트를 요약하자면 RTFM(READ THE F**KING MANUAL) 정도가 된다. 

메시지함을 닫고 두번째 메뉴인 "Datasheet"를 누르면 매뉴얼이 뜬다.... 무려 47페이지짜리 PDF가 뜬다... 처음엔 이게 그냥 게임 플레이 설명하는 가이드나 매뉴얼인 줄 알고 안 읽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어, 그게 맞긴 한데 그게 아니기도 하다. 뭔 소린고 하니: 


이런 게 튀어나온다. 무슨 말도 안되는 기기부품 매뉴얼 같은 게 나온다. 일단 매뉴얼 보고 크게 멘붕 한 번 하면 된다. 

이 게임의 주인공(=플레이어)는 어셈블리어를 이용해서 간단한 회로를 디자인 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고, 출근 첫날 각종 지시 메일과 웰컴패키지로 디자인 매뉴얼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런 것까지 파악하는 데에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왜냐면 나는 코딩할 줄도 모르고 어셈블리어니 뭐니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없다.) 

매뉴얼 패키지에는 각종 부품들의 매뉴얼(...)들이 들어있다. 예컨대 위의 캡처화면 오른쪽의 부품은 청샹Micro (诚尚Micro)라는 가상의 회사에서 나온 MC6000이라는 Microcontroller 칩의 매뉴얼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게임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부품들과, 부품들이 사용하는 어셈블리어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 여기저기 예제 등과 함께 나와있다. 

이 게임의 포인트 2: 매뉴얼을 통해 (게임 내에서만 통용되는) 어셈블리어의 단어들, 규칙, 문법을 파악하고, 각종 부품들의 기능을 알아본다. 


참고로 이 매뉴얼의 재미있는 점. 진짜 어디 회사에서 무책임하게 줄 것 같은 매뉴얼을 잘 재현해두었다. 그 말은 곧:



가끔 이렇게 자비없이 중국어로만 되어 있는 페이지도 나오고 (중국 회사니까), 혹은 다른 자료를 사진찍어서 끼워넣은 것 같은 자료들도 나온다. ^-^ 참고로 이 게임은 영문 게임이다. 중국어를 읽을 수 없는 것이 퍼즐의 일부가 아닌가 싶다. (난 중국어를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게 뭔 소린지는 모르겠다.) 


매뉴얼에 크게 멘붕하고 다시 메인 메뉴로 돌아오면 다른 "퀘스트"(업무지시) 이메일들이 와있다. 해당 메시지를 열어보면 어떤 회로를 디자인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나와있고, 하단의 "Open in Concept CAD"를 열면  버튼을 클릭해보면 이 게임의 핵심인 "개념 CAD" (概念CAD, 중국어로 개념이라는 단어가 컨셉이라는 뜻을 가짐...어라 한국어도 그런가) 프로그램이 뜬다.  

참고로 이건 이미 클리어 된 게임이라 이미 업무 확인 메일이 와있다. 원래 오리지날 퀘스트는 이미테이션 CCTV용 회로를 디자인 하는 것으로, 두 개의 등이 불규칙한 느낌으로 켜지게 하는 게 목적이다. 



역시 클리어한 업무라 각종 도표가 나와있다. 이게 뭔고 하니,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하였을 때 내가 디자인한 회로가 1) 생산 비용; 2) 전력소모; 3) 코드 라인 수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도표다. 정답이 있는 게임 같지만 꼭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임은 아닌 셈이다. 이미 디자인한 회로를 부품 추가라든가, 어셈블리어에 익숙해짐에 따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재디자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화면을 켜면 대충 이렇게 나온다. 나는 이미 퀘스트를 몇 개 클리어해서 부품이 더 언락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Note, Bridge, MC4000만 언락되어 있다.

Note는 그냥 플레이어가 스스로 메모할 때 쓸 수 있는 포스트잇이라고 보면 된다. 

Bridge는 회로를 연결할 때 (기기 내 초록색 부분) 회로가 겹치지 않도록 해주는 말 그대로 '브릿지'다. 첫번 째 퀘스트에서는 쓸 일이 없다. 

MC4000은 예제에서 사용된 가장 기본 칩이다. 이거 하나 쓸 때마다 생산비용이 늘어난다.


예제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mov 0 p0
slp 6
mov 100 p0
slp 6

# why is this
# so hard? :(


앞서 컨셉 메일을 잘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원래 일하던 회로디자이너가 때려치우고 도망가서 플레이어가 고용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예제는 지난 디자이너가 작업하다 때려치우고 간 결과물(...)

이제 여기서 플레이어가 해야할 일은 예제물과 매뉴얼을 끼고 이 어셈블리어의 규칙을 파악하여 조건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하단의 메뉴에는 Information과 Verification이 있는데, 원하는 디자인을 만든 다음 Verification 버튼을 눌러 제대로 회로가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Verification 화면을 통해 저 예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규칙을 배울 수도 있다. 

이 게임의 포인트 3: 매뉴얼 등을 통해 파악한 어셈블리어와 규칙들을 이용해 조건에 맞는 회로를 디자인한다. 

가급적 타블렛이든 듀얼 모니터든 인쇄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매뉴얼을 옆에 같이 끼고 하는 것을 아주 강력히 추천한다. 퀘스트가 늘어날 수록 매뉴얼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디자인이 끝난 회로의 Verification 화면이다. 지시받은 업무의 목적에 맞는 회로를 디자인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단 위의 예제와 Verification에서 나타나는 패턴, 매뉴얼의 내용을 참고할 때 플레이어가 유추할 수 있는 게 몇 가지가 있다:

1) #를 붙인 건 메모다... 작동 안함.

2) mov는 말 그대로 전기 신호를 옮김을 의미한다. mov 뒤의 숫자는 양을 의미한다. 즉, mov 0의 경우 신호를 운반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mov 100의 경우는 100에 해당하는 신호를 운반함을 의미한다. 

3) mov 숫자 뒤에 따라오는 것은 전기 신호를 어디로 옮기는가를 보여준다. 즉, mov 100 p0은 p0으로 100의 신호를 보낼 것을 의미한다.

4) slp은 sleep을 의미하며, slp 뒤에 따라오는 숫자에 따라 해당 사이클만큼 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에 기초해서 두번 째 파츠를 다음과 같이 코딩하면, verification 화면의 패턴을 따라가는 신호를 생성할 수 있다. 

mov 0 p0
slp 4
slp 2
mov 0 p0
slp 1
mov 100 p0
slp 1


여기까지 하고 나니 내가 시방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디자인 verification을 거친 후 다시 concept mail로 돌아가면 업무확인 메시지와 함께 앞서 잠깐 설명했던, 내가 디자인한 회로의 성능/효율 등을 표기한 그래프가 나온다. 


그리고 이건 예제에 불과했다... 갈수록 퀘스트=업무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네온사인 회로 디자인 하는 퀘스트만 해도 첫 번째 퀘스트에 비해 보다 복잡하다. 


완료하면 업무 확인 메일과 함께 그래프가 나온다. 보다시피 MC4000 부품을 세 개 썼고, 브릿지를 사용했다. 코드는 다음과 같다: 

mov acc p1
not
mov acc p0
slp 1


mov 100 p0
slp 6
mov 0 p0
slp 1
mov 100 p1
slp 2
mov 0 p1
slp 1


slp 6
mov 100 p0
slp 1
mov 0 p0
slp 2
mov 100 p0
slp 1
mov 0 p0


전력효율이 다소 떨어지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코드라인수는 1-2줄 정도 적은 무난한 회로 디자인인 것 같다. 

아직 많이 깬 건 아닌데, 초반에 진짜 이렇게까지 고생한 게임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그 주사위 게임용 카운터 회로 디자인할 때에는 공략이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정말 1시간 넘게 씨름했던 것 같다.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할 만 할 것 같다. 난 기본적으로 이런 "언어"들이니 "문법"이니 하는 것 자체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어서 집념과, 다른 회로들에 대한 유투버들의 공략들을 참고해가며 끼워맞춰갔다. 

간혹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결한 코드를 짜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경탄스럽다...

이 게임의 포인트 4: 코드의 이해도 및 부품 증가 등에 따라 회로를 보다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남들의 디자인과 비교해서 내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보는 것도 꿀잼. 

(세상은 넓고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주 많이 느낄 수 있게 된다.)


덧붙여 스스로 회로의 목적을 설정하고 코드를 짠 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퀘스트도 있다. 난 하지 않았지만, 컨텐츠를 늘리는 차원에서도, 또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있는 퀘스트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목적을 이미 주어준다.) 

이 게임의 포인트 5: 생각보다 열려 있는 게임의 목적성. 


아, 그리고 보너스 퀘스트가 하나 있다. 팀장이라고 해야하나 주임이라고 해야하나, 매니저라고 해야하나. 플레이어에게 지시를 내리는 장지에 (张杰 Zhang Jie)가 딸이 디자인한 게임이라며 솔리테어 게임을 하나 던져준다. 단순한데 일반 솔리테어 보다는 좀 더 어려운 게임이다. 스팀에 이 솔리테어만 따로 풀려있기도 하다. 


이 게임의 보너스: 솔리테어 게임.


그 밖에도 다른 컨텐츠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일단 여기까지. 


이 게임은 분명 일종의 퍼즐 게임임에는 틀림 없는데, 구성이라든가 컨셉 같은 게 좀 특이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이게 일을 하는 건지 게임을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게임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쯤 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은데 (덕분에 코딩이라는 것을 배울 용기가 생겼다는 게 함정이다), 진입장벽이 정말 상당히 높다. 

1) 분명 47페이지나 되는 매뉴얼이 있는데 막상 켜보면 뭐하는 게임인지 잘 모르겠음.

2) 코딩의 ㅋ자도 모르는 플레이어게는 헬헬헬한 난이도. (=접니다...) 그나마 해외 유투버들의 공략을 보며 따라하다보면 아, 이게 뭔지 알겠다 싶은 느낌이 들기는 함.

3) 영어. (중국어를 잘 해도 영어를 못하면 이 게임은 도저히 플레이 할 수 없다는 게 개그.) 텍스트의 양이 제법 방대하고, 특히 디자인하는 회로의 목적을 설명한 부분을 자세히 읽어봐야 하므로 영어를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추천할 수 없는 게임. 매뉴얼 뒤지기도 힘든데 사전까지 뒤지라는 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래도 기본적인 영어가 된다면, 또한 특히 코딩 좀 하실 줄 아는 분들은 다른 공략들 따라가면서 규칙성 맞춰가면 어떻게든 게임 자체는 플레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게임 프로그램 자체가 매우 가볍고, 플레이 시간도 (유저마다 갭이 엄청 크겠지만) 제법 길다. 나 같은 코딩 멍청이에겐 필연적으로 매우 긴 플레이시간을 보장하는 게임이다... 뭐 특별히 시간제한이 있거나 다른 압력의 요소가 없는 게임인지라 하다보면 괴로운즐거운 마음으로 뇌를 괴롭히며단련시키며 시간을 삭제시킬 수 있다. 


유저 리뷰들도 재밌다... 시간당 120불 받으면서 할 일을 내돈 17불을 주고 하고 있다라든가,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잡시뮬레이터라든가, 디자인하다 빡친다든가... 뭐 뇌를 탓하는 슬픈 리뷰들이 이 게임을 강추하고 있다. 저도 조심스레 이 게임을 추천해봅니다. 



참고로 이 게임의 개발사인 Zachtronics는 예전에도 이런 매우 공대스러운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며, 그 후속작이 선전 I/O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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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카르타 14개월 사용기

2주 사용기 리뷰 보기 (2015/11/24): http://hyvaamatkaa.tistory.com/186 

알라딘발 크레마 카르타 사용기 업데이트 (2015/12/16): http://hyvaamatkaa.tistory.com/193



블로그 유입 내역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해외"에서의 "크레마 카르타" 이용후기를 보러 온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오랜만에 한 번 업데이트 해봄. 


1. 설탕액정이라는데 액정은 멀쩡한지

2015년 11월에 샀으니 약 14개월 정도 됐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액정은 아직은 멀쩡하다. 애초에 딱히 불량화소도 없었고, (해외에서 주문한 거라 있었어도 별 수 없었을 테고) 주로 방구석에서 사용해서 그런지 크레마를 떨구거나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케이스 (아마존 발 케이스 + 뾱뾱이)에 넣은 크레마를 백팩에 담고 다니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멀쩡하다. 솔직히 책이랑 물건 많을 때 넣으면 압력 때문에 화면이 나갈까봐 좀 불안한 면도 있어서 뾱뾱이를 아주 충실히 감도록 노력한다. 


2. 펌업

의외로 한국이퍼브가 지난 14개월 간 열심히 펌업을 돌리고 있다. 솔직히 첫 몇 달만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올... 하지만 해외에서의 펌업 파일 다운 받는 속도가 극악이라 펌업을 하지 않은지 조금 오래되었다. 현재 들어있는 펌은 1.4.59고 최신버전은 1.4.66이니...

솔직히 말해서 따로 펌업파일을 컴퓨터로 다운받아 크레마에 설치할 수 있는 공식루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크레마는 컴퓨터만큼 인터넷 연결이 안정적이지는 못해서 중간에 다운받던 파일 날라간 게 한 두 번이 아님. 특히 화면에 절전모드가 들어가면 와이파이도 자동으로 꺼지기 때문에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 그 뒤로 업그레이드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3. 터치감

그간의 펌업을 통해 아주 초창기에 비해서는 터치감이 조금 개선된 것 같다. 그래도 핸드폰이나 타블렛 이런 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냥 크레마 쓰다보면 인내하는 마음가짐을 익히게 된다. 기대하지 말고 맘편히 쓰는 게 좋다. 독서노트 같은 건 그냥 폰이나 컴퓨터로 따로 작성하는 걸 추천. 


4. 서점 및 구매 목록

크레마가 생기고 미친듯이 이북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한동안 리디에서 50년대여인가 하는 초대형 이벤트를 돌리면서 미친듯이 재고를 쌓아서 지금 정말 앞으로 근 10년 내에는 절대 읽을 수 없는 양의 이북을 크레마 안에 넣고 다닌다.ㅠ 크레마가 문제가 아니라 크레마가 유발하는 지름신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먼 해외에서 한글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무척 고맙긴 하다. 학교 도서관에 제법 괜찮은 한국어 장서가 비치되어 있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물론 이북도 완벽하지는 않다. 아니, 사실 없는 책 정말 많다. 유명한 책이더라도 출간된지 좀 됐으면 당연히 이북따위 없고, 학술서적이나 대중교양서가 아닌 사회과학 도서 등은 이북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크레마 사용하면서 느낀 건데, 대부분의 이북리더들 자체가 장르소설이나 만화책, 교양서 같은 가벼운 독서하기에 최적화된 기기들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각종 이북 어플 정도의 독서노트 기능을 가진 논문 PDF 리더 프로그램이 나오면 바로 지를 것 같다...)

현재 사용 중인 서점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크레마 기기에서는 이북을 구입을 하지 않고 따로 인터넷 등으로 구입을 함)

- 알라딘: 내 크레마 카르타가 알라딘 발임, 해외 신용카드를 받아줌, 리디북스에 비해 좀 더 이북이 다양한 편 (특히 사회과학 서적 등), 사은품 낚시가 장난 아님 (하지만 관세 및 배송 문제로 해외에서는 받을 수 없으므로 한국의 가족들이나 친구집으로 기증 중), 적립금 및 마일리지 혜택

- 리디북스: 50년 대여 이벤트 후 적립금 노예가 됨, 구매가 가장 손쉽게 되어 있음, 짜다시한 이벤트가 많은 편, 장르소설이나 가벼운 독서용 서적에 특화되어 있음, 다양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 크레마에서도 쌩쌩 잘 돌아가는 앱, 해외 신용카드를 가장 쉽게 잘 받아 줌. 

- 아마존 킨들: 킨들로는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책을 사지는 않지만, 아마존 프라임멤버에게 매 달 공짜로 한 권씩 주는 책을 언젠가 읽을 거라며 열심히 담아두고 있음, 예전 후기글에서 말했듯이 중국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 표기가 가장 훌륭함, 앱은 e-ink용이 아니라서 반드시 기기와 궁합이 맞는 버전을 찾아야하는 것이 함정. 

- 열린책들: 열린책들 세계전집이 크레마를 구입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음... 안드로이드에서는 최고의 앱 중 하나지만 크레마에서는 그렇게까지 쾌적하지는 못함. 그래도 인터페이스도 예쁘고 책 볼 수 있으니 나는 됐다... 


펌웨어 업그레이드 부분과 마찬가지로 가끔 해외의 느린 인터넷 때문에 책읽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함...


5. 크레마로 논문 읽기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다 때려치우고 드랍박스+어도비 PDF에 정착했다. 별 건 없고, 드랍박스 앱을 깔아서 논문을 연동해둔 다음, 드랍박스 내의 논문 PDF파일을 크레마에 깔아둔 Adobe PDF 앱으로 불러와서 읽는 것이다. 하고만은 PDF앱 중에서 굳이 좀 무거운 Adobe PDF 앱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 다른 기기에서 하이라이트나 메모 표기한 것을 크레마에서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Adobe PDF로 PDF 자체에 마크업을 하거나, 혹은 다른 기기들과 크레마 사이에 사용하는 앱을 통일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크레마에서 사용하는 앱은 인터페이스가 가능한 간단해야하며 (터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눌러야할 버튼이 많으면 크레마를 던지고 싶은 욕구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나치게 무거우면 안된다. 사실 드랍박스랑 어도비 두 개의 앱을 쓰는 게 귀찮아서 Mendeley로 통일하는 것도 고려했는데 비루한 크레마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앱이었다. 기타 앱이나 프로그램 통해 마크업 하는 대다수의 PDF리더 및 서지 프로그램들이 다들 그 모양이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Adobe PDF로 가게 된 것이다. 딱 크레마가 돌릴 수 있는 마지노선의 느낌.

2) 논문을 확대할 때 의외로 Adobe PDF의 더블탭 기능이 유용하다. 어도비 PDF 앱에서 글의 본문을 더블탭하면, 해당 문단의 너비만큼 글자가 확대되는데 이게 화면이 작은 크레마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기능이다. 다른 보다 가볍고 훌륭하다는 앱들도 써봤는데, 애초에 화면 터치를 통해 줌인, 줌아웃하는 것 자체가 크레마에서 고통스러운 과정인지라 그냥 간단히 두번 탭하는 걸로 화면 확대가 손쉽게 되는 어도비로 정착했다. 참고로 텍스트 리플로우는 별로 쓸 게 못되고, 한 페이지 보기 정도가 딱 괜찮음. 

기기내 기본 ebook 어플이나 여타 이북어플을 통해서도 pdf를 볼 순 있으나 다들 2% 부족했다. 

주의사항: 크레마로 논문을 읽을 때엔 가급적 컴퓨터나 태블릿을 하나 옆에 두고 읽는데, 메모를 작성하고 논문에 마크업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다. 이게 무슨 번거로운 짓인가 싶기도 한데, 어차피 도서관에서 빌려온 단행본 읽을 때도 책이랑 모니터 왔다갔다 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하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나쁘진 않다. 


6. 크레마 터치, 크레마 사운드, 리디 페이퍼, 아마존 킨들...?

모른다!!! 적어도 14개월 전에는 크레마 사운드가 존재하지 않았고, 크레마 터치보다는 카르타가 더 좋은 모델이었으며, 리디 페이퍼는 해외 구입이 용이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바뀐 바 없는 해외 거주민이라면 그냥 크레마 진영 구입하는 수 밖에 없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크레마 1대 들이는 건 관세 대상이 아니었다...만 요즘 미국이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자세한 건 찾아보는 걸 추천.  

아, 미국 거주민이고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이북을 많이 구매하여 읽는다면 킨들이 나을 수도 있다. 확실히 한국 이북 쪽에서는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된 이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맘편하다) 반면 아마존은 영어 원서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중국어나 일본어 쪽으로는 그래도 약간 더 원서가 구비된 편. 어떻게 일마존이나 중마존과 연결이 되면 더 좋겠는데 아직 그 방법은 못 찾음. 한국어는 처참하므로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마존에서 나온 대부분의 기기들은 소비자들의 구매를 수월케 하는데에 초점이 가 있는 편이므로 기기 내 구매 등이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음.


7. 보호필름 여부

보호필름 안 붙이고 썼다. 지문이 좀 묻는 편인 재질로 이뤄진 기기긴 한데, 가끔 닦아주면 뭐 크게 낡은 느낌 없이 쓸만하다. 기계 내 단차가 없어서 먼지가 안 낀 다는 게 최고 장점 중 하나. 


8. 불편한 점 및 단점

장점이야 다른 곳에서 많이 나와있으니 쓰면서 느낀 단점 억지로 끄집어내 본다.

