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남기는 습관/영화 (14)
[영화] 서스펜시온 (Suspensión, 2020)

 

서스펜시온 (Suspensión), 2020년 개봉, 콜롬비아. 75분. 스페인어 (영어 자막).

감독: Simón Uribe.

자세한 정보는 배급사인 이카루스 필름의 페이지 참조: http://icarusfilms.com/if-susp

 

영상, 글, 음악 등을 막론하고 창작활동을 하다보면, 활동의 형식과 장르의 특성의 한계에 닿는 순간들이 온다. 어떤 소재나 문제 의식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데에서 과연 내가 채택한 표현방식이 최선일까? 라는 질문이 샘솟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라는 형식으로 인프라를 좇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프라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본디 거대한 시스템과도 같고, 또 특별히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더군다나 긴 시간을 들여 구축하거나 교체한다. 그렇다면 인프라와 그 역사라는, 카메라 화면에 담기에는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대상을 어떻게 주어진 1-2시간의 시간 내에 담을 수 있을까?

 

왕빙(王兵)의 철서구(铁西区, West of the Tracks)라는 영화는 무려 551분의 러닝타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인프라가 해체되는 역사를 담아냈다면, 우리베는 조금 다른 접근을 취한다. 우리베는 훌륭한 촬영과 편집, 그리고 정말 눈부신 사운드 편집을 통해 인프라의 부재와 그에 대한 욕망이 재생산되는 환경을 감각적으로 재현한다. 정글의 끈적끈적하면서도 불쾌한 습도, 철골의 물성, 시멘트의 건조함, 그리고 잘 설계된 인프라가 주는 쾌적함에 대한 상상 같은 것이 아주 섬세한 편집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콜롬비아 남부 정글 지역의 고속도로 문제의 역사는 압도적인 자연 환경을 마주한 사람들 간의 위태로우면서도 지리한 일상을 통해 전달된다.

 

서스펜시온은 소위 민족지 영화(ethnographic film)에 해당하는데, 민족지 영화라는 표현이 낯설다면 대충 다큐라고 이해하면 된다. 인류학 연구 재단인 웨너그렌 재단에서 촬영자금을 댔다. 민족지(ethnography) 작성에 있어 가장 특징적이면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체화(emboddied)된 지식과 감각의 문제다. 민족지는 대체로 글의 형식으로 많이 작성되는데, 연구자가 어느 순간, 어느 현장에서 느낀 감각들을 어떻게 정제된 글의 형태로 재현할 수 있을까? 또한 문화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체화된 지식이라는 것도 분명히 인간과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텐데, 이러한 감각이나 체화된 지식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게 가능할까? 이러한 소재나 질문들은 특히 자연과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재현 가능성라는 요소를 만족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늘 쟁점이 되어 왔다.

 

그렇다보니 인류학 내에서도 감각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들이 고려되어 왔는데, 특히 민족지 영화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들을 아주 첨예하게 다뤄왔다. 그리고 서스펜시온은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세련되면서도윤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특히 마지막 10여 분의 편집은 정말 감독이 얼마나 첨예하게 고민해왔을까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장르나 소재 특성상 한국에서는 개봉이 요원하긴 한데, 영어 자막 버전은 배급사인 이카루스 필름을 통해 비메오나 도큐시크 (DocuSeek)에서 감상 가능하다. 비메오 버전 (https://vimeo.com/ondemand/suspensionofficial)으로 스트리밍 하면 5불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도 하고, 대사가 대단히 많지는 않기 때문에 영어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다면 정말 강추한다. 노트북 스피커 이런 걸로 듣지 말고 꼭 이어폰 끼고 감상하자.

 

 

 

PS 내 논문도 이렇게 세련되면 좋겠다... ㅠ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런 걸 찍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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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드라마] 붉은 여왕 (Красная королева, 2015)

사실 드라마 보는 게 연례행사 급일 정도로 시리즈물은 잘 안 보는데, 갑자기 뭐에 꽂혔는지 요즘 이것저것 챙겨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에 연말이라 미쳐가나보다.

 

러시아산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우크라이나산인 드라마 <붉은 여왕>을 봤다. 우크라이나산이라고는 하지만 주요 무대는 소비에트 시절 모스크바고, 대부분의 주연 배우가 러시아어를 쓰기 때문에 러시아 드라마인 줄 알았다. 시즌은 한 개로 완결이고 총 12화까지 있다. 아마존 프라임 있으면 <The Red Queen> 검색해서 무료 시청 가능한데, 광고가 진짜 10분에 하나씩 떠서 정말 드라마 리듬과 무드 다 망치는 느낌적 느낌. 광고도 하나도 아니고 3개씩 똑같은 놈들만 나와서 보다가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IMDb TV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놈도 광고가 대단하지 않을까 추측 중. 한국에선 놀랍게도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아니 이런 것도 있어... 그런 느낌? 아, 그리고 아마존 판 한정 자막이 좀 부실하다. 특히 화면으로 등장하는 글귀들은 죄다 번역이 안되어 있어서, 이야기 전개 상 중요한 내용들도 번역이 안된채 지나가곤 한다.

 

붉은 여왕이라든가 레드퀸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제목으로 많이 사용 되어서 은근 검색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목 자체는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보 찾기가 은근 어려워서;; 링크 몇 개 걸어둔다:

제작사 페이지: film.ua/en/production/filmsandseries/projects/274

IMDb: www.imdb.com/title/tt5924966/fullcredits/?ref_=tt_ov_st_sm

왓챠: pedia.watcha.com/ko-KR/contents/tlLrZge

아마존: www.amazon.com/Part-9/dp/B01GU8D4IK/

 

 

스탈린 사후의 소비에트 연방을 무대로 하며, 주로 모스크바가 배경이다. 레기나 즈바르스카야Regina Zbarskaya라는 실존인물의 생애기에 각색을 더해서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니 소비에트에 이렇게 화려한 패션모델???이라는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참고로 드라마보다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영문자료는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일단 이쪽 드라마를 난생 처음 보는 거긴 한데... 톨스토이나 도스도옙스키가 괜히 이쪽 사람들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워낙 구소련 시기가 빡센 시기라서 보통이 아니다. 화려하긴 한데 여러모로 암울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므로 삶이 우울하신 분들에게는 추천 못하겠다. 

 

 

 

드라마에서 돈냄새도 많이 나고, 일종의 예술성을 성취하는 것에 대한 제작진의 욕심도 잘 묻어나온다. 레기나가 패션모델로 활동하는 부분들은 특히 화려하고 눈요깃거리가 많다. 소비에트 시절의 삶에 대해 구경하는 모습도 재밌는데, 중국 연구하는 내 입장에서는 여러가지로 오버랩되면서도 또 다른 면들이 많아서 진짜??이런 느낌도 여러번 받았다. 로케이션도 은근 다양하고, 아무튼 시각적으로 보는 즐거움은 있다.

