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똥개 (곽경택, 2003)

두사부일체를 보고나니 왠지 영화를 한 편 더 보고 싶어졌다. 원래 조폭 영화 별로 곱게 보지 않는 편인데, 왠지 오늘이라면 한 편 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얼마 전 정우성의 리즈 시절 짤방이 떠오르면서... 그래, 비트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트는 보지 못했고 대신에 정우성이 달리 나오는 (...) 영화 <똥개>를 골랐다.


(1) 솔직히 말해서 감독이 곽경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2) 영화 <똥파리>와 제목을 헷갈려서 <똥개>를 보게 되었다. 뭐 이런 두 가지 오해가 있었지만, 덕분에 영화를 감상했고, 덕분에 이 영화는 언제 한 번 더 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상깊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우성의 연기가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애매모호한 캐릭터까진 좋았는데, 정우성의 묘한 바보 연기가 좀 극단적인 바보연기와 멋있는 척 하는 연기(후자는 사실 똥개 캐릭터를 생각하면 멋있는 척 하면서도 멋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했다)를 오가면서 엄청 혼란스러웠다... 사투리 연기나 그런 건 다 자연스러웠는데 (다만 내가 밀양 사투리를 잘 몰라서 그런가, 영화 속 인물들이 다들 미묘하게 다른 사투리를 구사해서 조금 혼란스럽긴 했다. 어떤 건 경남 어떤 건 경북 사투리... 밀양이 중간지점이라 그런가...) 목소리 연기가 좀 이상했다. 약간 더 담백하게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쬐끔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1. 일단 다들 연기가 출중하다. 정우성 연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개성이나 역의 이해 방식이 다르다고 말할 만큼 정도는 된다. 지금 와서 스틸컷들을 찾아보니 츄리닝을 입고 있는데도 무슨 화보 찍은 것 같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한 번도 TV나 잡지 같은 데에서 보는 멋있는 배우 정우성이 아니라 그냥 왠지 무게는 잃고 싶지 않아하는,무언가를 분출하고파 하는 동네 청년 똥개 같았지, 정우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왜 화보를 찍고 있는겨... 영화 볼 땐 분명 아니었는데...




화보...까진 아니고 광고 찍는 건가....굴러다는 양말이 참 리얼하다.



정애 역을 맡은 엄지원의 연기도 전혀 뒤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차 반장 역할을 맡은 김갑수의 연기는 정말 빛났다. 솔직히 말해 김갑수 재발견 영화같은 느낌!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정도로.


*** 스포일러 등장할 수 있음 *** 


2. 경남 지방 도시 밀양의 면면이 잘 드러났다. 영화 <친구>도 물론 부산+영화 하면 떠오르는 영화일진 몰라도, 솔직히 어떤 부산의 감성을 담아냈다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다. 우리 친구 아이가라든가, 거친 바닷가의 모습 같은 것만 부각되었지, 삶의 면면들이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어쩌면 친구라는 영화가 이미 너무 많이 회자되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나중에 다시 보면 생각이 바뀌려나.)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경우, 아, 이것은 정말 경남의 지방도시다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는 영화였다. 특별히 밀성고라든가, 밀양 시내나 밀양의 시장이나 밀양의 다리들 같은 것들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장소성들은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들이 얽히고 섥혀 발현되는 것이다. 각 인물들이 내비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서로 미묘하게 알듯말듯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 오토바이를 타고 천가와 골목을 질주하는 씬, 부산-대구 고속도로 개통과 얽힌 부동산 이야기와 비닐하우스의 화투판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물론 곽경택 감독답게 조폭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B급'을 지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그 어느 싸움도 멋지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구치소에서의 싸움은 철저히 '똥개'스러운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을 다소 길고 지루하게 보여준다는 점 (어디까지나 관객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등이 매우 훌륭하게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부산과 대구 사이에 낀 밀양이라는 지방 도시의 똥개라는 설정이 영화의 이야기와 연출에 일관성을 부여하면서 일종의 신선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방도시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 중에, 이 정도로 진지하게 지역의 삶을 대하는 메이저 영화가 몇이나 있느냐 이 말이다. 지방은 너무나 쉽게 희화화 되고, 다른 것들이 일어나는 희안한 곳으로 설정되지 않는가. 사투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굳이 밀양일 필요도 없었지만, 밀양이 아니어서도 안되는 그런 장소성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밀양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엔 그리 보였다.)



3. 두사부일체와 비슷하지만, 일종의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2003년 영화라는 점에서 일종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걸지도. 




할머니댁이 떠오른다....ㅎㄷㄷ


인물들도 생각만큼 전형적이지 않았고, 특히 똥개/철민의 역할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똥개의 정곡을 찌를 때 마다, 별 볼일 없는 똥개라는 인물의 내면과 현실이 새로이 보였다. (그만큼 영화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 누구의 입장도 단순하지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똥개라는 영화 역시 2015년에 다시 나온다면 상당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간 곽경택 감독의 스타일이 정말 똥개라는 인물 설정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좋은 영화였다. 쉬려고 영화 봤다가 이것저것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에 한 번 진지하게 펜 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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