- 전원버튼이 불편하다. 14개월을 썼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된다... 그래도 전원버튼이 내구성 있는 방식이라 내가 화면 깨먹기 전에는 고장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 가끔 먹통이 된다. 기기 내 소프트웨어 자체가 별로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 언제든 데이터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날려본 적은 없음. 가끔 SD카드 관련해서 에러가 생기는데, 그 때는 보통 SD카드가 빠진 상태에서 리셋 한 번 해주면 된다. 리셋버튼 생각보다 여러번 써본 것 같다.  

-기계에 먼지가 많이 들러붙는다. 그래도 괜찮다. 닦아주면 된다. 

- 유약해보인다. 언제 화면이 나갈까 조마조마하다. 떨어뜨리거나 압력을 주면 백프로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튼실한 케이스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화면보호필름은 필요없는 것 같다. 

- 기기 내 구매 등이 불편해서 반드시 컴퓨터나 폰 등으로 책을 구매하게 된다. 기기 내 웹브라우저는 쓸 게 못된다. 또한 기기에 열린 서재용 앱을 넣고 빼는 것이나, 슬립화면 등을 넣고 뺄 때 반드시 컴퓨터가 필요하다. 케이블 연결하는 게 귀찮은 내게 카르마 앱 업데이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펌웨어는 OTG로 연결없이 업데이트 가능) 


다 비교적 사소한 단점들이고 (불안한 내구성은 예외다. 기기의 만듦새는 괜찮지만 그와는 별개로 유약해보이는 면이 있음), 솔직히 잘 구매했다 싶은 전자기기의 목록의 상위권에 들어가있다고 생각한다. 논문 보기용으로 추천하기에는 좀 많이 조심스럽고 (사실 인쇄하기가 워낙 버거워서 다른 기기를 찾게 되는 건데, 그냥 태블릿이나 좋은 컴퓨터 모니터 구입을 추천), 한국어로 된 책을 구입하고 감상하는 게 목적이라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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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2008) / Open Tables (2015) / 동주 (2015)

최근 영화 볼 일이 좀 많았었음. 그래서 일단 몰아서 조금씩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시카고 기반의 즉흥코미디극(improv comedy) 영화 Open Tables, 이준익 감독의 동주. 

긴 리뷰는 언젠가 하는 것으로.


<걸어도 걸어도 > 歩いても、歩いても
    2008, 일본. 114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하라다 요시오 등


영화관에서 10년의 세월을 살아낸 것 같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삶을 이뤄내듯이, 그리고 서로 다른 삶들이 모여 가족을 기워내듯이, 섬세한 손짓과 말짓들이 모여 114분 짜리 한 편의 영화를 이뤄냈다. 
영화든 글이든, 작품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감독의 인내가 겸비된 관찰력과 노련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독하게도 현실적이게 평범한 가정이라 보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제목 뜻의 풀이 또한 무척 궁금하다. 

배우들의 연기들이 대부분 훌륭했지만, 특히나 여자 배우들의 연기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Open Tables> 
   
2015, 미국. 76분.
    Jack C. Newell 감독. 
    Desmin Borges, Beth Lacke, David Pasquesi, Joel Murray 등등

뚜렷한 주제의식, 목적이 분명한 실험, 그리고 좋은 제작진의 만남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영화와 즉흥극(improv) 장르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화학은 실로 멋진 것이고, 또한 그것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순간의 눈빛과 몸짓 중에는 분명히 즉흥극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있으리라. (즉흥) 코메디 장르인만큼 한글 자막이 없다면 좀 많이 힘들 수 있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꼭 목격해볼 만한 실험이다.

참고로 시카고의 유명한 즉흥코미디 극단 Second City쪽과 관련이 깊은 인디 필름으로, 감독인 잭 뉴웰은 최근 개시한 Second City의 영화학교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 

인디 영화라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예고편도 본문에 삽입해 봅니다. 




<동주>
    2015. 한국. 110분.
    이준익 감독.
    강하늘, 박정민 등 

분명 노련하게 빚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곳에서 미흡함이 보인다는 점이 답지 않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맑은 글들과, 그 글들에 대한 애정이 사진처럼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그 글들과 마음들이 그러한 단점들을 대부분 작품의 일부로 개워내준다. (윤동주의 글이 와닿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영화는 다른 일제시대 영화와 크게 다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소재가 영화를 하드캐리 했다는 뜻이기도 함. 매력적인 소재인만큼 함정도 많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움과 부족함 모두가 분명한 영화지만, 일단은 시와 문학으로 지새운 어둠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아,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간절함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만 여배우들, 특히 신윤주의 국어책 읽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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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가사키 스토리 (3泊4日、5時の鐘), 2014

오늘은 좀 이상한 영화 하나 보고왔음.



치가사키 스토리 (3泊4日、5時の鐘; 3박4일, 5시의 종; Chigasaki Story)
88분
일본, 2014
감독_미사와 타쿠야
주연_스기노 키키, 이이지마 슈나, 나카자키 하야, 코시노 에나, 호리 나츠코 등
웹사이트: http://www.chigasakistory.com/


한국에는 별로 정보가 없는 듯 하여 간단하게 리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매년 가을 영화제가 열리는데, 이를 앞장서 홍보 겸 앙케이트 등의 목적으로 여름 내내 세계 영화를 무료로 상영 중이다. '코미디와 유머'라는 주제로 각국 대사관들이 선정한 영화들을 매 주 한 편씩 상영하는데, 이번 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걸 보고 왔다. 

영화가 얼핏 보기엔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골에서 여름을 보내는 영화 같아 보인다. 그런데 보다 보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전개가 등장한다. 뭔가 정갈해보이던 영화가 갑자기 좀 의외의 수를 둔다고 해야하나. 같이 보러 간 일본인 친구들도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좀 놀랍다는 반응은 비슷했다. 

일단은 감독이 뭘 찍고 싶어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나름 섬세하게 짜내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러다가 큰 그림을 놓친 것 같다. 영화에 전반적으로 다소 힘이 들어가서 좀 튀는 장면들이나 전개가 있어서 다소 애매한 영화가 되었다. 여름용 영화인 것은 확실하고, 영화 관람 타겟은 잘 모르겠음. 무언가 일본 영화답게 좀 지나칠 정도로 정갈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면서 미묘하게 튀는 구석들이 있는지라 색다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좀 애매하게 볼 것 같은 영화고, 적어도 풋풋하고 상큼한 그런 청춘물을 찾고 싶다면... 글쎄..... 포스터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영화라고 일단 못을 박아두고 싶다... 여심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겠다고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데 확실히 여성 캐릭터들에 힘을 많이 쏟긴 했고 나름 리얼리티라면 리얼리티... 

이렇게 욕 비스무레하게 썼지만 일단 감독이 조금 설익은 듯 하니, 좀 더 경험치가 쌓여 노련해지고 보다 과감해지면 후에 괜찮은 작품들을 기대해 볼만할 지도 모르겠다. 싹수는 조금 보이는 듯 한데... (그리고 실제로 찾아보니 과연 졸업작품이었다고.) 참고로 위의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경국제영화제 (얘도 BIFF임) 에서 신인감독 각본상을 탔는데, 정말 신인+각본상 이 조합에 최적화 된 느낌. 갈 길은 멀어보이지만 언젠가 좋은 감독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일본의 홍상수가 되고 싶은 건가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만큼 세련되지가 못해서 보면서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어른들 연기는 대부분 괜찮았는데 좀 어린 축에 속하는 청년들이나 어린애들 연기가 영 별로였다. 캐릭터들이 확실한 편이라 그런지 주연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고, 특히 카린 역을 맡은 코시노 에나가 어찌 보면 정말 전형적인 캐릭터인데도 매력을 발산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초반부~중반부가 인상적임) 감독이나 편집이 다소 밋밋한 부분에서 주연 배우들이 조금 하드캐리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엄청 섬세한데 이상하게 거친 영화임. 

일본인 친구 4명과 같이 갔는데, 나와 다른 한 명(女)은 별로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셋(男)은 좀 이상했지만 괜찮았다는 반응이었다. 불꽃놀이라든가 바닷가 같은 거 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꼈다는 말도 있었음. 그래, 너네가 집에 돌아가고 싶겠지...ㅠ_ㅠ 하지만 가장 격정적인 반응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는 저런 로맨스 같은 거 구경도 못했어!"와 "영화 못지 않은 드라마가 우리 랩에서도 있었어"였음. 이게 설레고 심쿵하는 로맨스냐고 하면, 음, 글쎄다. 


아무래도 전체 줄거리가 한국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내가 써봄...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 혹시 영화 볼 기회가 있다면 줄거리를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시 보신 분 있으면 저랑 대화 좀 해봐요... 



실제로 보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전혀 어렵지 않다. 캐릭터들도 확실하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쉽게 배열해뒀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분명히 인물들이 줄거리에 나열한 것보다 더 많고, 이곳에 쓰지 못한 각종 세심한 디테일들도 영화에 결을 더해줄망정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목표의식이 비교적 뚜렷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처음엔 뭐 이런 영화를 골랐나하며 일본 영사관의 무능함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뭐 나름 고심해서 고른 것 같기도 하다. 혹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상 편집을 좀 살펴보고 싶긴 하다. 딱히 눈에 띈 건 없었지만 말이다. 

음악은 좋음. 여름 냄새 물씬 남. 


앞서 말했지만 상큼한 청춘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조금 핀트가 안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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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히가시노 게이고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 한 달 전 쯤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가끔 짬날 때 조금씩 읽어왔다. 그러다 어제 오늘 술기운에 괜히 기분이 좋아 집어 들어 단박에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아무래도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때문인지 특별히 긴장감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이 끝나고 역자의 글을 슥 살펴보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평소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분명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자극적인 형사 사건이 주축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분명히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왜 나는 장르를 읽어내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이 글에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다는 것이 이 글에게, 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글을 읽으며 독자들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작가의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또한 그 시선이 훈계라든가 가르침이 아닌, 편지와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 이러한 형식들을 소설 그 자체에 잘 녹여내어 서사의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을 정말 높이 사고 싶다. 반드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혹은 자극적인 이야기들만이 능사는 아니구나, 이 글을 빚어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들었을까, 따뜻한 소설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될 수 있구나. (학문적 글읽기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시 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최근에 좀 성찰할 일이 있었다.)


사실 소설의 잡화점과 편지는 어떻게 보면 제법 진부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을 가만히 인내심을 갖고 엮어 냄으로써 어떻게 다른 글,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작가의 인내심이 정말 빛나는 글이다.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완급조절 또한 일품.)


영화나 리뷰글 등이 아닌 온전한 글로서, 소설로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접해서 무척 기쁘다. (번역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제법 유려한 모양.) 작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다. 


섬세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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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 TVDL 정규 면허로 교환하기

이것은 신분증빙서류가 아니라는 기괴한 붉은 글자가 박힌 TVDL을 사용한지 몇 년 만에 드디어 정규면허로 교환했다. 그런데 이에 관한 정보나 후기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남김.


몇 달 간 고민했던 질문들 별로 답변.


1. TVDL => 정규 면허 교환시 아무 DMV나 가능한가?

원래 일리노이 TVDL은 지정 DMV에서만 발급이 가능하다. 문제는 지정 DMV 자체가 숫자가 적다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면허증 재발급, 갱신 및 교환을 취급하는 DMV면 다들 가능한 것 같다.  


2. 지참 서류는?

개개인의 신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여권, 비자 관련 서류 (I-94, 학생이라면 I-20 등), SSN 카드 원본, 주소증빙서류 2부. 특히 마지막 주소증빙서류가 좀 까다로운데, 해당되는 서류의 목록은 일리노이 DMV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함. 때때로 규정이 바뀌는 것 같으니 꼭 확인하고 갈 것. 예컨대 Bank statement는 되지만 아마 credit card bill은 안 되고, Tax form도 어떤 것만 되거나 안 되거나 하는 제한사항이 있다. 


3. 발급과정

DMV에 가서 서류 보여주고 번호표를 뽑는다. 번호 불리면 가서 서류를 다 내놓으면 시력검사 테스트를 하고 몇몇 질문이 오간다. 몸무게나 키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으면 있는 정보 그대로 쓰는 것 같다. 신청서류를 가지고 Cashier에 가서 30불(!)을 낸다. (웬만한 신용카드는 다 받긴 하는데 30불의 경우 1불의 수수료가 붙는다.) 발급대에 가서 서명을 하고 (카드에 인쇄되는 서명임) 사진을 찍으면 1~2분 내로 면허증 발급 완료. 


사람 없을 때 서류 제대로 챙겨서 가면 금방 끝나는 과정이다. 


덧붙여 구글에 dmv 검색해서 나오는 첫번째 사이트는 공식 dmv 사이트가 아니다. 일리노이 dmv 사이트는 무슨 사이버드라이브일리노이인가 그럼.


행정과 관료주의에 대해 요즘 열심히 공부 중인데.... DMV는 정말 관료주의 공장 같은 곳이구나 싶었다. 

직원들은 매우 professional하고 생각보다 많이 친절했음. 진상의 기운이 뻗치는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다들 행정에 도가 터서 그런가 매우 능숙하게 대처하는 걸 보고 와, 공무원은 진짜 하기 싫다,라는 생각이 들었음. ㅠㅠ (엄밀히는 professionalism도 관료제의 아주 큰 미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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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블로그 사진의 정체

오랜만에 블로그 커버 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바꿔봤다. 




이 물고기 사진은 말 그대로 물고기 사진이다. 

더 큰 사진을 크롭한 것이다. 사진을 찍고 다시 돌려본 순간에서부터 이 물고기에 유난히 눈이 갔더란다. 




이것이 원본 사진이다. 

2010년 6월 노르웨이 북쪽 로포텐 제도의 '오'라는 곳에서 고통받으며 여행할 적 유스호스텔에서 찍은 사진이다. 참고로 로포텐 제도는 대구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시기를 잘 맞춰가면 곳곳에서 대구 말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모르긴 몰라도 대구잡이가 이쪽 생계유지수단의 큰 원천 중 하나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진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신이 없다. 


다음으로 블로그 스킨 커버 역시 고르고 고르다보니 역시 북유럽에서 찍은 사진이긴 하다. 



이것은 스웨덴 중부를 관통하는 기차 인란스바난을 타며 찍은 사진이다. 시기 탓인지는 몰라도 외스터순에서 말뫼까지 가는 이 기차에는 손님이 오로지 나 하나였다. 기차 탑승인원은 나, 기차 스태프인 린다와 투리드, 그리고 운전수 올라프 아저씨 넷 뿐이었다. 

원래라면 린다와 투리드가 돌아가며 안내 방송을 하는 관광열차였으나 결국 우리는 그냥 수다나 떨고 말았다. 심지어 객실서 수다 떨다가 올라프가 있는 차장실에 가서 앉아서 노닥거렸다. 바로 그 때 기차 차장실에서 찍은 기찻길의 사진.


올라프에게 잠시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기억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하나는 올라프가 전직 스웨덴 국영철도 (SJ) 기차 차장이었다는 것이고 은퇴 후 인란스바난을 운전을 소일거리 삼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KTX에 관한 다큐를 봤다며 KTX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는 것이었다. 역시 기차 차장...!

셋째는 올라프에게 들은 건지 린다에게 들은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순록과 무스의 구분법이었다. 비록 인란스바난이 느리긴 해도 기차는 기차인지라 가속도가 붙으면 세우기가 힘들다. 그렇다보니 간혹 동물들이 기찻길에 있다가 사고를 당하고는 한다. 이때 바로 순록과 무스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무스의 경우 기차가 다가오면 기찻길을 건너서 기차를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순록은 기찻길을 따라서 기차를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 많이들 죽는다고... 


반농담이겠거니와 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순록이 무스보다 멍청한 것으로...



아무튼 두 사진을 블로그에 건 이유는 그저 마음에 들어서다. 

특히 기차 사진의 경우, 모니터도 유리로 만들어졌고 창문 또한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착안해서 찍은 사진이기도 하고, 물방울이 창문에 남길 수 있는 여러 자욱들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또 좀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아주 많이 간다. 



'흔적 남기는 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보경심 메모  (0)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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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 Ministry (铁道)> 감상문

이것은 정식 리뷰문이 아님. 정식 리뷰문은 좀 더 관대하게 작성될 예정. 감독이 굳이 한국어 블로그까지 와서 글을 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좀 더 불만 위주로 써보겠음. 


**


영화 <Iron Ministry> (중국명: 철도, 铁道, 한국명 "철의 나라")의 감독 스나이데키는 하버드 센서리 에쓰노그라피 랩 (sensory ethnography lab, 이 따위로 음독해서 죄송합니다 감각민족지?라는 말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출신이다. 애초에 영상인류학 자체가 글자 기반의 인류학적 기록에 대한 일종의 반동, 실험, 부연 등으로 태동했음을 고려할 때, 민족지적 실천과 소통을 활자와 시각을 넘어선 온갖 감각으로 실험해보는 그런 곳이라고 일단 이해는 하고 있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무척 반가웠다. 영화제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감독을 본다는 것, 이 영화 자체가 센서리 랩 출신 작품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마음을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반가운 감정이 앞섰기 때문에 그냥 어물쩡 넘어갔다. 


1년 반 후,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반가웠다. 1) 일단 한 번 본 영화고, 2) 1년 반사이에 나의 중국어와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3) 그 영화를 본 후 중국에 갔을 적 열차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남다른 관심은 영화 속 내용을 다소 부정하는 반감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관심'을 길러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반감도 관심의 일부니까.) 


다만 이번에는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석연치 않은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었다. 이미 영화의 진행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에 대한 다소간의 불안감을 덜고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크게 한 몫 했지 싶다. 감독과 패널들, 관객들과의 대담 이후엔 석연치 않은 감정이 복잡한 분노와 실망, 의구심 등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분명 이 영화는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특징들이 있다. 감독의 영상언어에는 분명히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 3년 간의 촬영본을 편집한 작품이라는 점, 감독이 촬영하는 상황과 현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 스태프 없이 1인 촬영했다는 점, 소리나 물질에 대한 관심 등등. 하지만 이 대다수의 특징들은 그저 감독의 '실험성', 혹은 자신의 '영상제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추켜 새우는 데에 소모되고 만다. 얼마나 소모되냐면은 감독의 윤리성에 굉장한 의구심이 제기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꼈던 찝찝함은 대충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가면 더 많음): 


1.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촬영: 동의는 과연 구한 것일까? 길게 유지된 관계성에서 기반한 촬영인 것인가? 웃통 다 벗어 던지고 자는 사람들은 이 키 큰 백인이 비디오 카메라로 자신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간에 촬영당하는 것을 목격한 잠자던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계속 카메라를 쳐다봤을까?


2. 민감한 논의에 있어 촬영대상에 대한 보호 장치 부재: 티벳 얘기를 하거나 위구르 얘기를 하는 승객들의 얼굴을 그대로 넣었다. 동의를 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촬영당함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나, 분명히 정치적으로 (많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 등을 그냥 그대로 넣었다. 심지어 신분증이 없어서 검표관이 데리고 나가버리는 신장 사람 얼굴도 고스란히 나온다. 과연 촬영 대상자들은 영상 촬영의 결과를 알고 있었을까? 특히나 카메라가 영화 카메라가 아니라 일반 비디오 카메라였는데? 


3. '이상한 중국'에 대한 이미지: 중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는 모든 영상을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 또한 중국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려 '인류학 박사과정의 필드워크 중 촬영'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즉, 속칭 중국 전문가가 만든 필름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상은 미국의 TV나 대중매체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실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백성들',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 고기가 주렁주렁 걸린 열차의 모습과 같은 이국적 풍경, 바닥의 쓰레기나 무질서한 차내 풍경에서 암시될 법한 후진성 등의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센세이셔널'한 그림들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저 대중매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재현할 것이라면 뭐하러 인류학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복잡했고, 내가 오해하는 것인가 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들었지만 Q&A 듣고 아, 이건 그냥 망했다고 생각함.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은 패널리스트들도 대체로 비슷하게 떠올렸던 것 같다. 그들이 던진 질문들 중에는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윤리성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감독이 만약 미국에서 촬영을 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들은 모두 친절하게, 그리고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장화 되어 제기 되었다. 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대화를 거절하였다. 자신이 답하기 용이한 질문들에만 답을 하였다. 물론 감독이 모든 것을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널들의 질문들, 그리고 연이어 관객에서 등장한 질문들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윤리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영상제작가지 도덕주의자(모럴리스트)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대화 거부의 순간이었다. 


패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우리 지도교수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 눈에는 그 옆의 친구 지도교수님 역시 미묘하게 그 미소가 바뀐 느낌이었다. 