 

하지만 보다보면 뭐지??하는 신비한 촬영기법들이 자꾸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뜬금없는 줌인 줌아웃, 약간 느닷없는 목소리 에코처리, 사선으로 기운 화면, 약간 납득하기 어려운 커트 편집 등등... 어떤 건 세련되어 보이지만 다른 것들은 뭔가 좀 미묘하다. 그리고 세트 구성이나 각본 등에서도 아주 미묘한 구석에서 매너리즘...은 아니고 약간 정형화 된 무언가의 냄새가 난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미묘하게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그게 또 엄청 쩌는 부분들과 같이 버무려져 나오다보니 아, 이게 마더로씨아의 시리즈물 감성인가, 뭐 그런 느낌을 준다. 특히 초반에는 한 10년 전 한국 드라마를 해상도와 스케일을 엄청 키워서 보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음악은 굉장히 괜찮은 편. 연기도 다들 안정적이고, 뒤로 갈수록 더욱 인상적이게 되는 것 같다. 한 인물의 긴 서사를 다뤘기 때문에 여러 배우들의 연기의 폭을 넓혀가는 걸 보는 듯한 기분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레기나 즈바르스카야의 사진. 출처는 https://rtd.rt.com/stories/the-kremlins-prettiest-weapon-story-of-regina-zbarskaya/

 

 

줄거리는 어....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다뤘다고 하니 진행에 대해서 태클을 걸기가 좀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음... 좀 뭐랄까, 아니 이 교훈도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는 뭐지? 이러면서 봤던 순간들이 있었다... 약간 보다 보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조금 보기 힘들고 왠지 러시아에서는 자주 등장할 것 같은 테마들이 있다. 개막장 음주중독자 남성들에 빡쳤으면서도 포기한 모녀 혹은 여성들간의 유대감 같은...? 아, 그리고 간혹 접하는 냉전시절 동유럽이나 구소련권 영화나 소설, 연구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경찰국가로 인해 모두가 함께 겪는 정신분열증적 집단 심성이랄까, 그런 게 레기나라는 패션모델의 성격과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갈등 지점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처럼 소비에트 역사도 러시아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보다보면 이건 진짜 러시아의 향기가 난다 싶은 부분들이 있음.

 

아무튼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한 2/3 정도는 그냥 앉은 자리에서 쭉 달렸다. 당분간 다시 볼 멘탈은 못될 것 같으니 이 작품은 물론이고 이쪽 작품은 손대지 말아야겠다.

 

 

아, 그리고 캐릭터와 배경들은... 난 러시아어를 읽지 못하니 영문 로마자어로 남겨둔다. 감독은 Elena Semenova고, 메인 캐릭터인 레기나 (Regina 혹은 Zoya Kolesnikova)역은 Ksenia Lukyanchinkova가 담당했다. IMDb에도, 아마존에도 그 어디에도 다른 배역들 제대로 정리된게 없다... 그리고 러시아어 이름 체계를 잘 모르겠는데 한 명이 불릴 수 있는 방법이 엄청 무궁무진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캐스팅도 캐릭터명도 다 알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서 모은 이름들만 나열해본다... 접어둔 걸 펴주세용.

더보기

- Ksenia Lukyanchinkova (레기나 혹은 조야, Regina 혹은 Zoya Kolesnikova 등등 호칭이 다양한 주인공)
- Anatoliy Rudenko (Volodya, Vladimir 역)
- Artyom Tkachenko (Lev Barsky, 료바 역)
- Ada Rogovtseva (할머니 Avgsta Leyontyevna 역)
- Larisa Domaskina (레기나 어머니 역)
- Elena Morozova (디자이너 Vera Ippolitovna Aralova 역)
- Boris Shcherbakov (Volodya 아버지 역)
- Tatyana Orlova (인사부 부장 역)
- Yanina Studilina (Tata 역)
- Anna Zdor (캐릭터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레기나 친구...)
- Anna Sagaydachnaya (마리나 Marina 역)
- Valeriy Barinov (볼때마다 빡쳐있는 상사 아조씨)
- Sergey Bachurskiy (볼때마다 멍청한 상사 아조씨 니콜라이)
- Anna Vasileva (아마 젊은 모델 역...)
- Galina Petrova (아방가르드 예술 하시는 아주머니)
- Alesya Pukhovaya (디자이너 옆에서 눈 크게 뜨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
- Bastien Ughtettp (로스차일듴ㅋㅋㅋㅋㅋ)
- David Holt? David Evans? (영국 외교관... 왜 여기저기 뿌려진 크레딧 명이 다르냐...) 
- Oleg Vasilkov (KGB 직원 ㄷㄷ)
- Vladimir Chuprikov (흐루시초픜ㅋㅋㅋ)

다 부질없는 이름들이지만 혹시나 해서 써봤다... 러시아어를 하시면 위키에 정리가 잘되어 있다.
ru.wikipedia.org/wiki/%D0%9A%D1%80%D0%B0%D1%81%D0%BD%D0%B0%D1%8F_%D0%BA%D0%BE%D1%80%D0%BE%D0%BB%D0%B5%D0%B2%D0%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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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2008) / Open Tables (2015) / 동주 (2015)

최근 영화 볼 일이 좀 많았었음. 그래서 일단 몰아서 조금씩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시카고 기반의 즉흥코미디극(improv comedy) 영화 Open Tables, 이준익 감독의 동주. 

긴 리뷰는 언젠가 하는 것으로.


<걸어도 걸어도 > 歩いても、歩いても
    2008, 일본. 114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하라다 요시오 등


영화관에서 10년의 세월을 살아낸 것 같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삶을 이뤄내듯이, 그리고 서로 다른 삶들이 모여 가족을 기워내듯이, 섬세한 손짓과 말짓들이 모여 114분 짜리 한 편의 영화를 이뤄냈다. 
영화든 글이든, 작품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감독의 인내가 겸비된 관찰력과 노련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독하게도 현실적이게 평범한 가정이라 보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제목 뜻의 풀이 또한 무척 궁금하다. 

배우들의 연기들이 대부분 훌륭했지만, 특히나 여자 배우들의 연기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Open Tables> 
   
2015, 미국. 76분.
    Jack C. Newell 감독. 
    Desmin Borges, Beth Lacke, David Pasquesi, Joel Murray 등등

뚜렷한 주제의식, 목적이 분명한 실험, 그리고 좋은 제작진의 만남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영화와 즉흥극(improv) 장르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화학은 실로 멋진 것이고, 또한 그것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순간의 눈빛과 몸짓 중에는 분명히 즉흥극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있으리라. (즉흥) 코메디 장르인만큼 한글 자막이 없다면 좀 많이 힘들 수 있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꼭 목격해볼 만한 실험이다.