관객석에서 또다른 질문들이 나왔다. 그의 교수법에 대한 질문과, 영화 속에서의 젠더 표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옴)에 대한 질문이었다. 분노를 꾹 눌러참고 나도 질문했다. 영상 제작시 의도된 관객은 누구며 당신의 목적/책임 등은 무엇이었냐고. 한국어로 옮겨쓰니 좀 대범해보이는데 사실은 나름대로 매우 정중하게 돌려돌려 질문했다. (편집 과정에 대한 질문도 했는데, 이는 순전히 나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편집해놓고 나니 더 우선시하게 된 시기나 지역, 차종 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도 뭐 이렇게 대단한? 프로젝트는 아닐지어정, 학부생 시절 사회학과 친구와 같이 한 학기 내내 수십 시간 분량의 촬영 끝에 15분 50초 짜리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질문도 다른 질문들과 연결이 된다.) 


다시 감독은 원하는 대답만 했다. 젠더 질문에는 약간의 변명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궁색했다. 


***


영상 제작에서의 윤리 문제는 몹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영화 상영회에서 유난히 윤리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은, 영화를 관람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거나 영화를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분야 쪽에서는, 어느 지역이나 시대와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종과 성별의 문제가 매우 부각되곤 한다. 아니, 실제로 학계의 수면 위로 부각되지는 못하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그것을 느낀다. 연구주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근거 없이 '백인 남성'이라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더욱 쉽사리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실제로 그들은 '백인 남성'의 입지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일반성을 쉽사리 이야기하고, 각종 지식의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처한다. 


툭 까놓고 얘기해보자. 이 영화는 감독이 성과만 따먹고 책임은 갖다 버린 케이스다. 또한 이 영화는 감독이 기성의 권위만을 맞추는 영화다. 검표원에게는 동의를 구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승객들에게는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영상에 더 많이 출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영화에 등장하는 소수의 남성들이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은 등장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젊거나, 소수민족이거나 (백인감독보다 더 중국어 구사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기반이 약한 사람들이다.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않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대해지지 않는다. 이미 제목부터 망했다. Iron 'ministry'라잖아. 


감독은 자신이 중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많이 어울렸다고 했다. 과연 어떤 다큐 제작자들이었을까? 중국에서 나오는 다큐들 중에는 다분히 서구사회가 선호할 만한 이미지와 메시지로만 구성된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 걸 나같은 인간이 보면 내가 중국인은 아닐지언정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마련이다. 혹시 이런 사람들과 어울린건가?


***


영화 철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철의 꿈을 매우 싫어했다. 한국에서 상영되기 전 이곳 영화제에서 보았을 적, 반가운 마음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로 치솟았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같이 본 언니에게 영화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은 좋지만 그렇다고 같이 촬영에 임해준 사람들마저 매우 오만한 방식으로 물화시켜 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산업의 역사 뿐 아니라 처절한 투쟁의 역사 또한 존재했을 조선소에서 그 역사성과 시간성을 앗아가버린다. 철의 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영화에 임해준 사람들 - 대다수가 조선소의 근로자들이다 - 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더 부추기고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소모시켜 버리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다큐의 원칙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그 분노는 어디 가지 못하고 블로그에 기록될 뻔했으나, 당시 네이버에 철의 꿈 리뷰가 없어서 내가 차마 개봉도 안한 영화에 욕을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화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기저기서 상도 타고 호평을 받는 것을 보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의 미적감각의 문제인건가? 나의 윤리적 감각은 너무나 한정된 분야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호평을 받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나의 상식이 세간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것인가?




***


학부생 때 김홍준 선생님의 영상인류학을 들었다. 이곳에서 보다 이론 위주의 영상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따금 그때 작성했던 저널이나 쪽글들, 학과 내 과지에 영상인류학과 관련해서 기고한 글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영상들을 다시 보면서 비교해보거나 되짚어 보곤 한다. (슬프게도 당시 촬영한 영상은 싸그리 다 소실되었고 화질이 아주 떨어지는 최종버전과, 화질은 덜 떨어지지만 편집이 다 되지 않은 B컷만 남아있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심지어 김홍준봇....을 찾아서 정독하는데, 몇 가지 마음에 꽂히는 말들이 있었다. 영화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과,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에 대한 말들이었다. (트윗은 짧으니 내 맘대로 해석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친구가 만든 영상은 진짜 조야했다. 영상도, 사운드도, 편집도, 기술적인 건 다 개판이었다. 우리의 영상은 관객들에게 강제 상영하는 것이 아닌 이상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영상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수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영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착이 간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부족한 기술은 부끄러움), 저널을 읽으니 당시의 치열한 고민들이 녹아있구나 싶었다. (다만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아쉬워라.) 


영상 만들기를 처음 접한 것이 스나이데키 같은 사람이 아니라 김홍준 선생님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솔직히 내가 남자가 아닌 것, 백인이 아닌 것이 원망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필드'에 나가면 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권력관계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은 추악할지언정 솔직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속칭 '유색인종' (이 말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음)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삶에서는 불편할지언정 학문을 하는 데에서는 안일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감각을 날카로이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너무 안일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것들을 모두 누리기만 했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들은 회피하였다. 


***


이 영화를 같이 본 한 친구는 Act of Killing의 오펜하이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윤리적 지적이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만약 감독이 최소한 대화에 응했더라면, 도전이라도 했고 고민을 회피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난 이 영화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오늘의 분풀이를 끝맺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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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 世界に一つだけの花 - SMAP (세상에 하나뿐인 꽃)

요즘 심신이 지치고 자존감이 슬슬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보아

오랜만에 위안 받을만한 노래를 좀 들을 때가 되었다 싶었다. 

시시때때로 듣는 노래가 다른데, 오랜만에 아주 예전에 듣던 노래를 되새겨보았다.


한때 일본의 국민노래나 다름 없었던 SMAP의 "世界に一つだけの花"(세상에 하나뿐인 꽃). 

예전에는 손동작도 좀 외웠던 것 같은데 그새 다 까먹었다.

멜론에 앨범버전 노래를 찾지 못해 유투브의 (다소 슬픈...) 라이브만 줄창 이틀간 들었다.

다소 불안정한(...) 음정도 모두 용서될 정도의 예쁜 노래. 

밤을 지새우는 슬픈 대학원생들에게 추천합니다.

여러분들도 예쁜 꽃이에요. 









花屋の店先に並んだいろんな花を見ていた。

꽃가게 앞에 놓인 여러 꽃들을 보고 있었어요. 


人それぞれ好みはあるけど、どれもみんなきれいだね。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꽃은 있지만서도, 어느 꽃도 모두 예쁘네요. 


この中で誰が一番だなんて争うこともしないで、

그 중에서 누가 제일인지 다투지도 않고,


バケツの中誇らしげにしゃんと胸を張っている。

바구니 속에서 자랑스러운듯이 반듯이 가슴을 펴고 있어요. 


それなのに僕ら人間はどうしてこうも比べたがる?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째서 이렇게나 비교하고 싶어하나요?


一人一人違うのにその中で一番になりたがる?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른데도 그 중에서 일등이 되고 싶어하나요? 



そうさ、僕らは世界に一つだけの花

그래요,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꽃


一人一人違う種を持つ。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씨앗을 품고 있어요.


その花を咲かせることだけに

그 꽃을 피우는 데에만


一所懸命になればいい。

최선을 다해 전념하기만 하면 돼요. 



困ったように笑いながらずっと迷って人がいる。

곤란한 듯이 웃으면서 쭉 망설이는 사람이 있어요. 


頑張って咲いた花はどれもきれいだから仕方ないね。

힘들여 핀 꽃은 모두다 예쁘기에 어쩔 수 없네요. 

 

やっと店から出てきたその人が抱えていた

겨우 가게에서 나온 그 사람이 품에 안고 있는


色とりどりの花束と嬉しそうな横顔、

가지 각색의 꽃다발과 기쁜 듯한 옆 얼굴,


名前も知らなかったけれど、あの日僕に笑顔をくれた。

이름도 모르지만서도, 그날 나를 미소짓게 해줬어요. 


誰も気づかないような場所で咲いてた花のように…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 피는 꽃 마냥...



そうさ、僕らも世界に一つだけの花

그래요, 우리도 세계에서 하나뿐인 꽃


一人一人違う種を持つ。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씨앗을 품고 있어요.


その花を咲かせることだけに

그 꽃을 피우는 데에만 


一所懸命になればいい。

최선을 다해 전념하기만 하면 돼요.



小さい花や大きな花一つとして同じものはないから、

작은 꽃이든 큰 꽃이든 하나도 같은 것은 없으니,


No.1にならなくてもいい。

넘버 원이 되지 않아도 좋아요. 


もともと特別なOnly one。

원래부터 특별한 Only one이니까요. 




(급한 발번역의 산물입니다. 오타, 오역 지적 달갑게 받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오밤중에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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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객섭은낭 (2015, 허우샤오시엔) - 2

(미완성 리뷰)


몇 달 전에 자객섭은낭을 본 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마침 근처에서 특별상연을 해서 또 보고 왔다.


두 번째 관람기의 감상평. (첫 번째 거는 블로그 어딘가에 있다.)

까먹기 전에 생각나는 것들:


1) 드디어 스토리를 이해했다. 이번엔 가급적 영어 자막을 보지 않고 귀를 열어두려고 노력했는데, 조금 효과를 보았다. 사실 자막의 번역 퀄리티 그 자체가 나빴다기 보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관객의 자막을 읽는 시간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 두 번 읽을 속도의 자막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번 읽기도 벅차다. 애초에 영화가 대화를 최소화 해서 대사 하나하나가 복잡한 편인데, 자막마저 읽어볼 시간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따라가기 벅찼다. 


둘째, 중국어와 영어의 친족호칭용어 문제가 있었다. 영어와 달리 중국어는 친족호칭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모든 친척 하나하나에게 서로 다른 호칭어가 붙고,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호칭이나 지칭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말을 줄이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바로 이 호칭 및 지칭 체계에서 드러나는데, 영어로 번역할 길이 없음. 친족 외에도 상대방의 지위를 부르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가 영어 자막으로는 드러날 수가 없다. 이것이 만약 책이었다면 각주, 미주나 괄호에 설명을 덧붙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자막이라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예컨대 고모부(姑丈)가 uncle로 번역되었을 때 잃게 되는 관계의 복잡성을 커버할 길이 없고, 분명히 중국어로는 티엔지안과 니에인냥이 사촌관계(表兄妹)라고 한 것 같은데 영어 자막에는 그저 둘이 약혼 관계였다 정도로만 나오니 얽히고 섥힌 가정사가 잘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겠다. 혹은 각종 지위에 대한 경칭들, 예컨대 마마(娘娘), 주공(主公) 등의 단어들이 your highness로 번역될 때, 혹은 사부/스승님(师父)과 주공(主公)이 모두 Master로 번역될 때 소실되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 



2) 모두들 영화의 시네마토그래피를 기대하지만, 사실 사운드가 진짜 대단하다. 조용하다 느끼지만 사실 영화에서 소리가 제거되는 일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날잡고 길게 생각해봐야겠다.


3) 저번 영화관과 달리 이번엔 영화관 스크린이 반 정도로 작았다. 한 번 영화를 봐서 그런지, 혹은 스크린이 작아서 그런지 저번처럼 영상을 보고 숨이 탁 막히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라이프오브파이 이후로 큰 스크린이 가장 아쉬웠던 영화.


4) 사운드가 끝내줬는데, 영화관에 환풍기? 에어컨? 뭐 그런 게 계속 돌아가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영화가 이처럼 조용하지 않았으면 티가 안 났을 텐데.


5) 니에인냥이 티엔지안에게 후지가 임신한 사실을 말할 때 큰 소리로 웃은 사람이 있었다. 뭐가 웃긴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무협이라는 장르, 각종 동작이나 소품들에게 당연히 부여되는 의미들을 전혀 픽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스토리가 어렵다기 보다는 그 전달방식이 친절하지 않은데다가 자막의 한계로 이해를 하기 위해 상당한 인내가 수반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떠려나. 불친절한 스토리의 갑 (관객이 엽문 이야기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고 가정하고 들어갔다고 생각됨)이었던 일대종사가 한국서 개봉했을 적,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보던 많은 사람들은 중도에 나가거나 잠들었다...


6) 중국에서는 당대 복식 등에 대한 고증이 부족하다고 욕을 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다. 솔직히 이미 건물부터 일본식인 게 드러나는데 (로케가 동아시아 여기저기임) 복식이 문젠가. 게다가 언제부터 무협이 그런 것에 그렇게 신경썼던가. 


다만 이와는 별개로 어떤 소비해야만 하는 이미지들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한 장치들에 대해 반감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소위 잘못된 복식들도 그 예일 것이고, 소위 웨이보라는 변방국을 묘사하기 위해 차용한 몇몇 장치들 - 예컨대 왕실에서의 연회 등- 이 눈에 띄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무협영화를 지향하니 미적으로, 형식적으로 충분히 허용이 되는 범주라고는 생각되며, 이런 이유로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무협장르를 깨부수기 보다는 그 장르를 좀 더 능숙하게, 미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확장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7) 오늘도 여전히 자신공주(嘉信公主)를 비롯한 몇몇 캐스팅의 국어책 읽기는 견디기 힘들었으며, 자청공주(嘉诚公主)의 악기 연주는 듣기 괴로웠다. (그리고 둘은 한 배우가 연기함 ㅠㅠ) 후자는 배우의 죄가 아니지만 괴로운 건 괴로웠습니다... 포스는 쩔던데 왜...


8) 대륙 배우들은 대체로 보이스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는데, 이 '보이스트레이닝'이라는 훈련된 목소리와, 또 그것을 듣는 훈련된 (대륙) 대중의 귀 (+전문성우의 더빙도 매우 흔함)가 영화의 미적인 구성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까 궁금해짐.


9) 같이 영화 본 친구의 가장 큰 혼란의 순간은 바로 정정아/징징얼(精)의 등장이었다. 섭은낭이라고 생각했고 누군지도 몰랐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중국 사이트 뒤져가면서 찾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 같다. 이름따위 등장하지 않았고 이름 역시 중국 사이트 뒤져서 알게 된 것.


기타 등등은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정리하고 올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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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차이쥔 - 모살 (谋杀似水年华) [스포일러 주의]

리디북스에서 중국 추리소설인 '모살'을 무료 공개하였다. 

그래서 궁금해서 봤다.





http://ridibooks.com/event/3350



주 배경은 상하이고, 작가가 나름대로 사회적 문제를 담아보려고 한 결과 농민공이라든가 본지인/외지인 문제, 빈부격차 이야기 등이 인물들을 움직이는 주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이런 게 한국에 공개됐는데 안 읽을 순 없지!! 재미도 재미지만 나름의 연구의지와 부채감 때문에 읽은 면도 없잖아 있다. 


아마 지금은 5화가 무료 전화 됐을 건데, 한 삼일 전에는 4화까지만 공개된 상태였다. 속도감 있는 전개 때문에 뒷 부분이 무척 궁금하여 결국엔 인터넷에서 중문 원서를 찾아보았다. 부족한 중국어 실력 때문에 번역본을 읽는 것보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깊이 있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정말 스토리에 집중하면 되는 글이라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막 다 읽은 참이라 (그렇다 페이퍼를 쓰지 않고 소설을 읽고 노는 중이었다...) 생각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읽고 나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써본다.

아, 그 전에 세 줄 요약:


크리스마스 때 할 일 없는 심심한 분들 킬링타임용으로 읽기엔 훌륭합니다. 무료니까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만, 깊이 같은 건 기대할 게 못 됩니다. 이 책으로 중국을 배울 필요는 없으며, 중국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으시다면 글이 좀 불편(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1. 리디는 이 책의 작가를 두고 '중국의 기욤 뮈소'라고 소개한다. 기욤 뮈소의 글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하냐면 잘 모르겠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 속에서 글에 대한 평가가 계속 바뀌었는데 결론적으로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상업추리소설이다 - 정도. 사실 한 4부까지만 해도 글의 독자가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생각이 많이 오갔다. 그 시점에서 내렸던 소결은 이 책의 '사회적 시선'이라는 것은 결국 농민공이라든가, 상해 본지인이라든가, 고위층 자제 등에 대한 여러가지 환상들을 결합해 추리 소설에 끼얹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리디 공개 부분으로 치면 한 5부 정도의 포인트에서는 치우셔우(秋收)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농민공, 공장 노동자의 애환 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때만큼은 아, 이 글도 잘하면 그냥 추리소설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글이 될 수 있겠다하는 기대심으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나의 기대심도 같이 풀렸다. 나는 사회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결국 이도저도 아닌 치정극으로 끝나버리면서, 사회의 아픔을 그저 소비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즉, 작가가 어떤 계급의 대표로 그려내는 각 인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는 커녕, 그저 주변에서 쉽사리 소비되는 이야기들로 너무나 진부한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불편해 미치는 줄 알았다. 



2. 모살을 읽으며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문화 소비재들이 떠올랐다. 하나는 소시대 (小时代) 나 수많은 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부자들에 대한 환상과 동경 (그리고 그들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성립되는 멸시)을 그린 소비 컨텐츠들이다. 모살에서는 주인공 샤오마이의 남자친구인 셩짠(盛赞)과 그의 어머니, 와이탄에서 작업을 거는 페라리 남자 등에서 투영해 볼 수 있다. 그 밖에 드라마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들 또한 이에 해당하겠다.


두 번째는 마윈의 성공신화를 비롯해 각종 스타트업의 창업전설로 대표되는 소위 '성공기'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얘기한다. 한 가지는 어려움을 뚫고 각고의 노력 끝에 물질적으로 성공하는 젊은이들의 고생담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성공이 가져다준 물질적 행복이 가져다 주는 허무함이다. 예컨대 제작년 중국을 말 그대로 강타했던 <중국합화인>과 같은 영화라든가, 향촌에서 봉사하는 삶>>>>>부잔데 혼자만 남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익광고가 이에 해당하겠다. 이는 앞서 언급한 부자들에 대한 환상과 동경과도 맞물려 있다. 치우셔우가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겠고, 이를 목도하는 구페이는 이러한 컨텐츠에 나오는 조연(=관찰자)의 역할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 잘 모르겠다. 멀리 보면 결혼 잘 해서 잘 나가게 된 셩짠의 아버지 셩스화(盛世华)도 어느 정도 해당되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왕펑(汪峰)의 춘천리(春天里) (실제로 치우셔우의 삶을 그리는 어느 장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로 장이 시작된다)라든가, 안즈(安子)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다공문학(打工文学)에서 볼 수 있는, 농민공들의 삶과 애환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어 뭐라고 말은 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모살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것은, 첫째 과연 단순히 이들의 애환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 <모살>이 이들을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다만 차이쥔이라는 작가가 상기한 것들이 연상되는 컨텐츠들을 생산이 아닌 소비하는 축에 속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들었다. (솔직히 주강 삼각주 지역에서 떠도는 치우셔우 얘기가 몰입감이 좀 떨어졌다ㅠ 다들 이미 아는 이야기 수준에서 언급되어서 그런가...)


뭐 일단 내가 만났던 농민공들을 돌이켜볼 때, 삶 조차도 너무 버거워 이런 글을 읽을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모살>은 이미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는 장르들을 또다른 훌륭한 소비재로 한데 묶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이 글 자체가 시한폭탄 같은 팍팍한 중국 사회에서 쉽사리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산물이기에, 그만큼 한계가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3. <모살>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예측가능하다. 그나마 가장 입체적이었던 것은 샤오마이 정도지만, 샤오마이의 배경에 대해 조금 설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샤오마이는 앞서 2번에서 말한 각종 혼합된 장르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 같은 인물이다. 샤오마이는 가난한 집의 소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부잣집 소녀도 아닌, 상해 호구를 가진 경찰의 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미 틀어져있고, 이따금 충동적인 면 같은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일개 경찰의 딸이 무슨 재벌가 아들들을 만나고 다니는가... 물론 상해호구는 매우 귀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만큼은 아니다. (상해 호구를 가졌으나 빈곤에 처한 도시빈민들도 무수히 많다.) 결국 외모로 귀결되는 건가요.... 


치우셔우라는 캐릭터 설정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작가는 치우셔우를 통해 어느 순간 농민공과 소위 개미족(蚁族)이라 불리는 취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동일선상에 놓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불만이 많다. 치우쇼우는 어디서 각종 사회, 문화자본을 취득했는가? 과연 대학까지 나온 이족과 고졸의 농민공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가? (참고로 적어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농민공들은 중졸이었다. 이는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기 때문.) 이들이 갖고 있는 아픔의 경중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들의 아픔의 결과, 이들이 바라보는 사회, 세계, 시간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다시 돌이켜보니 이들의 납득되지 않는 배경이나 그나마 존재하는 '입체성'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인물을 그림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누가 읽어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소설이 지향하는, 혹은 이 소설을 탄생케 한 각종 사회적 환상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닐런지. 작가가 이를 정말로 의도했다면 이는 매우 영악한 장치라고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아 뭐 할 말 더 있었는데 나중에 작성하는 걸로...



4. 까먹기 전에 한 가지 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을 영화화는 것은 독배 마시는 거다. 책을 보면서 안젤라베이비가 주연한 영화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해봤는데... 이거 타깃층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것도 나중에 다시 보충하는 걸로...



5. 혹시나 오해할까봐 다시 말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무척 재밌다. (진짜 재밌다. 그래서 페이퍼도 집어 던지고 중국어로까지 찾아 읽었다....) 좀 용두사미 느낌도 나고 마지막엔 약간 허무하기도 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 그리고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는 부분 등이 돋보인다. 크리스마스 때 심심한 여러분께 킬링타임용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무료니까)

그렇지만 이 책이 어떤 아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책이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어디선가 광고에 '사회파 소설'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은데, 사회파라는 단어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뜻이라면 조금 동의하기 어렵다. 킬링타임, 오락용으로 차위쥔의 다른 책을 볼 일이 생긴다면 모를까, 차이쥔이라는 작가가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6. 중국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가는 조금 다른 문제겠다.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무척 궁금하다. 나중에 평이나 좀 찾아봐야겠다.



뱀발: 

생각해보니 혹시 문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라면 이렇게 안 썼을텐데... 혹은 나라면 이런 저런 걸 더 살렸을 텐데... 하는 부분들이 없잖아 있었다. 취향의 문젠건가?? 


뱀발2:

번역가가 거른 것들이 좀 있다. 말장난 때문에 어렵다기 보다는, 독자가 중국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어떻냐에 따라 번역이 어렵겠구나 싶은 부분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디에서 6화까지 다 공개되면 한 번 재빨리 살펴봐야겠따. 번역이 궁금함.

사실 처음에는 아 왜 죄다 발음기호로 인명, 지명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특히 맨 앞의 음식 이름들...), 원문의 이름들을 보고 대번에 납득하였다... 샤오마이는 소맥(小麦)이고 치우셔우는 추수(秋收)다.... 셩짠은 성찬(盛赞)이니까 좀 나으려나... 이 뭐...


벰발3:

한 3~4부 까지 읽었을 땐 너무 재밌어서, 중국의 책/영화 평점사이트인 도우반(豆瓣)에서 별점이 왜 이리 낮을까 참 궁금했더란다. 읽고나니 이해가 감... 참고로 도우반 가면 진짜 다양한 평들이 넘쳐나는데, 혹평들도 상당히 눈에 많이 보인다.  "쓰레기, 차이쥔은 글 그만 써라" 뭐 이런 평들도 있는데, 가장 웃겼던 건 "내 세 시간을 모살당했다" 였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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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요리] 떡볶이

재료를 들여다보니 이게 유학생요리 카테고리인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먹었으니 레시피 까먹기 전에 기록기록!

사실 정확한 계량은 잘 모르겠다. 노트에 필기해둔 거랑 다르게 양을 넣어서...


재료: 떡 (떡볶이용 이런 거 없어서 1년 전ㄷㄷ사둔 떡국용 떡 사용), 양파, 파, 고춧가루, 설탕, 간장, 다진마늘, 물, 고추장, 마늘, 멸치다시 육수




어차피 혼자 만들어서 혼자 먹기 때문에 비주얼은 구리지만 (심지어 다시 멸치도 그대로...) 진짜 맛은 끝내줬다... 하... 또 먹고 싶어....


0) 떡은 미리 꺼내 물에 담가둔다. 


1) 멸치 육수를 끓인다. 집에서 떡볶이를 해먹을 땐 다 필요없고 육수가 깡패다. 멸치+새우+마른 버섯+파+다시마+양파 넣고 끓여줬다. 양파는 뭔가 매우 마지막에 넣었다가 건졌던 것 같은데.. 


2) 양념장을 만든다. 고춧가루 세숟갈, 설탕 한숟갈, 올리고당 한숟갈, 간장 반숟갈, 다진마늘 반숟갈, 고추장 두숟갈, 섞어보고 되직한 소스가 될만큼의 물. 이걸 밥그릇에 넣고 다 섞었다. 밥그릇 2/3 분량 정도의 소스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 근데 이게 계량이 맞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넣은만큼 그대로 써놨어야 했는데 그렇게 성공할 줄 꿈에도 몰랐다 꺼이꺼이 ㅠㅠ 


(노트에는 두 가지 버전이 쓰여져 있다: 고춧가루 3T, 설탕 1.5T, 간장 0.5T, 다진마늘 0.5T, 후추 1T 혹은 고춧가루 1컵, 간장 반컵, 고추장 2/3컵, 설탕 1컵, 물 1컵이라고....) 


3) 육수 3~4컵 정도의 분량에 양념장을 투하한다. 국물이 반까진 힘들고 어느 정도 졸 때까지 기다린다. (노트엔 육수 2컵이랬는데, 확실히 그것보단 많은게 좋은듯)


4) 국물이 조금 존다 싶으면 물에 불려둔 떡을 투척한다. 


5) 삶은 달걀도 투척 ㄱㄱ


6) 다 먹을 자신이 있다면 라면도 투척.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라면은 따로 끓여서 나중에 섞는다. 



팁1) 참고로 해놓고 바로 먹어도 맛있었지만, 냉장보관 하룻밤 하고 나서 다시 데워 먹으니 진짜 감동의 맛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취향저격 떡볶이를 만들 줄 안단 말인가...?! 딱 상상하던 그 떡볶이의 맛이었다. 대량으로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어... 


팁2) 혹시 냉장보관할 생각이라면 국물은 좀 많이 하는 게 좋다. 떡(라면 ㅠ) 때문에 어차피 국물량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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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발 크레마 카르타 사용기 업데이트 (12/15) - 부제: 중문책 보기

2주 사용기 리뷰 보기: http://hyvaamatkaa.tistory.com/186

14개월 사용기 보기: http://hyvaamatkaa.tistory.com/235


그 사이 크레마는 두 번이나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 되었고, 나는 알라딘과 리디에서 책을 더 샀으며, epub 파일을 몇 개 더 추가하고 킨들앱까지 설치했다. 


- 가장 최신 버전을 업그레이드 한 이후 크레마리더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알라딘 eink 어플(알라딘 크레마 아님)에서 메뉴바가 사라지는 문제 발생... 어서 크레마든 알라딘이든 둘 중 하나가 고쳐야 할 것 같다.


- 킨들앱은 먹히는 버전과 그렇지 않은 버전이 있다. 그리고 설령 먹히는 버전이라고 해도 책페이지 넘김 모션 때문에 크레마에서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반드시 *맞는 버전*을 구하는 게 핵심. 네이버 이북 카페에 가면 북극김님의 킨들 앱 수정본이 있는데, 한 3버전 정도 굴려보니 크레마에는 이게 제일 나았다. 다만 북극김님 버전은 최신 킨들앱이 아니므로 아마존서 구매한 만화책을 볼 수가 없다.... (미국 아마존에 헬로블랙잭 일본어 버전 전집이 무료이북으로 풀려있다...) 


- 사실 게시물 업데이트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중문책 때문!!!! 중문 epub파일을 몇 개 넣어봤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

1) 크레마리더의 책장은 간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파일명과 별개로 도서명이 간체로 되어 있으면 외부SD에서 불러왔으니 다시 로드해달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냥 안 된다. 운좋게 책 제목에 간체가 없다면 (예: 第七天) 크레마리더에서도 볼 수 있다. 책 내부의 간체는 문제없이 표기된다. 그저 책장에서 전혀 인지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 대안으로 다른 리더 (하다못해 알라딘 크레마 리더라도...)를 사용하는 수 밖에. 


2) 기본 크레마 폰트의 문제인 것 같은데, '원본' 폰트로 두고 봐도 중문 마침표 등이 난감하게 찍힌다. (。가 아니라 º로 찍힘.) 이럴 땐 다른 폰트로 재로딩하면 크게 문제 없다. 개인적으로는 크레마명조를 추천하는데, 나눔명조나 kopub바탕체 등은 간체/번체 구분해서 한자가 구현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간체가 폰트에 포함이 안 되어서 그런듯) 읽을 때 거슬린다. 크레마명조는 그냥 평범하게 고딕체 보듯이 구현된다.


3) 모든 책은 아니고 내 epub 파일이 문제일 수도 있는데... 가끔 애매하게 한 줄씩 짤려서 글이 나온다. 이건 알라딘 카르타와 알라딘 ebook 앱의 경우다. (크레마앱으로는 간체/번체 문제 때문에 아예 열지도 못한다.) 예를 들면 이런 四叔,我还有一件事要问你。라는 문장이 페이지 하단에 위치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다음과 같이 출력된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이렇게 출력됨:




혈압 오른다.

아무리 중국어가 그림에서 발달된 문자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문장까지 그림으로 인식해야겠니 ㅠㅠ 


리디북스 앱으로는 외부 ebook 여는 법을 모르겠고, 반디ebook은 '내서재' 누르면 자동으로 크레마 앱으로 연결이 되고 (따라서 불가), 예스24 for Crema는 내가 ID가 없어서 로그인도 못하므로 앱 사용도 못함. 


다른 epub 구동되는 앱을 돌리면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미 의지는 꺾였다. 걍 되는 것만 읽겠다...


4. 참고로 글자로 운좋게 크레마에서 돌아가는 파일이라고 해도 하이라이트 및 글자 지정에 애로사항이 있다. 즉, 한 자 한 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문단 단위로만 블록설정/하이라이트/메모가 된다... 


5. 그렇다면 이것은 크레마 기기의 본질적인 문제냐고 하면, 그냥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인 것 같다. 크레마에서 킨들앱 돌려서 중문책을 보면 글자 단위로 지정도 잘 되고, 글씨가 잘리지도 않고, 제목이 간체든 번체든 아무 문제가 없다. 


6. 결론: 제대로 된 epub 파일을 구하여 글자 짤림을 방지한다 / 다른 앱을 사용한다 / PDF로 본다 / 그냥 중국어책을 크레마에서 보지 않는다. 


추가: 일본어도 돌려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겐 일본어 epub 파일은 없으므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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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개 (곽경택, 2003)

두사부일체를 보고나니 왠지 영화를 한 편 더 보고 싶어졌다. 원래 조폭 영화 별로 곱게 보지 않는 편인데, 왠지 오늘이라면 한 편 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얼마 전 정우성의 리즈 시절 짤방이 떠오르면서... 그래, 비트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트는 보지 못했고 대신에 정우성이 달리 나오는 (...) 영화 <똥개>를 골랐다.


(1) 솔직히 말해서 감독이 곽경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2) 영화 <똥파리>와 제목을 헷갈려서 <똥개>를 보게 되었다. 뭐 이런 두 가지 오해가 있었지만, 덕분에 영화를 감상했고, 덕분에 이 영화는 언제 한 번 더 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상깊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우성의 연기가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애매모호한 캐릭터까진 좋았는데, 정우성의 묘한 바보 연기가 좀 극단적인 바보연기와 멋있는 척 하는 연기(후자는 사실 똥개 캐릭터를 생각하면 멋있는 척 하면서도 멋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했다)를 오가면서 엄청 혼란스러웠다... 사투리 연기나 그런 건 다 자연스러웠는데 (다만 내가 밀양 사투리를 잘 몰라서 그런가, 영화 속 인물들이 다들 미묘하게 다른 사투리를 구사해서 조금 혼란스럽긴 했다. 어떤 건 경남 어떤 건 경북 사투리... 밀양이 중간지점이라 그런가...) 목소리 연기가 좀 이상했다. 약간 더 담백하게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쬐끔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1. 일단 다들 연기가 출중하다. 정우성 연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개성이나 역의 이해 방식이 다르다고 말할 만큼 정도는 된다. 지금 와서 스틸컷들을 찾아보니 츄리닝을 입고 있는데도 무슨 화보 찍은 것 같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한 번도 TV나 잡지 같은 데에서 보는 멋있는 배우 정우성이 아니라 그냥 왠지 무게는 잃고 싶지 않아하는,무언가를 분출하고파 하는 동네 청년 똥개 같았지, 정우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왜 화보를 찍고 있는겨... 영화 볼 땐 분명 아니었는데...




화보...까진 아니고 광고 찍는 건가....굴러다는 양말이 참 리얼하다.



정애 역을 맡은 엄지원의 연기도 전혀 뒤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차 반장 역할을 맡은 김갑수의 연기는 정말 빛났다. 솔직히 말해 김갑수 재발견 영화같은 느낌!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정도로.


*** 스포일러 등장할 수 있음 *** 


2. 경남 지방 도시 밀양의 면면이 잘 드러났다. 영화 <친구>도 물론 부산+영화 하면 떠오르는 영화일진 몰라도, 솔직히 어떤 부산의 감성을 담아냈다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다. 우리 친구 아이가라든가, 거친 바닷가의 모습 같은 것만 부각되었지, 삶의 면면들이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어쩌면 친구라는 영화가 이미 너무 많이 회자되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나중에 다시 보면 생각이 바뀌려나.)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경우, 아, 이것은 정말 경남의 지방도시다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는 영화였다. 특별히 밀성고라든가, 밀양 시내나 밀양의 시장이나 밀양의 다리들 같은 것들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장소성들은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들이 얽히고 섥혀 발현되는 것이다. 각 인물들이 내비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서로 미묘하게 알듯말듯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 오토바이를 타고 천가와 골목을 질주하는 씬, 부산-대구 고속도로 개통과 얽힌 부동산 이야기와 비닐하우스의 화투판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물론 곽경택 감독답게 조폭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B급'을 지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그 어느 싸움도 멋지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구치소에서의 싸움은 철저히 '똥개'스러운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을 다소 길고 지루하게 보여준다는 점 (어디까지나 관객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등이 매우 훌륭하게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부산과 대구 사이에 낀 밀양이라는 지방 도시의 똥개라는 설정이 영화의 이야기와 연출에 일관성을 부여하면서 일종의 신선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방도시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 중에, 이 정도로 진지하게 지역의 삶을 대하는 메이저 영화가 몇이나 있느냐 이 말이다. 지방은 너무나 쉽게 희화화 되고, 다른 것들이 일어나는 희안한 곳으로 설정되지 않는가. 사투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굳이 밀양일 필요도 없었지만, 밀양이 아니어서도 안되는 그런 장소성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밀양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엔 그리 보였다.)



3. 두사부일체와 비슷하지만, 일종의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2003년 영화라는 점에서 일종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걸지도. 




할머니댁이 떠오른다....ㅎㄷㄷ


인물들도 생각만큼 전형적이지 않았고, 특히 똥개/철민의 역할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똥개의 정곡을 찌를 때 마다, 별 볼일 없는 똥개라는 인물의 내면과 현실이 새로이 보였다. (그만큼 영화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 누구의 입장도 단순하지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똥개라는 영화 역시 2015년에 다시 나온다면 상당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간 곽경택 감독의 스타일이 정말 똥개라는 인물 설정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좋은 영화였다. 쉬려고 영화 봤다가 이것저것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에 한 번 진지하게 펜 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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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사부일체 (2001, 윤제균)

이대로는 뇌가 파업 선언을 할 것 같아 오랜만에 오락영화를 하나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구 주제와 관계가 없고, 별로 생각 안 해도 되고, 웃긴 영화가 선정 기준이었다.

스트레스를 풀 심산이었으니 로맨스 이런 거 말고 무조건 액션! 코메디! 빵빵 터지는 거!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제목만 들었고 실제로 보지는 않았던 <두사부일체>를 보게 되었다. 무언가 다른 영화랑 미묘하게 헷갈려서 보게 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골랐다 싶었다. 

왜냐면 선정 기준에 잘 맞았으니까. 그리고 영화의 시간이 빛바란 만큼,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감독: 윤제균

출연: 정준호 (계두식 역), 정웅인 (김상두 역), 정운택 (대가리 역), 오승은 (이윤주 역), 송선미 (이지선 영어 선생님 역) 등등 이하 생략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참 뻔한 이야기와 뻔하고 전형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뻔하고 전형적인 인물들을 적절하게 사학비리(...)와 엮어 내면서 훌륭한 코미디로 탄생한 것 아닌가 싶다. 특별히 그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들의 연기와, 섬세한 감정선 같은 거 웬만하면 다 가볍게 넘기고 진행속도를 내는 것이 포인트! 


이실직고 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소위 조폭 코미디긴 하다만, 어쨌든 스트레스 풀기엔 적절했으니 불만은 없습니다. 리뷰 읽어보니 2편, 3편은 안 봐도 될 듯. 처음에 정준호 나오고 조폭 싸움 장면부터 나오길래 이 영화 보지 말아야겠다 했는데, 정웅인이 출연하길래 참았다. 그리고 이메일 드립 덕분에 또 참았다. 그리고 전형적이라고는 해도, 오늘날의 조폭 영화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종류의, 과거의 전형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영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려운, 또 한 편으로는 나와서도 안 되는 그런 장르의 영화가 되어버린 듯하여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그나저나 영화를 보고 고향 동네의 아주 유명한 사학재단이 두 어개 떠올랐다. 하나는 동생이 중학교 진학할 적 뺑뺑이로 당첨되어서 내부 비리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그냥 동네에서, 아니 전국구로도 가끔 이름을 떨치는 사학재단으로, 소속 고등학교 뺑뺑이에서 당첨되면 애들이 서로를 붙잡고 엉엉 울던 그런 학교였다. 거긴 요즘도 지방 뉴스를 간혹 장식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도 엉망이려나. 사실 영화가 나온 2001년이면 그렇게 옛날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허용까지 포함하여 영화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너무나 옛날이라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과연 요즘도 저럴까 싶으면서도, 요즘에도 저럴 수 있겠다는 절망감 같은 게 들기도 했다. 


어느새 과거의 장르가 되어 버린 영화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옛날 영화를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 거기다 덧붙여 적어도 당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학교 생활의 면면들, 그리고 누군가는 분개하며 공감할 만한 학교의 비리 같은 것들도 깨알같았지만 말이다.


오늘의 결론: 스트레스 풀기에 적절했습니다! 근데 두 번 볼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는 조폭 코미디!라기 보다는 2001년을 추억하는 향수용 영화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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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요리] 무사카 Moussaka 혹은 메사아 Messa'aa

왠지 이번 학기에는 유난히 룸메들끼리 밥을 자주 먹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아마 지난 몇 년 간 룸메 교체 등등의 험난한 여로 끝에 좀 집이 안정이 되고 있다는 시그널일까.


우리집에서 단체 요리를 하면 글루텐프리+채식 메뉴여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먹으면 아파서 못 먹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요리를 고민하던 와중, 여름 쯤에 이집트 친구가 해줬던 요리가 떠올랐다. 어렴풋한 기억에 맛도 있었고, 재료도 간단했고, 그리고 친구가 만들기 쉽다고 했던 것 같아서 낼름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레시피 좀...


아쉽게도 친구의 요리책은 다른 친구가 빌려간 상태여서, 대신 다른 링크를 받았는데, 내가 먹었던 것과는 좀 많이 다른 레시피였다. 

여태 무사카는 두 종류 먹어봤는데, 하나는 이집트 친구가 만들어준 것이고, 하나는 집 근처 그리스식당에서 먹어본 것이었다. 그리스식당 버전은 고기고기고기!!!!스러운 엄청난 음식이었고 (삶은 마카로니를 막 끼워넣음) 이집트 친구 건 병아리콩과 가지와 토마토가 어우러져서 정말 상큼하면서도 맛있었다. 


친구가 보내 준 링크는 베샤멜 소스에 뭐 재료도 많고, 친구가 했던 것과는 달라보여서 열심히 검색을 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레시피들을 수합해서 내 멋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따.


주로 참조한 레시피는 다음 링크. 

http://kitchenani.com/2012/11/09/messaaa-egyptian-moussaka/ (여기 레시피가 가장 좋은 것 같음.)

http://www.myrecipes.com/recipe/vegetarian-moussaka (향신료 양 가감이 필요한 레시피)

http://www.messyvegetariancook.com/2010/02/26/lebanese-moussaka/ (석류넣은 버전!!! 먹고 싶다!!)

http://abissadacooks.blogspot.com/2010/03/dinner-masa-ha-moussaka.html (병아리콩 들어간 레시피)

http://tableya.blog.com/2012/01/17/egyptian-moussaka-healthy-version/ (아마 좀 더 달달한 버전)



언젠가 고기랑 베샤멜 소스 넣고 해보고 싶긴 한데... 이번에 만들고 나니까 뭔가 무척 힘들어서 다시는 만들지 않을래!!!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사실 어려울 건 아닌데, 중간에 좀 망해서 룸메이트 둘이가 더 달라붙어서 도와줬다. 


과정샷은 없다. 왜냐면 너무 마음이 바빴거든...