참고로 시카고의 유명한 즉흥코미디 극단 Second City쪽과 관련이 깊은 인디 필름으로, 감독인 잭 뉴웰은 최근 개시한 Second City의 영화학교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 

인디 영화라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예고편도 본문에 삽입해 봅니다. 




<동주>
    2015. 한국. 110분.
    이준익 감독.
    강하늘, 박정민 등 

분명 노련하게 빚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곳에서 미흡함이 보인다는 점이 답지 않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맑은 글들과, 그 글들에 대한 애정이 사진처럼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그 글들과 마음들이 그러한 단점들을 대부분 작품의 일부로 개워내준다. (윤동주의 글이 와닿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영화는 다른 일제시대 영화와 크게 다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소재가 영화를 하드캐리 했다는 뜻이기도 함. 매력적인 소재인만큼 함정도 많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움과 부족함 모두가 분명한 영화지만, 일단은 시와 문학으로 지새운 어둠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아,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간절함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만 여배우들, 특히 신윤주의 국어책 읽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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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가사키 스토리 (3泊4日、5時の鐘), 2014

오늘은 좀 이상한 영화 하나 보고왔음.



치가사키 스토리 (3泊4日、5時の鐘; 3박4일, 5시의 종; Chigasaki Story)
88분
일본, 2014
감독_미사와 타쿠야
주연_스기노 키키, 이이지마 슈나, 나카자키 하야, 코시노 에나, 호리 나츠코 등
웹사이트: http://www.chigasakistory.com/


한국에는 별로 정보가 없는 듯 하여 간단하게 리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매년 가을 영화제가 열리는데, 이를 앞장서 홍보 겸 앙케이트 등의 목적으로 여름 내내 세계 영화를 무료로 상영 중이다. '코미디와 유머'라는 주제로 각국 대사관들이 선정한 영화들을 매 주 한 편씩 상영하는데, 이번 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걸 보고 왔다. 

영화가 얼핏 보기엔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골에서 여름을 보내는 영화 같아 보인다. 그런데 보다 보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전개가 등장한다. 뭔가 정갈해보이던 영화가 갑자기 좀 의외의 수를 둔다고 해야하나. 같이 보러 간 일본인 친구들도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좀 놀랍다는 반응은 비슷했다. 

일단은 감독이 뭘 찍고 싶어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나름 섬세하게 짜내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러다가 큰 그림을 놓친 것 같다. 영화에 전반적으로 다소 힘이 들어가서 좀 튀는 장면들이나 전개가 있어서 다소 애매한 영화가 되었다. 여름용 영화인 것은 확실하고, 영화 관람 타겟은 잘 모르겠음. 무언가 일본 영화답게 좀 지나칠 정도로 정갈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면서 미묘하게 튀는 구석들이 있는지라 색다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좀 애매하게 볼 것 같은 영화고, 적어도 풋풋하고 상큼한 그런 청춘물을 찾고 싶다면... 글쎄..... 포스터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영화라고 일단 못을 박아두고 싶다... 여심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겠다고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데 확실히 여성 캐릭터들에 힘을 많이 쏟긴 했고 나름 리얼리티라면 리얼리티... 

이렇게 욕 비스무레하게 썼지만 일단 감독이 조금 설익은 듯 하니, 좀 더 경험치가 쌓여 노련해지고 보다 과감해지면 후에 괜찮은 작품들을 기대해 볼만할 지도 모르겠다. 싹수는 조금 보이는 듯 한데... (그리고 실제로 찾아보니 과연 졸업작품이었다고.) 참고로 위의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경국제영화제 (얘도 BIFF임) 에서 신인감독 각본상을 탔는데, 정말 신인+각본상 이 조합에 최적화 된 느낌. 갈 길은 멀어보이지만 언젠가 좋은 감독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일본의 홍상수가 되고 싶은 건가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만큼 세련되지가 못해서 보면서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어른들 연기는 대부분 괜찮았는데 좀 어린 축에 속하는 청년들이나 어린애들 연기가 영 별로였다. 캐릭터들이 확실한 편이라 그런지 주연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고, 특히 카린 역을 맡은 코시노 에나가 어찌 보면 정말 전형적인 캐릭터인데도 매력을 발산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초반부~중반부가 인상적임) 감독이나 편집이 다소 밋밋한 부분에서 주연 배우들이 조금 하드캐리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엄청 섬세한데 이상하게 거친 영화임. 

일본인 친구 4명과 같이 갔는데, 나와 다른 한 명(女)은 별로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셋(男)은 좀 이상했지만 괜찮았다는 반응이었다. 불꽃놀이라든가 바닷가 같은 거 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꼈다는 말도 있었음. 그래, 너네가 집에 돌아가고 싶겠지...ㅠ_ㅠ 하지만 가장 격정적인 반응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는 저런 로맨스 같은 거 구경도 못했어!"와 "영화 못지 않은 드라마가 우리 랩에서도 있었어"였음. 이게 설레고 심쿵하는 로맨스냐고 하면, 음, 글쎄다. 


아무래도 전체 줄거리가 한국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내가 써봄...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 혹시 영화 볼 기회가 있다면 줄거리를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시 보신 분 있으면 저랑 대화 좀 해봐요... 



실제로 보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전혀 어렵지 않다. 캐릭터들도 확실하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쉽게 배열해뒀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분명히 인물들이 줄거리에 나열한 것보다 더 많고, 이곳에 쓰지 못한 각종 세심한 디테일들도 영화에 결을 더해줄망정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목표의식이 비교적 뚜렷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처음엔 뭐 이런 영화를 골랐나하며 일본 영사관의 무능함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뭐 나름 고심해서 고른 것 같기도 하다. 혹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상 편집을 좀 살펴보고 싶긴 하다. 딱히 눈에 띈 건 없었지만 말이다. 

음악은 좋음. 여름 냄새 물씬 남. 


앞서 말했지만 상큼한 청춘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조금 핀트가 안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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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 Ministry (铁道)> 감상문

이것은 정식 리뷰문이 아님. 정식 리뷰문은 좀 더 관대하게 작성될 예정. 감독이 굳이 한국어 블로그까지 와서 글을 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좀 더 불만 위주로 써보겠음. 


**


영화 <Iron Ministry> (중국명: 철도, 铁道, 한국명 "철의 나라")의 감독 스나이데키는 하버드 센서리 에쓰노그라피 랩 (sensory ethnography lab, 이 따위로 음독해서 죄송합니다 감각민족지?라는 말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출신이다. 애초에 영상인류학 자체가 글자 기반의 인류학적 기록에 대한 일종의 반동, 실험, 부연 등으로 태동했음을 고려할 때, 민족지적 실천과 소통을 활자와 시각을 넘어선 온갖 감각으로 실험해보는 그런 곳이라고 일단 이해는 하고 있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무척 반가웠다. 영화제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감독을 본다는 것, 이 영화 자체가 센서리 랩 출신 작품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마음을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반가운 감정이 앞섰기 때문에 그냥 어물쩡 넘어갔다. 