오른쪽의 커다란 팬에 보이는 것이 내가 만든 무사카. 만들고 나서 보니, 아, 이거 집마다 레시피가 다른 소울푸드 같은 거겠구나 싶었다. (참고로 왼쪽에 보이는 스프 같은 것은 벵갈식 달요리다. 룸메이트가 홈레시피로 만듦.)



중간에 만들면서 재료여부와 룸메이트들의 의견 수용 등을 통해 이것저것 조정이 많이 되었다. 


만들고 나니 약 7~8인분 정도 나온 것 같다. (다른 요리들도 함께 한다는 전제 하에)

* 없는 재료는 그냥 건너뛰면 되고, 넣고 싶은 재료도 더 넣어도 된다. 자세한 건 하단에 따로 메모. 

* 오븐이 없어도 만들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역시 하단에 따로 메모.


재료:


[구이용]

가지 큰 것 3개 (길게 찢어쓰는 종류의 길쭉한 가지 말고 통통하고 큰 가지임)

붉은색 혹은 녹색 피망 2-3개

감자 2.5개 정도

토마토 1-2개

올리브오일, 소금

 

[소스용]

양파 1/3개 (반개를 썼는데 너무 많았다)

마늘 양껏 

토마토캔, Diced tomato, unsalted로.

토마토 1개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Ground Coriander (갈은 고수씨), 허브(타임 등)


[조립용]

치즈 (아시아고라고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파마잔 강판에 갈아서 사용)


이 레시피는 기본적으로 채소를 손질하고 굽는다 + 소스를 만든다 + 둘을 조합한다로 가면 된다. 



1. 먼저 시간이 많이 잡아먹는 구이부처 처리한다. 피망을 씻는다. 피망의 씨를 제거하고 길게 썰어준다. 어떻게 저떻게 칼집을 내면 껍질 벗기기가 수월하다는데, 하는 법을 몰라서 그냥 포기했다. 


2. 가지를 씻는다. 3cm 정도 두께로 다소 두껍게 가지를 썬다. (가지 껍질을 벗겨라는 레시피도 있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씀) 


3. 팬에 호일이든 유산지든 뭐든 깔고 기름칠을 잘 해준다. (매우 중요!!! 제대로 안해주면 가지가 달라 붙는다...) 팬 위에 썰은 가지를 올리고 올리브오일을 바른 후 소금으로 간을 해준다. 가지를 뒤집어 다시 반복. 


4. 400~425F (204~220C)로 예열한 오븐에 가지와 피망을 넣고 익힌다. 피망은 15-20분 정도면 되고, 가지는 좀 더 오래 걸리는데(과자구울 때 쓰는 팬은 총 20~25분 정도 걸렸고 세라믹 용기는 30+분 걸린듯), 적당히 보고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준다. 바짝 익힐 필요 없다. 나중에 또 익힐 거라서. 


5. 채소를 굽는 동안 소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냥 토마토 소스 생각하면 된다. 우선 마늘을 편으로 썰든 다지든 알아서 준비하고, 양파도 다진다. 


6. 팬/냄비에 올리브오일을 올리고 중간불에 데핀 후, 마늘을 넣고 30초~1분 간 볶아준다. 이후 양파를 넣고 투명하게 갈색이 돌때까지 볶아준다. 


7. 토마토 캔을 투척하고, ground coriander을 뿌려준다. 나는 여기다 토마토도 하나 더 투척했다. 그냥 토마토 캔 두 캔 써도 될 듯. 


8. 필요에 따라 물을 넣고 (나는 물 넣다가 거의 스프가 되어 대참사 발생함, 물은 아주아주 조금만...) 소스가 되도록 졸여준다.  


9. 소금과 후추, 타임 등으로 간을 한다. (Allspice 반스푼, 시나몬 반스푼, ground cloves 1/4스푼을 투척하려 했는데 룸메들이 그것은 베이킹용이라며 못하게 막았다.) 


10. 채소가 익고 소스를 끓이는 동안 감자를 씻은 후 얇게 썰어준다. 감자칩만큼 얇을 필요는 없지만 얇으면 빨리 익으니 더 좋음. 토마토도 썰어준다. 


11. 채소도 다 구웠고, 소스도 얼추 완성이 되었다면 이제 신나는 탑쌓기 시간. 큰 오븐용 팬에다가 토마토 소스를 조금 붓는다 -> 피망 -> 가지 -> 토마토 -> 감자 -> 소스 -> 피망 -> 가지...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레이어를 만든다. (원하면 다른 재료 얼마든지 추가 가능) 


12. 치즈를 맨 위에 끼얹고 375F~400F (200C?)로 감자가 익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익힌다. 




오랜만에 무척 힘들게 만든 요리였다. 몇 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왔었으나, 사공이 많은 덕분에 무사히 강으로 배가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노트:


- 향신료의 역할을 잘 모르겠으니, 없으면 과감히 생략해도 될 것 같다. 있는 걸로 돌려막자 있는 걸로...


- 고수풀을 썰어서 위에 뿌려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사람에 따라 아마 레몬도...? 


- 견과류를 넣어도 아주 맛있다고 한다. 아몬드와 잣을 주로 쓰고, 건포도나 대추야자를 쓰기도 한단다. 이 경우 오븐용 팬에 조립/탑쌓기 할때 중간에 어딘가에 뿌려주면 되겠다. 향신료로 내 룸메들이 반대했던 올스파이스, 시나몬, 클로브 등을 사용해도 좋은 조합이 될지도?


- 치즈는 원래 레시피에는 잘 없다. 보통 베샤멜 소스를 끼얹는게 일반적. 베샤멜 소스는 있으면 무사카의 중후함과 버터버터함을 더해준다. 치즈를 넣어도 맛있긴 한데, 유당불내증인 나는 이걸 먹고 삼일 간 고생했다...ㅋㅋ


- 소스를 만들 때 소고기나 양고기 등의 갈은 고기를 넣어서 만들면 본격적인 식사요리 같은 느낌이 더 들겠다. 한마디로 미트소스로 만들면 된다는 뜻. 굉장히 맛있을 것 같다.


- 단백질원이 필요한데 고기는 싫다면, 병아리콩을 불려서 삶은 후 사용해주면 될 것 같다. 즉, 조립 및 탑쌓기를 할 때 소스-삶은 병아리콩을 맨 밑에 깔아주고, 중간중간에 병아리콩 같이 넣어주면 될 듯. 양은 2컵 분량 정도.


- 근본적으로 깔끔하게 썰어서 먹는 종류의 요리는 아니다. 오븐 팬에서 건져냈는데 지저분해 보인다고 좌절 금지.


- 감자는 소스 물기가 좀 있어야 잘 익으니 소스랑 가까운 곳에 까는 것도 전략적으로 좋은 방법일 듯. 감자는 안 넣어도 된다. 이건 요리의 무게를 더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뿐...


- 오븐에 넣으면 편하지만, 모든 과정을 후라이팬으로 대체 가능하다. 가지도 후라이팬으로 굽고, 피망도 후라이팬으로 굽고....다만 그러려면 조립할 때 넓고 깊이가 좀 있는 후라이팬이 필요할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익힌 후 그냥 한꺼번에 데핀다는 느낌정도로 조립해야 한다.



레시피 쓰고 나니 이건 다음에 사진이나 그림으로 한 번 더 올려야할 것 같다. 익숙치 못한 요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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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요리] 퀴노아 샐러드

우리 룸메 중에 글루텐을 못 먹는 친구가 있다. 소위 글루텐프리만 먹을 수 있는 건데, 문제는 한국요리에서 글루텐 프리 찾기 진짜 어렵다는 점이다. 주적은 간장이다.... 간장이 밀 발효 제품이라 뭐가 어떻게 안된다...ㅠㅠ 각종 장류 중 간장과 함께 발효된 것들도 당연히 자동 제외고... 국수류나 파전류 절대 안되고, 심지어는 보리차도 대접해줄 수 없는 비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룸메끼리 저녁을 먹게 되면 늘 한국요리가 아닌 다른 레시피를 실험하게 된다. 


그렇게 강제로 만들게 된 퀴노아 샐러드. 과정샷은 없지만 제법 괜찮은 음식이 나왔다.





요리법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했다:


http://allrecipes.com/recipe/229156/zesty-quinoa-salad/


준비에 손이 좀 간다. 하지만 막상 준비가 끝나면 그냥 다 섞으면 됨. 


재료: 퀴노아 한 컵, 물, 올리브오일 1/4컵, 라임 2개, 큐민 2tsp, 소금 1tsp, 고추가루 1/2tsp (정확히는 red pepper flakes지만 나에겐 고추가루가 많으므로), 반으로 자른 방울 토마토 1.5컵, 검은콩 삶은 거, 파 (대파 말고 쪽파류), 고수풀 1/4컵, 소금, 호추


1. 검은콩을 불려둔다. 불려둔 걸 삶는다. 이 과정이 귀찮다면 검은콩 캔을 사용해도 좋음. 


2. 퀴노아 한컵 분량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끓인다. 퀴노아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으면 된다고. 일단 물이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뚜껑 덮은 채 10-15분 끓이면 된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퀴노아 포장지를 참조....


3. 토마토를 반으로 썬다. 파를 종종 잘게 썬다. 고수풀도 알아서 잘 다듬는다. 


4. 올리브오일, 라임 짠 거 (2개는 좀 많을 수도 있으므로 적당히 보고 가감), 큐민 2tsp, 소금 1tsp, 고추가루를 섞는다. 난 밥그릇에 섞음.


5. 퀴노아, 토마토 반으로 자른 거, 삶은 콩, 파를 넣는다. 4번 소스를 붓고 잘 섞는다. 고수를 투척하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다. 바로 먹거나 혹은 냉장고에 잠깐 보관하여 차게 만든 후 먹는다. 



다른 따뜻한 음식들이 있다면 냉장고에 보관한 후 차게 먹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없다면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음. 


모든 소스용 향신료는 알아서 가감. 


우리 집 애들은 착해서 내가 어떤 괴랄한 음식을 만들어도 오 좋아! 맛있어 보여! 이런 반응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된장찌개를 끓여도 음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이러기 때문에 별로 안 믿는다. 하지만 솔직히 퀴노아 샐러드는 퀴노아와 고수풀과 라임이라는 평소에 쓰지 않는 함정 재료 때문에 돈이 들어서 그렇지, 실패하긴 좀 어렵다. 큐민도 없는데 걍 룸메꺼 훔쳐 씀... 다 같이 먹는 거니까...


암튼 결론은 파티용 음식으로 좋습니다 유학생 여러분!!!!!


만들 때엔 뭔가 되게 힘든 느낌이었는데 레시피 쓰고 나니까 왜 이리 쉬워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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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카르타 개봉기 및 2주간 사용기 (알라딘 해외배송 이용)

나는 정말 매일같이 PDF 파일을 끼고 산다. 모니터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눈도 아프다. 블루라이트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도 깔아봤지만 떨어진 시력은 어디 돌아올 생각을 안한다. 예전엔 모니터로는 도저히 공부가 안돼서 단행본들도 시원하게 지르곤 했는데 잔고도 걱정되고 나중에 이사갈 때의 짐의 양도 걱정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저기 이동이 잦은 상황에서 책을 매번 들고다닐 수가 없다는 점에서 타블렛이든 이북리더든 뭐든 하나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마치고 나니 아마존의 킨들 페이퍼화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프라임멤버 30불 할인! 89.99불의 저렴한 가격! 하지만 아마존 킨들 페화는 PDF보기에 불편하다는 친구들의 말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실제로 한밤중에 결제까지 했다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도로 물렀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와중 한국에 새로 출시된 크레마 카르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PDF머신이 주요했기 때문에 귀찮은 탈옥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거기다가 알라딘은 US도 있고 해외배송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리디페이퍼 얘기도 했지만 물량 조절 실패, 해외배송이 어렵다는 점, 나는 리디북스 알라딘 열린책들 세계문학 등 여기저기 책들 질러둔 게 있다는 점, 그리고 PDF를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별 어려움 없이 크레마 카르타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에 리디북스 쪽에서 리페가 QC를 좀 실패한 모양이다. 해외에서는 수리도 어렵고 반송도 어려우니 무조건 양품을 뽑아야하는 내 입장에선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알라딘을 이용해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크레마 카르타를 배송받을 수 있다. 하나는 알라딘 US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알라딘에서 해외배송을 선택하는 것이다. 원래는 별 생각없이 알라딘 US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배송비를 포함해도 한국 알라딘이 조금 더 쌌다. 아마 환율 문제인 것 같은데, 한화로 약 10,000원 이상 차이 났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 알라딘은 DHL로 금방 배송해주지만 알라딘 US는 LA로 DHL 배송 후 집까지 육지 배송이었다. 물론 알라딘 US가 배송비가 들지 않아 좋지만, 크레마 카르타는 관세 대상이 아니었고, 책들과는 달리 무게가 그닥 나가지 않으므로 DHL 배송을 해도 배송비는 12,000원 쯤 되었다. (이걸 포함해도 US보다 쌌다.) 거기다가 해외배송 혹은 알라딘 US 주문 시 12,000원짜리 이북 쿠폰도 해당사항이 없고, 케이스 할인권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저런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한국 알라딘에서 해외배송을 택했다. 마침 한국 알라딘 쪽에 마일리지도 있어서 살짝 할인도 받고...(둘이 마일리지 연동이 안된다.)


주문하고 얼마 안되어 파주에서 출고가 된 나의 크레마 카르타는 48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곳에 DHL로 총알 배송되었다. 빠르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한 일주일은 걸리겠거니와 했는데, 월요일 밤에 주문한 걸 수요일 오전에 받으니 매우 정신이 얼얼했다. 아마존에서 프라임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물건이 더 빨리 배송되었어.... 굉장한 충격이었다. 한국의 택배 문화란... (물론 DHL은 한국 회사가 아니다)


아무튼 물건을 수령할 때 정말 근시일에 이렇게까지 기뻤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1. 택배 도착의 기쁨 2. 한국에서 무언가가 옴 3. 염원하던 물건의 지름의 콤비네이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좀 아파서 골골대고 있었는데 아픈 것도 싹 나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ㄷㄷ




무려 파주에서 왔다.




저 사진을 찍은 것은 11월 11일. 영수증에 표기된 주문일은 11월 10일. 한국시간과 미국시간의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이는 실로 미친 속도...




포장은 보다시피 뾱뾱이 바닥과 공기주머니(저거 이름 까먹음)로 대충 채워왔다. 사실 DHL이라 뭐 험하게 구르진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알라딘 박스 자체도 테이프로 칭칭 감아져 있었다. 박스는 별 이상 없이 튼튼하게 도착함. 왼쪽의 레디 잇츠 쇼타임 박스를 집어든다. 




씰이 뭔가 범상찮다. 그래도 씰 역할은 하는 듯하다. 깔끔하게 안 떼진다. 




열면 또 뾱뾱이가 들어있고, 중앙에 크레마가 들어있는 박스가 또 들어있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많이 보았을 크레마 카르타 박스다. 




뒷 껍데기. 별거 없다. 한국 이퍼브에서 디자인하고 대만에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안드로이드 4.0.4에 용량은 8GB, 램메모리는 512MB다. 안드로이드 버전이 내 폰보다 높다.... ㅠ





박스 옆면. 백라이트가 켜지고, 터치 기능이 탑재되었으며, 안드로이드 기반의 기기고,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며, 이잉크 + HD 기계란다. 몇 년 사이에 이북리더가 엄청 발전했음을 느꼈다. 




박스를 또 열면 크레마가 예쁘게 잠들어있다. CREMA라고 찍힌 보호필름이 덮혀 있다. 글씨가 없었으면 그냥 붙인 채 썼을 텐데... 이북 카페에선가 어디서 들었는데 아세톤으로 글자를 지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세톤이 없으므로 fail. 





구성품은 단촐하다. 크레마, 사용설명서, USB 케이블. 사이즈 비교를 위해 쓰던 문방구 칼을 옆에 둬봤다. 6인치는 작은 크기다. 사용설명서에는 기본적인 주의사항과 전원 켜는 법, 보증서 등이 들어있다. 더욱 자세한 기능에 대한 정보는 크레마 안에 PDF 형식으로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다. 




내 손은 작은 편인데, 그럼에도 한 손으로 잡는 데에 크게 문제가 없다. 그리고 정말 놀랍도록 가볍다! 뒷면의 우레탄 같은 재질 덕분에 미끄럽지도 않다. 2주일간 써본 뒤 지금 생각엔, 세로로 파지하는 데엔 전혀 어려움이 없고 가로로 볼 때엔 하단의 버튼이 조금 불편하다. 




크레마의 하단. 충전을 하면 맨 왼쪽에 붉은 등이 들어온다. 그 옆은 전원버튼인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손이 자동으로 가는 위치는 아니다. 그 옆으로 리셋 구멍, 미니 USB 단자, SD 슬롯이 들어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고무패킹으로 막아둔 다음에 방수 기계를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망상도 안해본 것은 아니다...ㅋㅋ 




크레마 뒷면이다. 별 거 없이 깔끔하다. 




크레마를 켜니 배터리가 조금 들어있다. 백라이트를 켜고 끄려면 패널 하단의 버튼을 오래 눌러주면 된다. 와이파이를 켜고 펌업을 했다. 업그레이드 전이라 배터리 잔량 표기가 안 되어 있는데, 업그레이드 후에 보니 약 47% 정도 충전된 상태에서 왔다. 충전 하면서 이것저것 만져봤는데, 충전 속도는 나쁘지 않다. 전기 먹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비율로 따지면 훌륭하다. 




이것은 약 2주 뒤의 사진이다. 크레마의 Sleep 폴더에 이미지를 넣으면 슬립화면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이미지도 제법 선명하다. 흐려보이는 것은 1) 이미지가 원래 해상도가 낮음 2) 카메라 포커스로 인해 배경 날림 발동...



이렇게 영화 포스터 넣어두면 괜히 뿌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자객섭은낭 미국 버전 포스터가 가장 예뻤다... 그거랑 영화 촬영 스틸컷.... ㅋㅋ 

이북 카페 이런 곳에 가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재밌는 이미지들 많이 올려준다. 




보다시피 배터리 잔량이 표기된다. 

파일 제목 부분에 보면 잔상이 남아있는데, 이처럼 어두운 화면에 대한 전환을 거듭할 때 잔상이 많이 남는다. 그냥 흰 배경에 글자만 있을 경우, 잔상이 신경 쓰인 기억이 없다. PDF로 스크롤 해서 봐도 딱히 잔상제거를 위해 깜빡깜빡 하는거 쓸 필요가 없었다. 





PDF 파일은 이렇게 화면을 가로로 두고 본다. 그냥 종이 읽는 것 같다. 영어야 뭐 글자가 단순해서 어려움이 없는데, 한글은 어떨지 모르겠다. 중국어나 일본어는 조금 활자를 많이 키워야 할지도. 



책상에 굴러다니던 모나미 볼펜과의 비교컷. 6인치는 작다. 사진의 크레마가 보여주는 글자 크기는, 인쇄 사이즈로는 워드 기준 한 폰트 8~10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원래도 종이 아끼려고 작게 인쇄해서 별로 힘들지는 않다. 2단 논문은 좀 힘들 것도 같다. 




메뉴 구경. 알라딘에서 질렀으므로 알라딘 ebook앱이 탑재되어 있다. 인터넷은 와이파이 로그인할 때만 쓴다. 속 터지므로. 전자사전은 국어사전/영한/한영이 있는데, 한번 다운로드 받으면 그 뒤로는 온라인이 아니더라도 사용이 가능하다. 나쁘지 않다. 열린서재 탭도 있는데, 앱 5개 등록이 가능하다. 물론 이는 좀 적어서 다른 서랍장 앱을 깔아서 사용한다. 자세한 것은 하단에...





크레마 카르타를 고민할 때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이 돌아가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인증샷. 열린책들에서 작년에 내놓은 eink용 앱인데, 업데이트가 안돼서 좀 애로사항이 꽃폈지만 그래도 결국엔 해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그냥 책 종이 같다. 활자가 제법 크니 한글도 읽기 어렵지 않다. 활자가 작거나 크면 기본적인 조절은 된다. 한마디로 작년 이맘때쯤의 열린책들 안드로이드 앱을 떠올리면 된다. 




진짜 책 같다. 뿌듯뿌듯. 




사용 후 소감 


- 앞서서 말했지만 고무패킹 보완해서 방수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잉크가 워낙 설탕 액정으로 유명하여 쓸 때마다 바짝 긴장하게 된다. 심장이 약하시다면 케이스 구매도 고려해볼만하지만, 케이스는 무겁다고 한다. 케이스 없이 쓰면 밤에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어렵지 않게 들고 볼 수 있다. 팔 하나도 안 아프다.