1년 반 후,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반가웠다. 1) 일단 한 번 본 영화고, 2) 1년 반사이에 나의 중국어와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3) 그 영화를 본 후 중국에 갔을 적 열차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남다른 관심은 영화 속 내용을 다소 부정하는 반감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관심'을 길러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반감도 관심의 일부니까.) 


다만 이번에는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석연치 않은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었다. 이미 영화의 진행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에 대한 다소간의 불안감을 덜고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크게 한 몫 했지 싶다. 감독과 패널들, 관객들과의 대담 이후엔 석연치 않은 감정이 복잡한 분노와 실망, 의구심 등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분명 이 영화는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특징들이 있다. 감독의 영상언어에는 분명히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 3년 간의 촬영본을 편집한 작품이라는 점, 감독이 촬영하는 상황과 현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 스태프 없이 1인 촬영했다는 점, 소리나 물질에 대한 관심 등등. 하지만 이 대다수의 특징들은 그저 감독의 '실험성', 혹은 자신의 '영상제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추켜 새우는 데에 소모되고 만다. 얼마나 소모되냐면은 감독의 윤리성에 굉장한 의구심이 제기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꼈던 찝찝함은 대충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가면 더 많음): 


1.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촬영: 동의는 과연 구한 것일까? 길게 유지된 관계성에서 기반한 촬영인 것인가? 웃통 다 벗어 던지고 자는 사람들은 이 키 큰 백인이 비디오 카메라로 자신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간에 촬영당하는 것을 목격한 잠자던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계속 카메라를 쳐다봤을까?


2. 민감한 논의에 있어 촬영대상에 대한 보호 장치 부재: 티벳 얘기를 하거나 위구르 얘기를 하는 승객들의 얼굴을 그대로 넣었다. 동의를 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촬영당함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나, 분명히 정치적으로 (많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 등을 그냥 그대로 넣었다. 심지어 신분증이 없어서 검표관이 데리고 나가버리는 신장 사람 얼굴도 고스란히 나온다. 과연 촬영 대상자들은 영상 촬영의 결과를 알고 있었을까? 특히나 카메라가 영화 카메라가 아니라 일반 비디오 카메라였는데? 


3. '이상한 중국'에 대한 이미지: 중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는 모든 영상을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 또한 중국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려 '인류학 박사과정의 필드워크 중 촬영'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즉, 속칭 중국 전문가가 만든 필름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상은 미국의 TV나 대중매체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실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백성들',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 고기가 주렁주렁 걸린 열차의 모습과 같은 이국적 풍경, 바닥의 쓰레기나 무질서한 차내 풍경에서 암시될 법한 후진성 등의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센세이셔널'한 그림들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저 대중매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재현할 것이라면 뭐하러 인류학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복잡했고, 내가 오해하는 것인가 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들었지만 Q&A 듣고 아, 이건 그냥 망했다고 생각함.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은 패널리스트들도 대체로 비슷하게 떠올렸던 것 같다. 그들이 던진 질문들 중에는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윤리성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감독이 만약 미국에서 촬영을 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들은 모두 친절하게, 그리고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장화 되어 제기 되었다. 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대화를 거절하였다. 자신이 답하기 용이한 질문들에만 답을 하였다. 물론 감독이 모든 것을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널들의 질문들, 그리고 연이어 관객에서 등장한 질문들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윤리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영상제작가지 도덕주의자(모럴리스트)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대화 거부의 순간이었다. 


패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우리 지도교수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 눈에는 그 옆의 친구 지도교수님 역시 미묘하게 그 미소가 바뀐 느낌이었다. 


관객석에서 또다른 질문들이 나왔다. 그의 교수법에 대한 질문과, 영화 속에서의 젠더 표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옴)에 대한 질문이었다. 분노를 꾹 눌러참고 나도 질문했다. 영상 제작시 의도된 관객은 누구며 당신의 목적/책임 등은 무엇이었냐고. 한국어로 옮겨쓰니 좀 대범해보이는데 사실은 나름대로 매우 정중하게 돌려돌려 질문했다. (편집 과정에 대한 질문도 했는데, 이는 순전히 나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편집해놓고 나니 더 우선시하게 된 시기나 지역, 차종 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도 뭐 이렇게 대단한? 프로젝트는 아닐지어정, 학부생 시절 사회학과 친구와 같이 한 학기 내내 수십 시간 분량의 촬영 끝에 15분 50초 짜리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질문도 다른 질문들과 연결이 된다.) 


다시 감독은 원하는 대답만 했다. 젠더 질문에는 약간의 변명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궁색했다. 


***


영상 제작에서의 윤리 문제는 몹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영화 상영회에서 유난히 윤리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은, 영화를 관람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거나 영화를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분야 쪽에서는, 어느 지역이나 시대와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종과 성별의 문제가 매우 부각되곤 한다. 아니, 실제로 학계의 수면 위로 부각되지는 못하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그것을 느낀다. 연구주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근거 없이 '백인 남성'이라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더욱 쉽사리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실제로 그들은 '백인 남성'의 입지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일반성을 쉽사리 이야기하고, 각종 지식의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처한다. 


툭 까놓고 얘기해보자. 이 영화는 감독이 성과만 따먹고 책임은 갖다 버린 케이스다. 또한 이 영화는 감독이 기성의 권위만을 맞추는 영화다. 검표원에게는 동의를 구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승객들에게는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영상에 더 많이 출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영화에 등장하는 소수의 남성들이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은 등장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젊거나, 소수민족이거나 (백인감독보다 더 중국어 구사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기반이 약한 사람들이다.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않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대해지지 않는다. 이미 제목부터 망했다. Iron 'ministry'라잖아. 


감독은 자신이 중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많이 어울렸다고 했다. 과연 어떤 다큐 제작자들이었을까? 중국에서 나오는 다큐들 중에는 다분히 서구사회가 선호할 만한 이미지와 메시지로만 구성된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 걸 나같은 인간이 보면 내가 중국인은 아닐지언정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마련이다. 혹시 이런 사람들과 어울린건가?


***


영화 철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철의 꿈을 매우 싫어했다. 한국에서 상영되기 전 이곳 영화제에서 보았을 적, 반가운 마음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로 치솟았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같이 본 언니에게 영화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은 좋지만 그렇다고 같이 촬영에 임해준 사람들마저 매우 오만한 방식으로 물화시켜 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산업의 역사 뿐 아니라 처절한 투쟁의 역사 또한 존재했을 조선소에서 그 역사성과 시간성을 앗아가버린다. 철의 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영화에 임해준 사람들 - 대다수가 조선소의 근로자들이다 - 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더 부추기고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소모시켜 버리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다큐의 원칙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그 분노는 어디 가지 못하고 블로그에 기록될 뻔했으나, 당시 네이버에 철의 꿈 리뷰가 없어서 내가 차마 개봉도 안한 영화에 욕을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화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기저기서 상도 타고 호평을 받는 것을 보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의 미적감각의 문제인건가? 나의 윤리적 감각은 너무나 한정된 분야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호평을 받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나의 상식이 세간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것인가?




***


학부생 때 김홍준 선생님의 영상인류학을 들었다. 이곳에서 보다 이론 위주의 영상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따금 그때 작성했던 저널이나 쪽글들, 학과 내 과지에 영상인류학과 관련해서 기고한 글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영상들을 다시 보면서 비교해보거나 되짚어 보곤 한다. (슬프게도 당시 촬영한 영상은 싸그리 다 소실되었고 화질이 아주 떨어지는 최종버전과, 화질은 덜 떨어지지만 편집이 다 되지 않은 B컷만 남아있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심지어 김홍준봇....을 찾아서 정독하는데, 몇 가지 마음에 꽂히는 말들이 있었다. 영화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과,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에 대한 말들이었다. (트윗은 짧으니 내 맘대로 해석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친구가 만든 영상은 진짜 조야했다. 영상도, 사운드도, 편집도, 기술적인 건 다 개판이었다. 우리의 영상은 관객들에게 강제 상영하는 것이 아닌 이상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영상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수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영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착이 간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부족한 기술은 부끄러움), 저널을 읽으니 당시의 치열한 고민들이 녹아있구나 싶었다. (다만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아쉬워라.) 


영상 만들기를 처음 접한 것이 스나이데키 같은 사람이 아니라 김홍준 선생님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솔직히 내가 남자가 아닌 것, 백인이 아닌 것이 원망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필드'에 나가면 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권력관계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은 추악할지언정 솔직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속칭 '유색인종' (이 말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음)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삶에서는 불편할지언정 학문을 하는 데에서는 안일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감각을 날카로이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너무 안일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것들을 모두 누리기만 했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들은 회피하였다. 


***


이 영화를 같이 본 한 친구는 Act of Killing의 오펜하이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윤리적 지적이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만약 감독이 최소한 대화에 응했더라면, 도전이라도 했고 고민을 회피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난 이 영화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오늘의 분풀이를 끝맺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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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객섭은낭 (2015, 허우샤오시엔) - 2

(미완성 리뷰)


몇 달 전에 자객섭은낭을 본 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마침 근처에서 특별상연을 해서 또 보고 왔다.


두 번째 관람기의 감상평. (첫 번째 거는 블로그 어딘가에 있다.)

까먹기 전에 생각나는 것들:


1) 드디어 스토리를 이해했다. 이번엔 가급적 영어 자막을 보지 않고 귀를 열어두려고 노력했는데, 조금 효과를 보았다. 사실 자막의 번역 퀄리티 그 자체가 나빴다기 보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관객의 자막을 읽는 시간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 두 번 읽을 속도의 자막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번 읽기도 벅차다. 애초에 영화가 대화를 최소화 해서 대사 하나하나가 복잡한 편인데, 자막마저 읽어볼 시간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따라가기 벅찼다. 


둘째, 중국어와 영어의 친족호칭용어 문제가 있었다. 영어와 달리 중국어는 친족호칭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모든 친척 하나하나에게 서로 다른 호칭어가 붙고,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호칭이나 지칭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말을 줄이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바로 이 호칭 및 지칭 체계에서 드러나는데, 영어로 번역할 길이 없음. 친족 외에도 상대방의 지위를 부르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가 영어 자막으로는 드러날 수가 없다. 이것이 만약 책이었다면 각주, 미주나 괄호에 설명을 덧붙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자막이라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예컨대 고모부(姑丈)가 uncle로 번역되었을 때 잃게 되는 관계의 복잡성을 커버할 길이 없고, 분명히 중국어로는 티엔지안과 니에인냥이 사촌관계(表兄妹)라고 한 것 같은데 영어 자막에는 그저 둘이 약혼 관계였다 정도로만 나오니 얽히고 섥힌 가정사가 잘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겠다. 혹은 각종 지위에 대한 경칭들, 예컨대 마마(娘娘), 주공(主公) 등의 단어들이 your highness로 번역될 때, 혹은 사부/스승님(师父)과 주공(主公)이 모두 Master로 번역될 때 소실되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 



2) 모두들 영화의 시네마토그래피를 기대하지만, 사실 사운드가 진짜 대단하다. 조용하다 느끼지만 사실 영화에서 소리가 제거되는 일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날잡고 길게 생각해봐야겠다.


3) 저번 영화관과 달리 이번엔 영화관 스크린이 반 정도로 작았다. 한 번 영화를 봐서 그런지, 혹은 스크린이 작아서 그런지 저번처럼 영상을 보고 숨이 탁 막히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라이프오브파이 이후로 큰 스크린이 가장 아쉬웠던 영화.


4) 사운드가 끝내줬는데, 영화관에 환풍기? 에어컨? 뭐 그런 게 계속 돌아가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영화가 이처럼 조용하지 않았으면 티가 안 났을 텐데.


5) 니에인냥이 티엔지안에게 후지가 임신한 사실을 말할 때 큰 소리로 웃은 사람이 있었다. 뭐가 웃긴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무협이라는 장르, 각종 동작이나 소품들에게 당연히 부여되는 의미들을 전혀 픽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스토리가 어렵다기 보다는 그 전달방식이 친절하지 않은데다가 자막의 한계로 이해를 하기 위해 상당한 인내가 수반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떠려나. 불친절한 스토리의 갑 (관객이 엽문 이야기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고 가정하고 들어갔다고 생각됨)이었던 일대종사가 한국서 개봉했을 적,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보던 많은 사람들은 중도에 나가거나 잠들었다...


6) 중국에서는 당대 복식 등에 대한 고증이 부족하다고 욕을 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다. 솔직히 이미 건물부터 일본식인 게 드러나는데 (로케가 동아시아 여기저기임) 복식이 문젠가. 게다가 언제부터 무협이 그런 것에 그렇게 신경썼던가. 


다만 이와는 별개로 어떤 소비해야만 하는 이미지들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한 장치들에 대해 반감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소위 잘못된 복식들도 그 예일 것이고, 소위 웨이보라는 변방국을 묘사하기 위해 차용한 몇몇 장치들 - 예컨대 왕실에서의 연회 등- 이 눈에 띄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무협영화를 지향하니 미적으로, 형식적으로 충분히 허용이 되는 범주라고는 생각되며, 이런 이유로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무협장르를 깨부수기 보다는 그 장르를 좀 더 능숙하게, 미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확장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7) 오늘도 여전히 자신공주(嘉信公主)를 비롯한 몇몇 캐스팅의 국어책 읽기는 견디기 힘들었으며, 자청공주(嘉诚公主)의 악기 연주는 듣기 괴로웠다. (그리고 둘은 한 배우가 연기함 ㅠㅠ) 후자는 배우의 죄가 아니지만 괴로운 건 괴로웠습니다... 포스는 쩔던데 왜...