- 최근의 펌업 이후로 터치 감도와 반응도 많이 개선되어서 스크롤도 훨씬 수월해졌으며, 약간의 인내와 정신집중을 통해 하이라이트도 할 수 있다. 펌업 전에는 터치 정확도가 정말 처참했다. 특히 기계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노답 수준... 나는 A를 쳤는데 S가 입력되는 건 기본... 지금도 기계 가장자리의 터치 정확도는 다소 떨어진다. (PDF에서 밑줄 긋다보면 느낌이 온다.) 화면 가로로 돌리고 타이핑 하면 그만큼 키보드도 커지므로 아무 문제 없다.


- PDF 파일보단 이북 읽는 게 당연히 좋다. 하지만 PDF도 볼만하다. 단, 1단 논문이고 도표나 삽화가 많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나는 대부분 1단 논문이라 큰 문제 없이 애용하고 있다. 눈이 편하기도 하고, 기계를 잡고 있어서 뇌가 착각해서 그런가 크레마로 읽으면 집중도도 높은 편이다. 


- 다른 사람들 말대로 알라딘 앱과 리디앱은 훌륭하다. 특히 알라딘 앱은 정말 매끄럽다. 크레타 기본 앱은 좀 별로였는데 펌업 후 좋아졌다. 제법 쓸만하다. 


- 해외배송인 만큼 보호필름을 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원래는 적당히 아무거나 보호필름 사서 오려 쓸까 했는데, 그냥 써도 상관없다. 오히려 빛도 반사되지 않고, 묘하게 매트한 것이 종이 느낌도 살짝나고 해서 만족중. 어차피 깨질 액정은 깨지게 되어있다. 특히 이북리더라면.... 손톱으로 긁어대면 스크래치가 생기겠지만, 그 외엔 크게 뭐 기스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 전원 버튼이 조금 불편하다. 2주가 다 되어가고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기를 썼는데 아직도 손에 안 익는다.


- 페이지 넘김 물리키 같은 거에 미련은 없다. 하지만 펌업 등을 통해 페이지 홀드 버튼 같은 게 있으면 진짜 좋을 것 같다. 책이라 생각하다보니 자꾸 화면에 손이 가는데, 손이 가면 터치가 작동한다 ㅠ_ㅠ 홀드 버튼을 켜면 화면에 손을 대도 책이 움직이지 않는 걸로! 


- 펌업을 통해 안드로이드의 백버튼 및 메뉴버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버전의 크레마가 나온다면 별도로 최소한 백버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백버튼 켜기 위해 기기 하단을 스와이프 할 때마다 원하는 백버튼은 뜨지 않고 페이지가 넘어간다.... 


- 한국 이퍼브가 공밀레를 시전 중이다. 무슨 각오가 섰는지 미친 펌업과 피드백을 제공 중인데, 얼마나 갈지 지켜봐야겠다. 


- 언젠가 8인치 정도 되는 이북리더가 나오면 지를 지도 모르겠다. PDF 보기 좋다.


- 백라이트 진짜 좋다! 물론 그냥 스탠드를 켜도 되지만 이불 속에 들어가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 화면 상단의 상태바를 터치하면 와이파이와 백라이트 조명 기능이 나온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유용하게 쓰는 중.


- 내 크레마의 인터넷 창이 좀 미친 것 같다. 학교 와이파이 연결을 하려면 인터넷 브라우저로 진입해서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해야하는데, 매번 브라우저가 다운된다. 아마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유도된 사이트가 아닌 다른 사이트 접속이 막혀 있는 것 같다. (즉 A사이트 주소가 자동으로 B사이트로 이동되는 게 막혀있는듯? 확실친 않음.) 그래서 찾은 해결방법: 알라딘 앱에 진입하여 서점 -> 신간을 조회한다. 그러면 알라딘 앱 내에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구동시키므로 해당 창을 통해 로그인이 가능하다. 굿굿. 



깔아둔 앱


처음에 어떤 앱을 깔아야하나 매우 방황했으므로 어떤 앱 깔았나 공개합니다:


1. 화면 회전 제어

카르타 기본 앱에서도 가로 전환이 되지만 한 방향으로만 된다. 그리고 다른 앱에서도 가로보기를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앱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광고버전이므로 앱구동 후 약 3초 간 기다린 후 메뉴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PDF는 가로로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세로로 보면 작은 글씨 때문에 눈 나빠질 것 같음.

네이버 이북 카페에서 앱을 찾았다. 


2. AppDrawer

역시 네이버 이북 카페에서 찾았다. 열린 서재에는 앱이 5개 밖에 등록이 안되는데, 그보다 많은 앱을 설치하게 되면 앱 교체가 매우 귀찮아진다. 따라서 이런 앱을 통해 한번에 깔린 앱을 모두 보는 게 좋다. 다만 바로 사용할 것은 못되고, 카페의 해당 앱 올려주신 분의 설정을 따라한 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3. Smart Booster 등 메모리 관리 프로그램

512MB의 처참한 메모리를 자랑하므로 램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자동 종료 프로그램 같은 것보다는 수동으로 프로그램 종료 및 정리가 가능한 앱이 좋은 것 같고, 무조건 용량 작은 게 답이다. Smart Booster를 쓰는 이유는 1. 화이트 리스트 관리가 용이하고 2. 화면 상단에 상시 버튼을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버튼 누르면 메모리 정리가 됨. 


4. 리디북스 앱

좋다. 잘 돌아간다. 카페랑 구글 어디 검색하면 e-ink용 앱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5. 열린책들 세계문학

세계문학을 지른 사람 한정이겠지만, 2014년인가 열린책들/북잼 측에서 업로드한 e-ink용 앱을 사용하면 된다. 작년 이맘 때쯤 열린책들 세계문학 앱과 같은데, 조금 귀찮다. 일단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뜨는데, 그냥 확인 누르고 넘어가면 아무 이상 없다. 어차피 구글 플레이가 없으므로 업데이트도 안된다... 그리고 클라우드 계정 연결할 때 조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는 발생했다. 도대체 어떻게 책들을 다운받은 건진 모르겠지만, 자꾸 구매서적 열람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덧붙여 혹시 신간을 구입할 예정이라면 아마 별도로 폰이나 타블렛 통해 구입한 후 조회해야 할 것 같다. e-ink용 앱으로는 구매가 안된다. 


6. Adobe Acrobat

다른 사람들은 각종 뷰어를 쓰지만 나는 그냥 어도비 아크로뱃을 깔았다. 램 관리만 잘한다면 어도비도 잘 돌아간다. 앱도 그냥 구글로 검색 가능. 하이라이트와 메모 때문에 사용한다. 드랍박스를 통해 연동하면 굿.


7. 드랍박스

잘 돌아간다. 컴퓨터랑 PDF 연동해서 쓰면 훌륭하다. 드랍박스 내 뷰어보다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열기를 통해 어도비로 문서를 열람한다. 이때 문서가 기계에 다운받아지는 것 같다. 즉, 온라인 연결이 되지 않아도 파일 열람에 문제가 없으며, USB 연결해서 보는 것보다 편함.


8. 기타: 난 안 깔았지만 만화책이나 이미지를 본다면 퍼펙트뷰어 등이 사용이 가능하며, 이름은 까먹었는데 폰에 깔린 앱을 크레마에 전송시키는 앱도 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 헤맸기 때문에 한 줄 더 첨언하자면, apk 파일들은 크레마를 컴퓨터에 연결했을 때 따로 폴더를 생성시키지 않은 채 바로 복붙하면 열린서재에서 선택 및 설치가 가능하다. 



케이스


남들은 크레마카르타 정식케이스다, 지마켓 발 2500원짜리 국민케이스다 뭐다 하는데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며칠이고 페화 케이스들을 들여다 보다가 돈도 아끼고 할 겸 아마존에서 7인치짜리 기본 파우치를 질렀다. (http://www.amazon.com/dp/B00I8T4J5C/ref=twister_B00DS4G2AW?_encoding=UTF8&psc=1)

음, 다시 사라면 안 살 것 같다. 파우치 자체의 퀄리티는 괜찮은데 6인치 기기를 넣기엔 너무 커서 불안불안하다. 결국 뾱뾱이를 파우치에 함께 집어넣고 다닌다. 가방에 여러번 넣고 다녔는데 여지껏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늘 심장에 좋지 않은 듯.... 

만약 다시 사라면 10불 내외의 페화 전용 파우치 (케이스는 사용이 안됨)를 살 것 같다...




업데이트 (2015/12/15)

->> http://hyvaamatkaa.tistory.com/193


업데이트 2 (2017/1/29)

->> http://hyvaamatkaa.tistory.com/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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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 Trip Through China (1916, Benjamin Brodsky)

어제 저녁에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기획이 있어서 보고 왔다. 




A Trip Through China 

1916

Benjamin Brodsky

DCP, 108 min



스틸컷[각주:1]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행사 공지에서 빌려왔다. 


이 영화는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계 미국인이 만든 영화로,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중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촬영한 기록영상들을 모아 편집한 영화다. 어디까지가 직접 촬영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들의 촬영본을 따온 것인지 좀 불분명하다고 듣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그가 만든 것이 맞다. 브로드스키는 이민자로, 때로는 폴란스키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영문 이름은 Brodsky니 브로드스키가 맞는 이름이겠다. 


원래 세일즈맨이자 투자가에 가까웠던 그가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의 권유로, 중국 현지에서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를 중국의 서양인들에게 상영했을 뿐 아니라, 따로 강연가를 고용하여 미국에서도 순회 상영을 다녔다고 한다. 당시 1917년에 공개 상영된 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공개상영되는 자리였다고 한다. 2년 후였으면 100주년 기념이었을듯...뿐만 아니라 싱가폴 등 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상영을 했지만 뭐 좀 기록들이 불분명한 것 같다.


무성영화여서 따로 음악가 두 분이 동행하셔서 라이브로 신디사이저 반주를 해주셨다. 우리가 본 버전은 2013년 대만의 국가전영중심, 한국으로 치면 영상자료원 같은 곳에서 복원한 버전이다. 총 108분으로, 홍콩에서 시작하여 광저우, 수저우, 항저우, 상하이, 티엔진, 북경까지 여행하며 찍은 영상들을 모은 작품이다. 중간중간 코멘트들 (무성영화니까 화면상 글자로)이 등장하는데, 몇몇은 관찰을 전달하는 내용이었지만 나름 재밌게 하려고 만든 코멘트들도 있었다. 복원본의 한계인지, 원래 편집이 그랬는지, 혹은 당시 상영되었을 때엔 강연가와 본인이 함께 영상을 동반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초반을 제외하고는 장소들이 마구 섞인다. 그러니까 화면상으로는 천진에 있어야하는데 홍콩이나 광저우의 장소들이 나온다거나, 앞에서 쓴 화면들을 자꾸 재활용한다거나. 아마도 브로드스키의 사고와 관심사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 맥락이 조금 부족한 오늘날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들도 없잖아 있었다. 





완결된 글을 쓰기 귀찮으므로 여기서부터 짤막한 감상.


1. 

아는 장소들이 나온다는 것이 무척 재밌었다. 특히 홍콩의 경우 대부분의 장소들은 거의 다 대략적으로 분간이 갈 정도였고, 생각보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100년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심천을 떠올리며 아, 나도 저렇게 역사가 좀 긴 곳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음을 부정하기가...ㅋㅋㅋ 뭐 홍콩 땅덩어리가 작은 탓도 있겠지 싶다. 상하이의 와이탄의 경우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경의 전문과 자금성이었다. 전문의 경우 그 모습이 정말 완벽히 그대로 싱크로가 되어서 그 익숙함에 놀랐고, 자금성의 경우 익숙하지 않아서 놀랐다. 궁내야 익숙할지 몰라도, 자금성을 둘러싼 풍경이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 천안문광장을 비롯한 각종 정치중심기구들이 없는 고궁 주변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정말 담장 너머로 궁궐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천안문 광장의 모습이 없는 고궁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2.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언급이 제법 있었다. 미국 관객들에게 상영했을 때, 그들이 당시 미국에 대거 유입되었던, 동시에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쿨리들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애초에 당시 미국인들은 중국의 쿨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영상 자료는 어떤 상상을 촉발시켰을까? 진짜 제일 궁금했던 부분. 


2-1.

'노동'에 대한 감독의 입장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화의 소재로 삼는다. 물론 이는 '중국인'이라는 몸의 존재를 통해 바라본 노동이므로 한층 더 복잡하지 않았나 싶다. 


3. 

앞서 언급했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미친듯한 재활용의 향연이었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4. 

친구의 말대로 영화 속에는 강과 바다, 물 위의 교통수단(다양한 배)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한 편으로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영화를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성) 영화 카메라가 담기에 좋은 그림'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5.

영화는 근본적으로 러시아계 미국인인 그의 호기심, 그리고 미국의 관객들이 가질법한 호기심을 만들고 풀어나간다. 그곳의 서양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곳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 말이다. 다소 파편적이어서 깊이는 부족할지 몰라도, '본다'라는 감각을 가장 충실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영상 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브로드스키가 중국을 세계의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언어적, 비언어적 코멘트들이 흥미로웠다. 예컨대 다른 나라들을 언급하거나, 미국과의 차이를 언급하는 방식들 말이다. 


6. 

몇몇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촬영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카메라 앞에 세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를 들어 원세개 아들 세명이 인사 몇 번씩 하는 장면... 요즘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세계에 카메라라는 물건과 인간이 관계하던 방식이 궁금하다. 물론 카메라라는 물건을 쥐고 있던 백인/미국인의 존재 또한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사형수의 형집행장면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었고 (결국 난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가림 ㅠ), 그 장면에서 또 한 번 놀란 것은, 누군가가 카메라 앞을 얼쩡거리는 바람에 안보이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카메라 찍게 비켜라고 손짓하는 장면이었다. 사형장면을 영화 카메라에 담는다고?!

 

7. 

영화를 보다보니 예전에 한국에 대한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났다. 독일 신부였던 베버가 촬영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라는 무성영화였는데, 배급용 영화, 즉 상업영화적 성격이 강한 브로드스키의 중국 영상과는 달리 영상기록의 성격에 가까웠기에 마냥 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같이 영화를 본 중국인 친구가 100년 전 칭화대의 모습이 나오자 사진을 찍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나에게 익숙한 무언가의 100년 전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신기해할 것 같다. 




 


  1. http://filmstudiescenter.uchicago.edu/events/2015/trip-through-chin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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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The Assassin, 2015)

업데이트 된 리뷰 -- http://hyvaamatkaa.tistory.com/204


시카고 영화제에서 놓친 영화가 꽤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객 섭은낭이었다. 놓쳤다기 보다는 그냥 관람을 포기했다. 상영시간은 단 두 타임에,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갈라 프레젠테이션으로 나오는 영화표를 내가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지아장커 영화도 매진으로 결국 못 봤으니...


불행 중 다행으로, 자객섭은낭이 미국 전역에 개봉하였다. 대규모 개봉은 아니고 몇몇 도시들 극장들 위주로 하는 개봉인데, 이곳에서는 약 1~2주만 스크리닝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로윈날 할로윈 파티는 안 가고 영화관에 냉큼 다녀왔더란다. 




<자객섭은낭 刺客聶隱娘> 

대만 2015

허우샤오시엔 候孝賢  

출연: 서기, 장진, 사흔영, 츠마부키 사토시 등



1. 


이 영화는 시네마토그래피 하나만으로도 영화관 가서 볼 것을 강추할 만하다. 영화 공부하는 분들과 같이 갔는데, 다들 영화 끝나고 제일 처음 한 말이 영상감독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필름 영화에서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영상미에 대한 각종 실험으로부터 얻은 노련함을 집약해둔, 황홀한 영화였다. 일단은 당나라가 배경이고, 고증이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조금 욕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증이 뭐 대수일까, 필름 카메라로 저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예전에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을 보았을 때 발로 뛰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탄복한 적이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를 훨씬 넘어섰다. 발로 뛰고 인간이 만들어내고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을 온갖 감각으로 마주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철학과 노련함으로 담아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느낌이다. 더 폴이 예쁜 사진들을 잔뜩 모아서 황홀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면, 자객 섭은낭은 이 세계를 정말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수묵화로 담아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렸다는 표현보다는 담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것은 감독과 제작진의 집념이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산물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허우샤오시엔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납득이 갔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100%, 아니 120%로 담아내는 능력이 부럽다. 


(대신에 영상미가 강조되어 영화 속 식생이 좀 장난 아니라는 것이 함정... 냉대~온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부터 남쪽 열대지방에서 날 것 같은 나무들까지 막 다 나온다....참 넓은 동네에 사는구나 너희들... 어라 그러고보니 무협영화의 단골 대나무가 안 나왔네?!)



포스터의 수묵화도 멋지지만 영화는 더 멋있습니다 여러분. 역사와 전통의 수묵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영화로 배운 기분입니다...




2. 

사운드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배우가 악기 뜯는 장면은 매우 거슬렸지만 그것은 내가 소싯적 국악동아리에 몸담았기 때문에 예민해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 우리 동아리 친구들은 영화관에 가서 사극 영화를 보면 악기에 매우 집중한다. 예컨대 미인도를 보는데 배우의 가야금 연주 때문에 다들 확 깼다며 투덜투덜 했음...)  

각종 바람 소리, 새소리, 옷자락이 사부작거리는 소리, 발걸음 등등 여러 소리들이 한없이 증폭되어있었다. 소리의 증폭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우 조용했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나의 소리가 때로 매우 신경쓰였다. 소리를 증폭시킴으로써 소리가 없는 것, 혹은 조용한 것에 대한 감각 또한 증폭시킨 셈이다. 조금 이상한 비교일 순 있겠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은 생물체 아리에티가 느끼는 시끄럽고 거대한 세상을 통해 고요함을 소리로 채웠다면, 허우샤오시엔은 소리를 고요함으로 채운 것이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고요함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게끔, 또한 날카롭게끔 만든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객'의 이야기이니 이만큼 적절할 수가 없다. 


덧붙여 이는 (어떻게 보면 허우샤오시엔이 공언한) 무협영화라는 장르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무협영화에서는 칼이 부딪히는 소리, 기합 소리, 맞는 소리 등등이 매우 강조되곤 한다. 허우샤오시엔은 무협영화에서 일종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영화적 문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익숙한 문법을 새로운 감각을 통해 경험케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는 지침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일단 익숙하니까 보면서 마음이 편하다), 익숙한 것을 달리 생각할 여지도 제공하였다. 나도 언젠가 다른 매체를 통해 응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우 놀라운 전략이다. 


배경 음악의 사용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때로는 매우 낯선 음색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음색들이 연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절하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음악 사용에 집중해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볼법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어머 미쳤어




[이하 스포일러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3. 

영화에서 등장하는 액션 씬들은 이 영화가 분명히 무협영화임을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무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이다. 자객 섭은낭은 조용히, 우아하게, 그리고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상대를 제압한다. 장풍을 쏘거나, 허공답보를 하며 날아다니거나, 말도 안되는 괴력을 과시하거나, 검 끝에 서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갈고 닦은 현실 속 절정고수라면 저렇게 할 것 같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의 규칙을 따른 이펙트 사운드 덕분인지, 혹은 섭은낭이라는 말수 적고 자객다운 캐릭터 덕분인지는 몰라도 무협영화의 냄새가 짙게 나며, 기존의 무협 영화들을 비웃지도 않는다. 다른 것들을 비판함으로서 리얼리즘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간다고 느낀 부분이 아마 이런 점들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액션 씬들의 호흡이 다소 짧다는 것이다. 기존의 무협 영화는 액션씬을 매우 강조하여 보는 이를 즐겁게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호흡을 짧게 함으로써 오히려 액션 씬들을 부각시킨다. 대체로 매우 고요요하다가도, 화면이 전화되며 날카롭게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등장할 때마다 흠칫 놀랐다. 액션 씬들도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진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정중동(靜中動)과 같은 배치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가 느리다고 말했는데, 내 생각엔 '느리다'기 보다는 다른 시간성(temporality)을 강조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무협 액션이 탄생할 때까지의 빚어져야 할 관계성과 자객의 그림자 같은 존재를 부각시킨 것일 뿐이라고. (사족: 실제로 일본의 자객과 같은 닌자忍者는 인내하는 자다...그나저나 일본판 제목은 검은 옷을 입은 검은옷의 자객...黑衣の刺客) (사족2: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는 참 느슨한데 인물 간의 관계는 참 복잡하게 얽혀있다...)