8) 대륙 배우들은 대체로 보이스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는데, 이 '보이스트레이닝'이라는 훈련된 목소리와, 또 그것을 듣는 훈련된 (대륙) 대중의 귀 (+전문성우의 더빙도 매우 흔함)가 영화의 미적인 구성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까 궁금해짐.


9) 같이 영화 본 친구의 가장 큰 혼란의 순간은 바로 정정아/징징얼(精)의 등장이었다. 섭은낭이라고 생각했고 누군지도 몰랐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중국 사이트 뒤져가면서 찾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 같다. 이름따위 등장하지 않았고 이름 역시 중국 사이트 뒤져서 알게 된 것.


기타 등등은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정리하고 올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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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개 (곽경택, 2003)

두사부일체를 보고나니 왠지 영화를 한 편 더 보고 싶어졌다. 원래 조폭 영화 별로 곱게 보지 않는 편인데, 왠지 오늘이라면 한 편 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얼마 전 정우성의 리즈 시절 짤방이 떠오르면서... 그래, 비트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트는 보지 못했고 대신에 정우성이 달리 나오는 (...) 영화 <똥개>를 골랐다.


(1) 솔직히 말해서 감독이 곽경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2) 영화 <똥파리>와 제목을 헷갈려서 <똥개>를 보게 되었다. 뭐 이런 두 가지 오해가 있었지만, 덕분에 영화를 감상했고, 덕분에 이 영화는 언제 한 번 더 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상깊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우성의 연기가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애매모호한 캐릭터까진 좋았는데, 정우성의 묘한 바보 연기가 좀 극단적인 바보연기와 멋있는 척 하는 연기(후자는 사실 똥개 캐릭터를 생각하면 멋있는 척 하면서도 멋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했다)를 오가면서 엄청 혼란스러웠다... 사투리 연기나 그런 건 다 자연스러웠는데 (다만 내가 밀양 사투리를 잘 몰라서 그런가, 영화 속 인물들이 다들 미묘하게 다른 사투리를 구사해서 조금 혼란스럽긴 했다. 어떤 건 경남 어떤 건 경북 사투리... 밀양이 중간지점이라 그런가...) 목소리 연기가 좀 이상했다. 약간 더 담백하게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쬐끔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1. 일단 다들 연기가 출중하다. 정우성 연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개성이나 역의 이해 방식이 다르다고 말할 만큼 정도는 된다. 지금 와서 스틸컷들을 찾아보니 츄리닝을 입고 있는데도 무슨 화보 찍은 것 같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한 번도 TV나 잡지 같은 데에서 보는 멋있는 배우 정우성이 아니라 그냥 왠지 무게는 잃고 싶지 않아하는,무언가를 분출하고파 하는 동네 청년 똥개 같았지, 정우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왜 화보를 찍고 있는겨... 영화 볼 땐 분명 아니었는데...




화보...까진 아니고 광고 찍는 건가....굴러다는 양말이 참 리얼하다.



정애 역을 맡은 엄지원의 연기도 전혀 뒤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차 반장 역할을 맡은 김갑수의 연기는 정말 빛났다. 솔직히 말해 김갑수 재발견 영화같은 느낌!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정도로.


*** 스포일러 등장할 수 있음 *** 


2. 경남 지방 도시 밀양의 면면이 잘 드러났다. 영화 <친구>도 물론 부산+영화 하면 떠오르는 영화일진 몰라도, 솔직히 어떤 부산의 감성을 담아냈다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다. 우리 친구 아이가라든가, 거친 바닷가의 모습 같은 것만 부각되었지, 삶의 면면들이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어쩌면 친구라는 영화가 이미 너무 많이 회자되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나중에 다시 보면 생각이 바뀌려나.)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경우, 아, 이것은 정말 경남의 지방도시다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는 영화였다. 특별히 밀성고라든가, 밀양 시내나 밀양의 시장이나 밀양의 다리들 같은 것들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장소성들은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들이 얽히고 섥혀 발현되는 것이다. 각 인물들이 내비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서로 미묘하게 알듯말듯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 오토바이를 타고 천가와 골목을 질주하는 씬, 부산-대구 고속도로 개통과 얽힌 부동산 이야기와 비닐하우스의 화투판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물론 곽경택 감독답게 조폭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B급'을 지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그 어느 싸움도 멋지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구치소에서의 싸움은 철저히 '똥개'스러운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을 다소 길고 지루하게 보여준다는 점 (어디까지나 관객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등이 매우 훌륭하게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부산과 대구 사이에 낀 밀양이라는 지방 도시의 똥개라는 설정이 영화의 이야기와 연출에 일관성을 부여하면서 일종의 신선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방도시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 중에, 이 정도로 진지하게 지역의 삶을 대하는 메이저 영화가 몇이나 있느냐 이 말이다. 지방은 너무나 쉽게 희화화 되고, 다른 것들이 일어나는 희안한 곳으로 설정되지 않는가. 사투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굳이 밀양일 필요도 없었지만, 밀양이 아니어서도 안되는 그런 장소성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밀양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엔 그리 보였다.)



3. 두사부일체와 비슷하지만, 일종의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2003년 영화라는 점에서 일종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걸지도. 




할머니댁이 떠오른다....ㅎㄷㄷ


인물들도 생각만큼 전형적이지 않았고, 특히 똥개/철민의 역할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똥개의 정곡을 찌를 때 마다, 별 볼일 없는 똥개라는 인물의 내면과 현실이 새로이 보였다. (그만큼 영화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 누구의 입장도 단순하지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똥개라는 영화 역시 2015년에 다시 나온다면 상당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간 곽경택 감독의 스타일이 정말 똥개라는 인물 설정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좋은 영화였다. 쉬려고 영화 봤다가 이것저것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에 한 번 진지하게 펜 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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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사부일체 (2001, 윤제균)

이대로는 뇌가 파업 선언을 할 것 같아 오랜만에 오락영화를 하나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구 주제와 관계가 없고, 별로 생각 안 해도 되고, 웃긴 영화가 선정 기준이었다.

스트레스를 풀 심산이었으니 로맨스 이런 거 말고 무조건 액션! 코메디! 빵빵 터지는 거!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제목만 들었고 실제로 보지는 않았던 <두사부일체>를 보게 되었다. 무언가 다른 영화랑 미묘하게 헷갈려서 보게 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골랐다 싶었다. 

왜냐면 선정 기준에 잘 맞았으니까. 그리고 영화의 시간이 빛바란 만큼,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감독: 윤제균

출연: 정준호 (계두식 역), 정웅인 (김상두 역), 정운택 (대가리 역), 오승은 (이윤주 역), 송선미 (이지선 영어 선생님 역) 등등 이하 생략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참 뻔한 이야기와 뻔하고 전형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뻔하고 전형적인 인물들을 적절하게 사학비리(...)와 엮어 내면서 훌륭한 코미디로 탄생한 것 아닌가 싶다. 특별히 그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들의 연기와, 섬세한 감정선 같은 거 웬만하면 다 가볍게 넘기고 진행속도를 내는 것이 포인트! 