4.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는 다소 파편적인 스타일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마도 선택과 집중을 매우 잘했다는 것의 방증이지 않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객'이라는 캐릭터에 영화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섭은낭이 자객을 수행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 모든 것을 조용히(영화가 조용해서 나도 반드시 조용히 봐야한다) 지켜보는 내가 자객이 된 것처럼, 영화의 화면과 그 너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어내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아무리 고요하지만 모든 화면이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바람 소리와 같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바람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비단 소리 뿐만이 아니라 차양막이나 비단, 촛불, 나무, 풀잎, 구름 등 시각적인 매체들도 총동원 하였다. (특히 티엔지안田季安이 방에 있을 때 섭은낭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이전에는 본적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면이다. 매우 충격 받았다.) 이러한 감각의 확장 덕분일까, 관객은 스크린에 비쳐진 풍경 이상의 넓이와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써놓고도 나중에 읽으면 무슨 미친 소리야 할 만한 문장이긴 한데,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앞서 말한 <더 폴>이 아기자기한 프레임 속의 판타지 세계를 상상케 했다면, 자객 섭은낭은 프레임은 그저 눈길이 가는 곳일 뿐, 마치 내가 그 속에 빨려들어가 영화 속 세상의 일부가 된듯한 느낌을 준다. 스케일과 화려함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그 우아함에 압도되는 느낌? 



5.

이 영화를 보고나서 왕가위의 <일대종사 一代宗師, 2013> 생각을 간간히 했더란다. 둘다 무협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느낌인데, 그 지평이라는 것이 사뭇 다른 듯 하다. 일대종사의 화려함과 다소 난잡한 스토리(반드시 엽문 이야기를 알아야만 이해가 갈 정도로...)는 기존 무협영화를 정면 돌파하여 새로운 길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슬로우 모션의 활용, 거대한 눈밭의 붉은 꽃과 같은 영상들은 무척 세련되었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없는 것도 만들어낼 것 같은 영화 감독의 패기가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반면 허우샤오시엔의 자객섭은낭은 기존 무협영화를 품어내며 새로운 지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느낌에 가깝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한껏 담아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암만 눈씻고 봐도 중국 건축양식이 아닌 것 같은 건물들이 등장하고, 실제로 촬영도 대만, 중국, 일본(교토)을 오가며 촬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나라를 제대로 재현 못했다고 욕 먹는거지만, 세트가 아닌 세계를 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뭐 상관없다. 재현 못하면 어때, 어차피 당나라 소설인데. 

요컨대 왕가위 영화만큼의 충격적인 느낌보다는 조용히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일대종사를 보고나니 다른 무협영화에 대한 실망감이 들었다면, 자객섭은낭을 보고나니 다른 (분위기 있는) 무협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물론 일대종사를 본지 2년이자 지났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제 한 번 연속으로 보고 비교를 해보는 것으로...



6. 

나는 허우샤오시엔 영화가 그간 무협영화에 대한 훌륭한 변이라고 생각했다. 무협영화라는 장르가 모색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을 제시하면서도, 기존 영화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그런 영화들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무협영화의 풍경들은 늘 아름다웠다. 대나무숲, 멋진 기와건물들, 첩첩산중의 안개 등... 하지만 너무나 정형화된 나머지 관객들은 이들을 보면서 신비로운 중원의 이미지를 소비했을 뿐,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무협영화는 일단 액션이 멋지잖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무협의 이야기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한껏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일종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날아다니지도 않고, 번개나 비바람을 동원하는 등 자연을 호령하지도 않는다. (사족인데, 자연 속을 거니는 인물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이들을 축소시켜 촬영한듯 했다. 예컨대 갈대라든가 길가의 관목 등의 크기, 그리고 배경의 암벽 등은 그 크기가 극대화 된 반면 인물들은 아주 작아보이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영화 자객섭은낭이 무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말이었다. 영화사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한 듯해 내가 다 영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7.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목적에 따라, 추구하는 지향점에 따라, 익숙한 템포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일대종사보다는 조금 더 접근하기 수월한 영화일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지루해서, 답답해서, (자막 퀄리티에 따라 - 영문 자막은 헬이다 헬) 이해가 안 가서 상영관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ㅋㅋ 나는 허우샤오시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특히 과거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추천하고프다. (같이 관람한 분들에 따르면 기존 영화작과의 비교가 제법 쏠쏠하다고 한다.) 덧붙여 혹시 보고 싶다면 꼭 영화관에서 볼 것을 권한다.



덧:

스토리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슬프게도 영어 자막 덕분에 스토리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 사극이나 중국 무협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보는 것은 지옥이다.) 심심하면 고문 쓰고 (하지만 고문을 가장 많이 쓴 섭은낭 스승님의 연기는 국어책 읽기 style... 초반에 몰입도 떨어져서 혼났다), 애초에 대사가 적은 영화라 나의 일천한 중국어를 믿을 수가 없어서 자막 열심히 봤는데 혼돈의 무아지경에 빠졌다... 혹시 나처럼 불쌍한 영혼이 있을까봐 인터넷에서 건져온 인물관계도를 첨부합니당...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 거 몇 개가 있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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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의 음식목록 (기록용)

그간 해먹었거나, 혹은 앞으로 해먹어봐야겠다 싶은 음식 목록. 기록용. 

(2015/10/10 수정)


Baked Red Potato

1. 붉은 감자와 고구마를 씻고 눈을 제거한다. 

2. 깍둑썰기 한 후, 큰 볼에 넣고 올리브유 + 소금 + 후추 + 허브 (로즈마리가 좋겠지만 타임도 나쁘지 않음)로 버무린다.

3. 450F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25~30분 기다린다. 


-> 제대로 된 락앤락을 쓰지 않으면 감자가 빨리 맛이 간다. 제대로 된 걸 썼다고 쳤을 때 최장 1주일 정도 버티는 듯. 


깻잎무침 

 - 실패 전적이 있음.


Rosolli 

 - 이거면 될 것 같다. http://www.food.com/recipe/rosolli-finnish-beetroot-salad-196322


터키식 샐러드

 - 드레싱 필요 없어서 짱 좋다. 한 번 해서 쟁여두고 먹되, 토마토는 방울 토마토 사서 그때그때 넣어먹는 게 좋을 듯. 1주일 정도가 맥시멈. 


페스토

 - 바질 페스토 사먹었는데 작은 병으로 약 5~6끼 이상 먹을 수 있었다.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고, 여유가 되면 직접 해먹어도 될 듯. 대안으로 깻잎 페스토가 있지만 귀한 깻잎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ㅠㅠ 소스 끓여 먹는 것보다 쉽고 좋다.

 - 숏파스타로 하는 게 맛있다. 길쭉한 것들 다양한 굵기로 시도해봤는데 영... 심지어 엔젤헤어로 해먹었을 땐 내가 파스타를 먹는 건지 비빔국수를 먹는 건지 분간이 안 갔음.


돼지고기 토마토 스튜

 - 이름을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삼겹살 같은 부위가 있으면 제일 좋고, 없으면 뭐 있는 걸로 요리하면 된다. 마늘 볶고 돼지고기 볶고 버섯 볶고 거기다가 와인을 들이 붓는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중 뭘 썼는지는 좀 아리송하군 ㅠ 약 20~30분 정도 은근하게 끓이다가 홀토마토 1캔 들이붓고 마저 끓인다. 아마 간은 안해도 될거고 후추와 허브 첨가. 참고로 홀토마토 캔 아니어도 상관 없음. Diced도 써봤는데 오히려 편했다. Unsalted로 사는 게 심신에 좋은 것 같다. 


우동 국물

 - 대량작업이 요구되지만 한 번 끓이면 마음이 편하다. 대신에 육수가 5일 정도밖에 못 버텨서 가끔 간이로 해먹기도 하는데, 확실히 소량은 맛이 좀 덜하다. 근본적으로 가쓰오국물이므로 각종 소스나 다른 육수로 사용 가능. 


다마고야끼 

 - 나름의 정식 버전과 간단 버전이 있는데, 간단 버전도 맛이 나쁘지 않았다. 간단 버전이 시간을 확 아낄 수 있음. 간단 버전은 인터넷 검색을 해봐야 할듯.


톳 무침 

 - 슈퍼에서 어렵지 않게 마른 히지키를 구할 수 있다. 불리는 데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미리미리 준비할 것. 소스는 귀찮으면 유자폰즈소스를 쓰면 되고, 정말 각잡고 할 일 있으면 가쓰오로 다시를 내서 만들면 된다. 각잡고 만든 것이 압도적으로 소스가 맛있기는 하다. 


아게도후 

 - 두부 + 녹말 -> 튀긴 후 소스를 끼얹는다. 이게 진짜 별민데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해먹기가 어려움. 톳 무침과 같은 소스 쓰면 얼추 된다. 


각종 초밥류

 - 간단하게 초 만들어서 해도 되는데 속이 받쳐주질 못하므로 가능하면 초밥용 초를 사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는 놀랍게도 슈퍼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브랜드는 좀...) 가능하면 초밥류는 만들지 않는 걸로. 달걀초밥 40개인가 만들었다가 허리 끊어질 뻔했다. 


감자전

 - 쉽다. 비건이다. 맛있다. 파티용으로 굿. 


유과 

 - 요리는 아니지만 글루텐 프리에 비건 조건을 모두 갖춘 훌륭한 간식. 의외로 미국 애들도 잘 먹는다. 


딸기 찹쌀떡

 - 절대로 다시 안 해먹을 거임. 주방이 개판이 되었다...


단팥죽 

 - 앙꼬용으로 만든 것도 가끔 죽처럼 잘 먹었다. 얼리니까 비비빅 같았다. 천연 비비빅 올ㅋ 하지만 팥 쑤는 것이 너무 고달팠다. 


각종 크림소스 파스타

 - 헤비크림으로 소스를 다 쓰면 맛은 있을지언정 부담스럽다. 우유나 혹은 커피에나 넣어먹을 법한 half & half를 써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 루를 만들어서 해먹어본 적은 없는데, 이건 다음에 잉여력과 요리력이 꽉 찼을 때 해먹는 것으로...

 - 닭, 판체타, 버섯이 제일 좋다. 아스파라거스는 판체타와 제일 잘 어울렸다. 의외로 베이컨은 매우 귀찮다. 소고기는 이런 곳에 낭비하지 말자. 


명란젓 파스타

 - 김과 파가 없으면 먹기 힘들다. 아니 애초에 명란젓이 없어서 fail... 명란젓 한 번 사면 진짜 줄창 해먹어야 한다. 

 - 명란젓은 소량을 구워서 밥이랑 먹어도 맛남. 


중국식 만두

 - 돼지고기, 배추, 식용유, 버섯 등이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 다음엔 샐러리를 넣어보아야겠다. 

 - 레시피 어디 쟁여뒀을 건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하지만 개노가다.


한국식 만두

 - 의외로 재료 공수에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다. 아직까진 안 해먹어봤는데 언제 한 번 시도해야겠다. 


김치국밥

 - 김치가 있다면 해먹고 싶다. 김치가 없다. 


돼지고기 보쌈

 - 안 어렵다. 고기는 Picnic이나 Shoulder 사면 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가능하면 요리할 때 쓰는 실로 묶어서 고정해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 다른 건 모르겠고 계피가루와 커피가루는 바로 물에 타지 말고 꼭 면포 등에 싸서 넣을 것. 계피는 좀 덜한데, 커피가루가 고기에 덕지덕지 묻어서 무지 고생했던 경험이 있음.

 - 제일 좋은 고기는 역시 삼겹살인 것 같다. 한인마트 ㄱㄱ 


돈까스

 - 미국애들이 스테이크용으로 먹는 고기도 가능. 크기가 좀 작지만 열심히 두들겨주면 된다. 그런데 왜 튀김옷을 만들 때마다 튀김과 고기가 분리되는 거지. 

 - 한번 할 때 잔뜩 해놓고 냉동실에 쟁여 두면 좋다. 

 - 튀김옷 입힐 때 마늘 넣으니까 튀김옷과 고기가 분리는 될지언정 맛은 진짜 베리굿. 화이트 와인에 고기를 재웠던 것 같다. 싼 와인 나오면 알뜰하게 질러둬야겠다. 역시 요리용은 화이트 와인이지 암... 


된장고추무침

 - 꽈리고추 대량으로 한인마트에서 구입했을 때 해먹었다. (내가 된장이 있었던가..?!) 전자렌지 레시피가 존재하는데, 생각보다 엄청 괜찮았다. 그렇지만 정작 쟁여두고 안 먹어서 나중에 울면서 버림. 


된장찌개

 - 그간 가련한 룸메이트들을 고려하여 된장을 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에라이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된장을 질렀다. 언젠가 꼭 끓여먹어 봐야지. 

=> 해먹었다. 겁나 맛있었다. Silken 두부 정도가 적당하고, 의외로 생식용 두부도 나쁘지 않다. 된장에 달걀을 넣어먹진 않지만 한 번 넣어봤는데 반숙으로 밥이랑 먹으니까 굿ㅋㅋ 비결은 아마도 육수인 것 같다. 육수에 심혈을 기울이니 겁나 맛난 된장찌개가 완성! (된장은 어차피 마트서 구하는 게 한계다.) 주키니를 넣으면 시각적으로 더 만족할 순 있지만, 묘하게 맛이 별로인 것 같다. 주키니 비추. 된장은 밥숟갈 세 숟갈 정도로 하면 된다. 


마카로니 그라탕

 - 친구가 알려준 쿡패드 출처의 레시피. 맛있었다. 칼로리는 지옥일듯.

http://cookpad.com/recipe/292873

=> 유사한 걸 해봤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손쉬운 레시피. 다만 친구가 준 다른 레시피가 있는데,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와 크림으로 대체했다. 아몬드 밀크만 100%하면 이 망할 미제 아몬드밀크들은 가당되어 있기 때문에 역한 맛이 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우유나 크림을 같이 쓸 것.


밀푀유 나베

 -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그것. 재료만 구할 수 있으면 정말 놀랍도록 쉽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깻잎을 넣으니 생각보다 개운한 맛이 나서 무척 좋았다. 문제는 재료다. Paper-thin cut과 깻잎을 어디서 구하느냐가 관건... 


무사카 



퀴노아 샐러드 



떡볶이

이렇게 된 이상 육수로 승부한다!! 끓인 후 바로 먹으면 떡이 쫄깃해서 맛있고, 좀 놔뒀다 먹으면 국물이 진하게 베어서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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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 기록 - 웬디 1TB 외장하드 + 키보드 + LED 스탠드

개강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미친 지름신이 들어서 아마존에서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닌 물건을 엄청 사댔다... 


1. WD My Passport Ultra 1TB 


http://www.amazon.com/Passport-Ultra-Portable-External-WDBGPU0010BBK-NESN/dp/B00W8XXRPM/ref=sr_1_1?ie=UTF8&qid=1443016629&sr=8-1&keywords=wd+my+passport+1tb


외장하드는 어차피 살 거였다. 문제는 시게이트를 다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지...

사실 나의 외장하드 역사는 매우 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 입학했을 적 아버지의 노트북을 물려받았는데 그 노트북의 HDD 용량은 자그마치 40GB. 400이 아니라 40기가였다. 

운영체제를 깔고 남은 20기가도 채 안되는 컴퓨터로 아무리 갖은 수를 써봤자, 용량의 압박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 사이에도 해프닝은 많았다. 1TB짜리 외장하드를 사서 대학교 4-5학년 시절의 사진을 넣어뒀는데, 미국에 비지팅 올 때 TSA가 빼가서 그대로 대학 졸업 전 마지막 2-3년치의 사진이 몽땅 소실되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아무튼 미국에는 총 두 개의 외장하드를 들고 왔던 것 같다. 무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용한 히타치 (?) 300GB HDD와 시게이트 1TB짜리. 

히타치라고는 썼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왜냐면 하드랑 케이스를 따로 샀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제작년에 룸메이트와 침대에 컴퓨터와 외장하드를 올려놓고 영화 가위손을 보다가 300기가 짜리가 바닥으로 낙하하였고 그렇게 사망하셨다... 정말 용케 오래도 버틴 하드였는데.


하지만 이 때를 대비하여 나는 모든 자료를 시게이트 1TB짜리에 백업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안심하였다. 

그리고 나는 곧 1TB짜리를 또 하나 질러서 이중백업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비극이 반복되었다. 교훈을 체득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이번엔 영화 화양연화를 보다가 1TB짜리 외장하드가 낙하한 것이다. 그리고 외장하드는 그렇게 사망하시는가...하였으나 용케도 살아남으셨다! 이때의 일 뒤로는 절대 침대에서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내게는 두 개의 1TB짜리 외장하드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둘다 시게이트였고, 모델은 살짝 달랐지만 뭐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모델들이었다.  그러나.. 낙하를 하기 전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외장하드는 조금 이상했다. USB 연결 인식이 아주 제멋대로여서, 한 다섯 번 꼽았다 뺐다 꼽아야 간신히 연결이 되곤 했다. 낙상을 입은 뒤로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 불안함을 느낀 나는 나머지 외장하드에 자료를 몽땅 카피해서 집어넣어 이중으로 백업을 해뒀다.


그리고 작년 겨울, 친구들이 놀러와서 같이 무간도를 보던 와중, 무간도 3편의 초입에서 외장하드가 그대로 뻑나버렸다. 떨어트리지도 않았고 그저 컴퓨터에 연결해뒀는데 거짓말처럼 맛이 가버린 것이다. 복구 비용을 알아봤지만 너무 비싸기도 했고, 내 기억에는 새로 마련한 외장하드에 웬만한 건 다 백업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였다.


그리고 올해 여름, 사정이 생겨 잠깐 외장하드를 뒤지면서 꺠달았다. 백업되지 않은 자료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나의 졸업식 사진들.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이런 것들이야, SNS에도 친구들이 올려줘서 괜찮은데 문제는 가족 사진이었다. 부모님이 먼 길 차를 끌고 오셔서 졸업식에 와주셨다. 가족이 다같이 찍은 사진이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없다시피한데, 그 사진을 홀랑 날린 것이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께 자식의 대학 졸업의 의미가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속상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미국에서 복구를 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진 모르겠지만 한국에 들어갈 때 복구의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만 먹었다.


일단은 지금 백업이라도 된 자료를 위해서라도 외장하드를 하나 더 사야겠다 싶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질렀다. 안전 백업이 무조건 우선인 상황인지라, 시게이트에겐 이미 뒤통수 맞아본 적도 있고, 위험 분산 차원의 의미에서 고심 끝에 WD를 사게 된 것이다. 물론 컴퓨터에 백업 소프트웨어가 두 개나 있는 것은 매우 싫었지만 (그래서 여태껏 시게이트만 줄창 사댄 것이었다.) 프로그램 목록이 길어지더라도 백업은 안전히...가 중요하니까. 원래는 NAS 구축을 해볼까 했지만 나의 비루한 컴퓨터 실력과 우리 집 인터넷 성격상 그냥 관뒀다.


아무튼 그래서 받았다. 예전엔 태국 홍수 나자마자 외장하드 사서 진짜 비쌌는데, 요즘엔 가격이 많이 내려왔다. 





상면만 반짝반짝 유광처리가 되어있다. 작정하고 잡으면 지문 좀 생길 듯. 




왼쪽부터 옵지폰, 시게이트 1TB 외장하드, WD마이패스포트 울트라 1TB. 다들 사이즈는 아담하다. 시게이트가 살짝 더 작지만 메탈 케이스라 다소 무겁다. 그래도 다들 가볍고 작다. 시게이트가 더 슬림하고 잘빠진 느낌이 들긴 한다. 마이패스포트 처음 봤을 땐 예쁘다 생각했는데 시게이트 옆에 두니 오징어....

하지만 어차피 백업 기능이 중요한 것이므로 상관 음슴. 




핸드폰과 마이패스포트 두께 비교. 마이패스포트가 살짝 더 두껍지만 그래도 뭐 훌륭하다. 갑자기 접속불량 증세를 보였던 예전의 고플렉스 외장하드를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ㅠㅠ


백업 소프트웨어의 경우, 시게이트가 이것저것 조작도 편하고 기능도 많이 제공한다. 그에 비해 WD 소프트웨어는 단촐하고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백업 기능만 있어서 프로그램이 매우 가볍게 느껴진다. 뭐가 어찌되었든간         부디 둘다 잘 버텨주세요...


그러고보니 WD 마이패스포트 사면 애드온으로 케이스가 무료인데 이걸 신청하지 않았다.... 하....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는 거니...



2. 로지텍 K360 키보드 


http://www.amazon.com/Logitech-Wireless-Keyboard-K360-Glossy/dp/B007PJ4PN2/ref=sr_1_1?ie=UTF8&qid=1443019265&sr=8-1&keywords=logitech+k360




노트북 화면 들여다보면서 타이핑하려니 목 상태가 너무 안좋아질 것 같아 키보드를 마련하였다. 

어제 24시간 동안 타임세일 했는데 그 전에 결제해서 무려 7불을 아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ㅋㅋㅋㅋ

외장하드 케이스 못 산 것도 슬픈데 ㅠㅠ


그저 가격과 리뷰만 보고 질렀다. 맨날 노트북 키보드로 치다가 이거 치니까 좋긴 하다. 

특히 키보드 상단의 음악 재생 정지 버튼과 볼륨 버튼, 그리고 몇몇 펑션키가 제법 유용하다. (물론 몇몇만...)