이실직고 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소위 조폭 코미디긴 하다만, 어쨌든 스트레스 풀기엔 적절했으니 불만은 없습니다. 리뷰 읽어보니 2편, 3편은 안 봐도 될 듯. 처음에 정준호 나오고 조폭 싸움 장면부터 나오길래 이 영화 보지 말아야겠다 했는데, 정웅인이 출연하길래 참았다. 그리고 이메일 드립 덕분에 또 참았다. 그리고 전형적이라고는 해도, 오늘날의 조폭 영화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종류의, 과거의 전형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영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려운, 또 한 편으로는 나와서도 안 되는 그런 장르의 영화가 되어버린 듯하여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그나저나 영화를 보고 고향 동네의 아주 유명한 사학재단이 두 어개 떠올랐다. 하나는 동생이 중학교 진학할 적 뺑뺑이로 당첨되어서 내부 비리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그냥 동네에서, 아니 전국구로도 가끔 이름을 떨치는 사학재단으로, 소속 고등학교 뺑뺑이에서 당첨되면 애들이 서로를 붙잡고 엉엉 울던 그런 학교였다. 거긴 요즘도 지방 뉴스를 간혹 장식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도 엉망이려나. 사실 영화가 나온 2001년이면 그렇게 옛날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허용까지 포함하여 영화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너무나 옛날이라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과연 요즘도 저럴까 싶으면서도, 요즘에도 저럴 수 있겠다는 절망감 같은 게 들기도 했다. 


어느새 과거의 장르가 되어 버린 영화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옛날 영화를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 거기다 덧붙여 적어도 당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학교 생활의 면면들, 그리고 누군가는 분개하며 공감할 만한 학교의 비리 같은 것들도 깨알같았지만 말이다.


오늘의 결론: 스트레스 풀기에 적절했습니다! 근데 두 번 볼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는 조폭 코미디!라기 보다는 2001년을 추억하는 향수용 영화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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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 Trip Through China (1916, Benjamin Brodsky)

어제 저녁에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기획이 있어서 보고 왔다. 




A Trip Through China 

1916

Benjamin Brodsky

DCP, 108 min



스틸컷[각주:1]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행사 공지에서 빌려왔다. 


이 영화는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계 미국인이 만든 영화로,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중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촬영한 기록영상들을 모아 편집한 영화다. 어디까지가 직접 촬영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들의 촬영본을 따온 것인지 좀 불분명하다고 듣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그가 만든 것이 맞다. 브로드스키는 이민자로, 때로는 폴란스키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영문 이름은 Brodsky니 브로드스키가 맞는 이름이겠다. 


원래 세일즈맨이자 투자가에 가까웠던 그가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의 권유로, 중국 현지에서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를 중국의 서양인들에게 상영했을 뿐 아니라, 따로 강연가를 고용하여 미국에서도 순회 상영을 다녔다고 한다. 당시 1917년에 공개 상영된 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공개상영되는 자리였다고 한다. 2년 후였으면 100주년 기념이었을듯...뿐만 아니라 싱가폴 등 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상영을 했지만 뭐 좀 기록들이 불분명한 것 같다.


무성영화여서 따로 음악가 두 분이 동행하셔서 라이브로 신디사이저 반주를 해주셨다. 우리가 본 버전은 2013년 대만의 국가전영중심, 한국으로 치면 영상자료원 같은 곳에서 복원한 버전이다. 총 108분으로, 홍콩에서 시작하여 광저우, 수저우, 항저우, 상하이, 티엔진, 북경까지 여행하며 찍은 영상들을 모은 작품이다. 중간중간 코멘트들 (무성영화니까 화면상 글자로)이 등장하는데, 몇몇은 관찰을 전달하는 내용이었지만 나름 재밌게 하려고 만든 코멘트들도 있었다. 복원본의 한계인지, 원래 편집이 그랬는지, 혹은 당시 상영되었을 때엔 강연가와 본인이 함께 영상을 동반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초반을 제외하고는 장소들이 마구 섞인다. 그러니까 화면상으로는 천진에 있어야하는데 홍콩이나 광저우의 장소들이 나온다거나, 앞에서 쓴 화면들을 자꾸 재활용한다거나. 아마도 브로드스키의 사고와 관심사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 맥락이 조금 부족한 오늘날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들도 없잖아 있었다. 





완결된 글을 쓰기 귀찮으므로 여기서부터 짤막한 감상.


1. 

아는 장소들이 나온다는 것이 무척 재밌었다. 특히 홍콩의 경우 대부분의 장소들은 거의 다 대략적으로 분간이 갈 정도였고, 생각보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100년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심천을 떠올리며 아, 나도 저렇게 역사가 좀 긴 곳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음을 부정하기가...ㅋㅋㅋ 뭐 홍콩 땅덩어리가 작은 탓도 있겠지 싶다. 상하이의 와이탄의 경우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경의 전문과 자금성이었다. 전문의 경우 그 모습이 정말 완벽히 그대로 싱크로가 되어서 그 익숙함에 놀랐고, 자금성의 경우 익숙하지 않아서 놀랐다. 궁내야 익숙할지 몰라도, 자금성을 둘러싼 풍경이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 천안문광장을 비롯한 각종 정치중심기구들이 없는 고궁 주변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정말 담장 너머로 궁궐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천안문 광장의 모습이 없는 고궁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2.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언급이 제법 있었다. 미국 관객들에게 상영했을 때, 그들이 당시 미국에 대거 유입되었던, 동시에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쿨리들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애초에 당시 미국인들은 중국의 쿨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영상 자료는 어떤 상상을 촉발시켰을까? 진짜 제일 궁금했던 부분. 


2-1.

'노동'에 대한 감독의 입장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화의 소재로 삼는다. 물론 이는 '중국인'이라는 몸의 존재를 통해 바라본 노동이므로 한층 더 복잡하지 않았나 싶다. 


3. 

앞서 언급했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미친듯한 재활용의 향연이었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4. 

친구의 말대로 영화 속에는 강과 바다, 물 위의 교통수단(다양한 배)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한 편으로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영화를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성) 영화 카메라가 담기에 좋은 그림'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5.

영화는 근본적으로 러시아계 미국인인 그의 호기심, 그리고 미국의 관객들이 가질법한 호기심을 만들고 풀어나간다. 그곳의 서양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곳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 말이다. 다소 파편적이어서 깊이는 부족할지 몰라도, '본다'라는 감각을 가장 충실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영상 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브로드스키가 중국을 세계의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언어적, 비언어적 코멘트들이 흥미로웠다. 예컨대 다른 나라들을 언급하거나, 미국과의 차이를 언급하는 방식들 말이다. 