사이즈가 살짝 작아서 책상 공간 조금 아낄 수 있고, 예쁘게 생긴 것도 좋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하다. 


1. 키가 작고 간격이 넓다. 키 크기가 노트북 키패드만한데, 그 간격은 더 넓어서 적응이 잘 안된다. 키감도 썩 훌륭하진 않다... 뭐 이건 적응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2. 진짜 한 5초간 반품을 고민했던 것은 다름 아닌 키소음. 진짜 시끄럽다. 룸메들과 공동생활 해서 가능하면 좀 조용한 키보드를 사고 싶었는데, 뭐에 혹해서 이걸 샀는지 싶을 정도다. 키스킨이라도 사야하는가.... 

무소음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키보드다. 아오 빡쳐. 


그래도 이왕 샀으니 열심히 써야지. 배터리가 3년 간다고 하니 한 번 두고봐야겠다. 

그나저나 로지텍 키보드를 샀더니 이번엔 로지텍 마우스가 사고 싶네...

소중한 손목 (예전에 IT회사서 정말 잠깐 있을 때 손목이 나갔다)을 생각해서 참아야한다. 참을 인 참을 인.  




3. 다이아소닉 DL-51 혹은 Lumiy Lightline 1250 (Artic White)


http://www.amazon.com/Lightline-1250-Lumiy-Diasonic-Brightness/dp/B00FE3H6YQ/ref=sr_1_13?ie=UTF8&qid=1443019695&sr=8-13&keywords=diasonic


사실 얼마 전 한인마트 뉴스레터로 LED 스탠드 한국 직수입품 광고가 왔다. 

평소 쓰는 스탠드에 좀 불만이 있었던지라 (아니 일단 전원 터치 스위치가 전혀 먹히지 않아서 매번 전기 코드를 꼽았다 뺐다 하면서 사용 중이다) 눈이 팽팽 돌아갔다. 

물론 새로운 품목의 물건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한 80%쯤 됐을 것이다...


포엘디자인 제품이었는데, 예쁜 것도 좋고 LG LED를 쓴다 어쩐다 하는 것도 다 좋았지만 일단 한국에 비해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좀 셌고, 크기가 좀 작아서 공부용으로 얼마나 적합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스탠드 목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기왕이면 좀 상위 버전으로 수입하지...


아무튼 그래서 그때부터 아마존과 구글을 까뒤집는 과정에 다이아소닉 제품을 발견하였다. 물론 한국 제품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포엘디자인사 거와 가격도 비슷하면서 목조절이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검색을 해보니, 미국에는 루미이...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유통이 되지만 암만 봐도 한국 회사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지름. LED는 전구를 갈지 않아도 될 것이야! 난 눈이 더럽게 나쁘니까 내 눈을 보호해야지! 이런 말도 안되는 자기 합뢰화를 통해서 거금 50불...(ㅎㄷㄷ)을 주고 질렀다. 



혹시 사이즈가 궁금한 분들을 위한 친절한 사진. 모니터의 글들은 부끄러우니 블러 처리. 

광원 사이즈가 대략 13인치 노트북 가로 사이즈보다 조금 짧은 수준이고, 우려했던 것만큼 어둡지는 않다. 사이즈가 사이즈다보니 여태껏 쓰던 미제 형광등 스탠드 (...)보다야 덜 밝을 수 밖에 없지만 어차피 방에 불켜두고 작업하니 쓸법할 것 같다.


그리고 USB 충전단자가 내장되어 있어서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다. 이제 원래 쓰던 충전헤드는 외장배터리 충전용으로... (50불짜리 충전헤드를 구입했습니다) 


아무튼 며칠 더 써보면 대충 각이 나오지 싶다. 공간 차지가 적어서 매력적이긴 하다. 


그나저나 아마존에서 박스를 받았을 땐, 심지어 Lumiy라는 이름은 눈을 씻고도 볼 수 없고 누가 봐도 한국 제품인 박스가 왔다. 겉면이 죄다 한국어. 

순간 내가 아마존에서 주문한 건지, 지마켓에서 주문한 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이제 대량으로 질렀으니 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긴축재정 돌입...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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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요리] 초간단 대용량 샐러드를 만들자

난 터키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터키 음식은 밥과 샐러드조차 맛있다...(물론 터키 요리에서 밥은 하나의 요리다)


그래서 만들어보기로 함.


대용량으로 만들어두고 매 끼 꺼내 먹었다. 한 4~5일 정도는 문제가 없긴 한데 확실히 숨이 죽긴 죽는다.


재료: 샐러드채소 (귀찮아서 박스로 된 거 삼), 오이, 토마토, 양파, 피망, 생파슬리,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통후추 추천)





양파는 썰어서 물에 담군다. 왜냐면 매우니까. 매운 양파를 좋아한다면 스킵해도 좋습니다. 




큰 볼에 샐러드 채소를 털어넣는다. 그리고 오이를 썰어넣는다. 하나 통째로 썰어넣었는데, 이거 몇 번 더 해먹으면 오이 썰기의 장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토마토를 후드리찹찹 썰어넣는다. 이건 토마토 두 개치. 근데 토마토는 물이 자꾸 나오므로 먹을 때마다 토마토 썰어넣어도 될 듯. 토마토는 진짜 중요하다. 토마토가 없으면 맛ㅇ ㅣ없다. 



피망을 썰어넣는다. 피망은 은근 마법의 채소다. 계란샐러드 참치 샐러드 할 때도 오이 같이 물 많이 나오는 것보다 피망 넣는 게 훨씬 물도 덜 나오고 감칠맛도 내준다. 




마트에서 다발로 파는 파슬리를 또 썰어준다. 파슬리가 두 종류 있던데 잘 모르겠어서 그냥 아무거나 집어옴. 




파슬리도 투하. 



올리브오일에 소금과 후추를 넣는다. 나는 후추를 매우 좋아하므로 후추를 많이 넣었다. 소금은 적당히 간봐가면서. 이것이 드레싱입니다. 




샐러드 채소에 드레싱을 적당량 투하한다. 먹는다. 



느끼하지도 않고 특별히 질리지도 않는다. 양파는 매운기를 좀 더 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다. 파슬리가 생각보다 궁합이 좋았다. 


복잡해보이는데 그냥 야채 다 썰어넣고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 넣고 끝. 필수재료는 파슬리, 토마토, 오이인듯. 







다른 거랑 곁들이면 되게 있어보이게 나온다.

사실 곁들인 감자구이도 정말 손 안가고 대용량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 이건 다음에 업로드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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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 국수

자취생활 카테고리에는 맞지 않지만....음식을 어디에 넣어야할지 모르겠어서...


차이나타운에서 사먹은 오리고기국수. 6불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

돈만 많으면 오리고기를 아예 세트로 시켜서 밥이랑도 먹고 빵에도 끼워먹고 볶음밥도 해먹고 탕도 해먹고 할텐데...

제발 이런 식당 하나만 우리 동네 들어왔으면 좋겠다... 




보고 있으니 또 먹고 싶다...

이번 주말에 차이나타운 슈퍼에 가서 오리고기 한 팩 사와야겠다. 무려 3불이면 두 세끼는 너끈하게 먹을 수 있는 오리고기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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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행자 (2009)




여행자 / Une vie toute neuve (A brand new life) 

감독: 우니 르콩트

출연: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 설경구, 문성근, 박명신 등등



기말 페이퍼를 완벽한 미완성의 글로 냈다.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도저히 내용을 채워넣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내용과 문장의 공백마다  말줄임표로 도배를 해뒀다. 항상 떨어지는 글의 퀄리티에 노심초사했지만, 이번엔 그저 미완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나 송구스럽다. 


하지만 이미 장시간 좌탁에서 글자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생각하기도 싫었고 암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야겠다 싶었다. 무심코 들어간 아마존 프라임에 추천영화가 떴고, 이것저것 뒤지던 와중 이 영화까지 왔다.


사실 여행자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봤다. 알았으면 이미 지친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을까 싶지만서도.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자신이 잘 아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생각을 했다는 점의 힘은 정말 놀랍다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보면 볼 수록 무척 영리한 영화면서도, 정말 좋은 조합을 만난 영화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영화의 큰 줄기는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빛날 수 있었던 것에는 바로 작은 디테일들과 주변의 여러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아는 큰 줄기에 살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흡입력을 가진다.


좋은 조합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카메라 연출,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부분이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복잡한 기교를 부리는 도구가 아니라, 정말로 주인공과 고아원의 원생들을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살아있는 그 어떤 무언가라는 느낌을 준다. 일관되게 주인공 진희의 눈높이에서 접근하면서, 동시에 간섭이나 "난 너를 이해해" 의 경계를 넘지 않는 노련함이 잘 어우러져있다. 


이는 음향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각종 음악이나 사운드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영화 속 현장의 소리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소리만으로도 오후의 고아원 운동장의 느낌 같은 것이 전달될 정도로 말이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노래를 변주해서 활용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음향도 상당히 일관성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지 않은 것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연기 하나하나가 정말 빛이 났지만, 무엇보다도 주연을 맡은 김새론 양의 연기의 폭과 깊이는 전대미문 수준. 김새론 양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따뜻한 인간미가 존재하는 고아원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한결 진중하면서도 비교적 가볍게 (경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짓눌리는 무거움의 반의어다.) 풀어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한국어 제목 선정 또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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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선희 (2013)




CEAS 필름 도서관에서 이 DVD를 집은 데에는 홍상수표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는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사실 그 동안 강원도의 힘 정도를 제외하고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본 적이 없고, 그나마도 홍상수 감독 영화인지 모르고 봤다... 그 밖에 한국어에 대한 갈망과, 한국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갈망, 다른 DVD 하나가 연구주제와 관련 있는 영화니 최대한 지금 내 삶의 어느 것과도 관계 없는 무언가를 보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래서 우리 선희,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영화들을 집었다 놨다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 선희를 집어든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DVD 뒷면의 작품 소개에, 선희라는 인물이 유학을 가기 위해 추천서를 받는다는 설명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별거 아닌 계기인데, 이토록이나 어디선가 공감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간 홍상수 감독 스타일에 대해 들었던 말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우리 선희는 엄청나게 몰입을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고, 실제로 감독의 연출 자체가 그런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찌질한 일상 속에 관객인 내가 녹아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영화라고 생각하면 거슬리는데 오히려 그런 장치 때문에 내가 더욱 더 이 사람들을 훔쳐본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인물들의 찌질한 감정들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내가 찌질해진 순간이었다. 물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설정상 나와 나이가 비슷할 선희를 보면서, 그리고 좁은 사회에서 엮여나가는 몇몇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의 지난 학부 때의 술먹고 헛소리 하던 기억들과, 여기서의 찌질함과, 지금 여기 미국에 있음으로써 성립되지 않을, 다른 이들은 공유하지만 나는 공유하지 못할 조각들의 형상들이 자꾸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문수(이선균)라는 인물의 섬세한 손연기, 구부정한 선희(정유미)의 목과 어깨 같은 걸 보노라면 나와 주변 사람들의 자그마함과 위축된 몸짓이 떠오르면서도, 비슷한 나이대일 선희에게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인물이 있단 말이야? 

 정말 오랜만에 그냥 '한국' 아니라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말을 쓰는, 어딘가 새침할 것만 같은 서울사람들과 좁은 거리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떻게 보면 정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서울은 내게 늘 낯선 곳이었고, 평생 살진 못할 곳이었는데, 잠깐 머무르겠다고 다짐한 곳을 그리워하는 법도 있구나. 

처음에는 감기기운으로 인한 두통 때문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계속 보다보니까 좋았다. 음악 사용도 좋았고.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찌질함의 한도 내였고, 그래서 좋았다. 지금 마음 상태로는 이것보다 더 하면 못 볼 것 같아... 소품 같은 영화라고 하긴 어렵지만 뭐 그런 말이 떠오르긴 했다. 노란 밝은 분위기를 내내 유지하는 것이 참 인상깊었다. 좋다. 저건 나도 지향하는 바다.밝은 노랑, 밝은 연두, 밝은 보라, 이런 색깔들로 덧칠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법 그럴듯하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하고 심지어 산뜻하기까지 해서 이걸 찌질함이라 불러야하는가에 대해서도 살짝 고민이 들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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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시스템은 쓰레기임

지난 한 달 간 고통받은 경험의 요약:


1. 급성치수염 (당시엔 뭔지 몰랐음)이 상당히 악화되었음. Nurse Advice Line에 전화를 했더니 상태가 안 좋아지면 응급실에 가라고 조언을 해줌.


2.월그린에 정말로 울면서 가서 갖가지 진통제를 사왔지만 하나도 들지 않음. 간호사가 알려준 응급처치 방법을 써봤다가 지옥을 봄. 결국 상태가 매우 안 좋아져서 간호사의 말을 잘 들은 나는 응급실에 갔음.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건 고사하고 이미 말도 하기 힘든 상황.  앰뷸런스 같은 건 타면 안되니까 학교 셔틀 타고 감. 


3. 새벽에 4시간 반을 기다림. 난 누구 여긴 어디.


4. 우여곡절 끝에 의사를 만남. 그러나 하필 우리 학교 응급실에는 치과의나 치과전문장비가 없어서 의사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음. 의사가 처방해준 가장 강력한 약도 쓸모가 없었음. 


5. 결국 일요일 오전에 20군데 넘는 치과에 전화를 함. 기적적으로 한 곳과 연결이 되었고, 그날 오후에 치료를 받음. 의료보험은 있지만 치과보험이 없어서 쌩돈으로 성수기 한국행 직항 왕복 비행기값이 날라감. 비보험자라고 나름 할인도 받은 건데 이 사단이... 미국애들은 왜 기초의료보험과 치과보험, 안과보험을 다 분리해둔줄 모르겠다. 눈이랑 치아는 안 중요하냐 이 미친 놈들아... 


6. 응급실 청구 비용이 고지됐는데 미친 보험회사가 minor illness라서 copay를 안해주겠다고 함. 총액으로 비수기 비행기값이 나옴. 참고로 청구 금액은 의사 본 금액과 순수하게 응급실 들어갔다 나온 비용임. (병원에 치과 장비가 없어서 검사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 도대체 illness의 기준이 뭔데 이 미친 놈들아


하...

월요일부터 보험회사랑 싸울 준비해야겠다.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내가, 그것도 집세도 아끼려고 룸메이트 3명 더랑 살고 도시락 싸서 다니는 내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내냐... 

코스웍에 연구에 정신없어 죽겠는데 돈으로 사람 때리니까 버틸 수가 없다. 한 30불 정도면 쿨하게 돈 내고 다툴 시간에 연구를 그랜트 신청이라도 하겠지만 이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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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요리] 미트볼 파스타

무슨 일본 도시락 만화 보고 미트볼이 너무 먹고 싶던 나머지, 미트볼을 직접 만든 적이 있다.

실컷 만든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반은 후라이팬에 굽고 반은 오븐 (오븐 쓰기 무서워서 토스터 오븐에 몰래 구웠다)에 구웠는데, 다음부터는 무조건 오븐에 구워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븐에 구운 미트볼은 정말 짱짱 맛있었다. 

하지만 다음이 있을까.

손도 너무 많이 가고, 막상 만들고 나니 생각보다 양도 얼마 안 되었고, 일단 무엇보다도 주방이 난장판이 되었더라.

청소하는 게 꽤 힘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실컷 고생해서 만들어 놓고 남은 것은 다음 날 먹은 미트볼 파스타 사진 한 장 뿐...





샐러드 채소랑 같이 먹었따.

면은..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페튜치니는 아니고 가운데에 쫙쫙 줄 가 있는 면이다. 알덴테로 잘 해먹으면 끝내준다. (원래 넙적한 면을 좋아함.)

역시 넣을 채소도 없고 비주얼을 위해 파도 같이 넣고 만들었다. 

룸메이트가 보고 놀랐다. 음하하.


동네 마트에서 파는 미트볼이 10개 정도에 12불씩 하는 걸로 보아, 직접 만드는 게 가성비는 좋은데, 대신에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난 그냥 미트볼 안 먹고 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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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요리] 우동 파뤼 - 끝나지 않는 우동 국물

우동 국물을 한 번 끓이면 15인분은 족히 나온다. 우리 집에서 이것들을 먹을 사람은 나 혼자이므로 나는 우동 국물 한 번 끓이면 내리 우동만 먹어야 한다. 물론 우동 국물로 다른 요리도 가능한데 귀찮거나 재료를 구할 수가 없어서.... 규동을 먹고 싶어도 규동으로 해먹을 수 있게 잘린 고기를 팔지 않아!! 한인마트나 일본인 마트까지 가야하는데, 자동차가 없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인마트에도 팔지 않는 것 같던데. 다음에 가서 훠궈용 고기涮肉를 파는가 물어봐야겠다. 


여기 온 뒤로 우동국물 두 번 끓였는데, 처음엔 우동국물이 상하는 속도를 무시하고 천천히 먹다가 상해서 다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 끓였을 때는 정말 쉬지 않고 내리 줄창 우동만 먹는 중. 상상을 초월하는 기묘한 방법(냉우동 포함)으로다가 다 해먹고 있는데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정상적인 뜨끈한 버전만 올려봄. 






처음으로 일본인 마트 갔을 때 흥분해서 사온 우동용 냄비(...), 샤브샤브 고기, 유부, 쑥갓, 달걀을 넣고 끓인 우동. 첫시도 치고 굉장한 성공이었다. 아마 내 여기 있으면서 이 정도 비주얼의 음식은 못 만들지 않을까... 





처음에 우동 국물 끓였을 때, 우동국수를 5개 밖에 사오지 않았다. 지금 사는 곳 근방에서 우동면 따위가 있을리 없지. 사실 냉장우동을 팔긴 하는데, 처참하도록 맛도 없고 보존용으로 식초를 넣어서 면이 너무 시큼했다. 

대신에 집에 남아있던 메밀소바를 넣고 끓였다. 당시 남아있던 쑥갓과 표고, 그리고 달걀 부친 후 고춧가루 팍팍 뿌려서 먹었는데, 국물이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아서 약간 실패. 우리 룸메이트들에게 한 그릇씩 먹였더랬지. 





일본인 마트에 가면 눈돌아가게 예쁘고 맛있어보이는 어묵을 잔뜩 판다. 부산오뎅은 밀가루 맛이 많이 나서 그리 즐겨먹진 않는데, 이렇게 종류가 다양한 어묵이라면 한 번 해볼만도 할 것 같아서 시도해봤다.

대성공이었음. 

직접 담근 무장아찌랑 샐러드랑 해서 같이 먹었는데, 정말 눈물나게 행복했던 기억이... 치쿠와도 맛있고, 유부 주머니 안에 떡이 들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당시 정주행하던 정도전의 이성계 장군님과 함께 먹었다...ㅋㅋ 





달걀도 적당히 잘 익었다 으흐흐. 




비주얼은 개판이지만 사실은 맛있었던 김치 우동. 요건 최근작.

자동차를 타고 약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한인 식당에 갈 기회가 생긴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맛있는 김치랑 반찬은 처음 먹어봐서 눈이 돌아간 나머지, 김치를 15불 어치를 사왔더랬지.

냉장고에서 큼큼한 냄새를 풍기며 삭아가는 김치에, 우리 룸메들 볼 낯짝이 서지 않아 가능한 빨리 김치를 소진하기 위해 몸부림 치던 시절이었다. (사실 아직도 다 못 먹었는데, 지퍼락 세겹에 냄새는 간신히 차단...한 것 같다.) 

사실 요번 국물은 저번에 비해선 좀 아쉬웠다. 사케를 너무 들이 부은 탓인가... 그래도 김치가 맛있으니 국물이 살아나서 기뻤다. 때마침 공수해둔 연두부랑 죽순도 같이 넣고 끓임. 






요것은 야심작. 우동국물을 빨리 소진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서 해먹었다. 만드느라 개고생했고, 국물맛이 생각만큼 나와주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비주얼은 뒤지지 않았다! 

중국인 마트에서 공수해온 냉동새우튀김이랑 연두부를 기름에 넣고 튀겼다. 거기다가 국물에 우려낸 죽순, 표고, 그리고 반숙 달걀을 우동에 살포시 얹은 후 느끼함을 잡고 색감을 살리기 위해 파를 뿌렸다. 

약간 아쉬웠던 점은 파가 너무 썼다는 거...? 미국 파는 정말 유난히 매운 것 같다. 그리고 무장아찌랑 같이 내놨는데, 무장아찌에 간장을 너무 들이부어서 달콤새콤한 맛이 덜 났다. 

뭐 암튼 이 정도 정성을 쏟아 부은 우동이니 맛 없어도 태클을 걸 수 없었을 것이다 음하하하.


오늘 저녁도 우동이나 먹어야지 ㅠ

밥 못 먹은지 꽤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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