6. 

몇몇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촬영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카메라 앞에 세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를 들어 원세개 아들 세명이 인사 몇 번씩 하는 장면... 요즘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세계에 카메라라는 물건과 인간이 관계하던 방식이 궁금하다. 물론 카메라라는 물건을 쥐고 있던 백인/미국인의 존재 또한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사형수의 형집행장면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었고 (결국 난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가림 ㅠ), 그 장면에서 또 한 번 놀란 것은, 누군가가 카메라 앞을 얼쩡거리는 바람에 안보이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카메라 찍게 비켜라고 손짓하는 장면이었다. 사형장면을 영화 카메라에 담는다고?!

 

7. 

영화를 보다보니 예전에 한국에 대한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났다. 독일 신부였던 베버가 촬영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라는 무성영화였는데, 배급용 영화, 즉 상업영화적 성격이 강한 브로드스키의 중국 영상과는 달리 영상기록의 성격에 가까웠기에 마냥 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같이 영화를 본 중국인 친구가 100년 전 칭화대의 모습이 나오자 사진을 찍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나에게 익숙한 무언가의 100년 전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신기해할 것 같다. 




 


  1. http://filmstudiescenter.uchicago.edu/events/2015/trip-through-chin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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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The Assassin, 2015)

업데이트 된 리뷰 -- http://hyvaamatkaa.tistory.com/204


시카고 영화제에서 놓친 영화가 꽤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객 섭은낭이었다. 놓쳤다기 보다는 그냥 관람을 포기했다. 상영시간은 단 두 타임에,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갈라 프레젠테이션으로 나오는 영화표를 내가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지아장커 영화도 매진으로 결국 못 봤으니...


불행 중 다행으로, 자객섭은낭이 미국 전역에 개봉하였다. 대규모 개봉은 아니고 몇몇 도시들 극장들 위주로 하는 개봉인데, 이곳에서는 약 1~2주만 스크리닝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로윈날 할로윈 파티는 안 가고 영화관에 냉큼 다녀왔더란다. 




<자객섭은낭 刺客聶隱娘> 

대만 2015

허우샤오시엔 候孝賢  

출연: 서기, 장진, 사흔영, 츠마부키 사토시 등



1. 


이 영화는 시네마토그래피 하나만으로도 영화관 가서 볼 것을 강추할 만하다. 영화 공부하는 분들과 같이 갔는데, 다들 영화 끝나고 제일 처음 한 말이 영상감독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필름 영화에서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영상미에 대한 각종 실험으로부터 얻은 노련함을 집약해둔, 황홀한 영화였다. 일단은 당나라가 배경이고, 고증이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조금 욕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증이 뭐 대수일까, 필름 카메라로 저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예전에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을 보았을 때 발로 뛰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탄복한 적이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를 훨씬 넘어섰다. 발로 뛰고 인간이 만들어내고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을 온갖 감각으로 마주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철학과 노련함으로 담아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느낌이다. 더 폴이 예쁜 사진들을 잔뜩 모아서 황홀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면, 자객 섭은낭은 이 세계를 정말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수묵화로 담아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렸다는 표현보다는 담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것은 감독과 제작진의 집념이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산물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허우샤오시엔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납득이 갔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100%, 아니 120%로 담아내는 능력이 부럽다. 


(대신에 영상미가 강조되어 영화 속 식생이 좀 장난 아니라는 것이 함정... 냉대~온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부터 남쪽 열대지방에서 날 것 같은 나무들까지 막 다 나온다....참 넓은 동네에 사는구나 너희들... 어라 그러고보니 무협영화의 단골 대나무가 안 나왔네?!)



포스터의 수묵화도 멋지지만 영화는 더 멋있습니다 여러분. 역사와 전통의 수묵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영화로 배운 기분입니다...




2. 

사운드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배우가 악기 뜯는 장면은 매우 거슬렸지만 그것은 내가 소싯적 국악동아리에 몸담았기 때문에 예민해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 우리 동아리 친구들은 영화관에 가서 사극 영화를 보면 악기에 매우 집중한다. 예컨대 미인도를 보는데 배우의 가야금 연주 때문에 다들 확 깼다며 투덜투덜 했음...)  

각종 바람 소리, 새소리, 옷자락이 사부작거리는 소리, 발걸음 등등 여러 소리들이 한없이 증폭되어있었다. 소리의 증폭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우 조용했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나의 소리가 때로 매우 신경쓰였다. 소리를 증폭시킴으로써 소리가 없는 것, 혹은 조용한 것에 대한 감각 또한 증폭시킨 셈이다. 조금 이상한 비교일 순 있겠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은 생물체 아리에티가 느끼는 시끄럽고 거대한 세상을 통해 고요함을 소리로 채웠다면, 허우샤오시엔은 소리를 고요함으로 채운 것이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고요함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게끔, 또한 날카롭게끔 만든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객'의 이야기이니 이만큼 적절할 수가 없다. 


덧붙여 이는 (어떻게 보면 허우샤오시엔이 공언한) 무협영화라는 장르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무협영화에서는 칼이 부딪히는 소리, 기합 소리, 맞는 소리 등등이 매우 강조되곤 한다. 허우샤오시엔은 무협영화에서 일종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영화적 문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익숙한 문법을 새로운 감각을 통해 경험케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는 지침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일단 익숙하니까 보면서 마음이 편하다), 익숙한 것을 달리 생각할 여지도 제공하였다. 나도 언젠가 다른 매체를 통해 응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우 놀라운 전략이다. 


배경 음악의 사용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때로는 매우 낯선 음색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음색들이 연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절하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음악 사용에 집중해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볼법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어머 미쳤어




[이하 스포일러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3. 

영화에서 등장하는 액션 씬들은 이 영화가 분명히 무협영화임을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무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이다. 자객 섭은낭은 조용히, 우아하게, 그리고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상대를 제압한다. 장풍을 쏘거나, 허공답보를 하며 날아다니거나, 말도 안되는 괴력을 과시하거나, 검 끝에 서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갈고 닦은 현실 속 절정고수라면 저렇게 할 것 같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의 규칙을 따른 이펙트 사운드 덕분인지, 혹은 섭은낭이라는 말수 적고 자객다운 캐릭터 덕분인지는 몰라도 무협영화의 냄새가 짙게 나며, 기존의 무협 영화들을 비웃지도 않는다. 다른 것들을 비판함으로서 리얼리즘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간다고 느낀 부분이 아마 이런 점들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액션 씬들의 호흡이 다소 짧다는 것이다. 기존의 무협 영화는 액션씬을 매우 강조하여 보는 이를 즐겁게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호흡을 짧게 함으로써 오히려 액션 씬들을 부각시킨다. 대체로 매우 고요요하다가도, 화면이 전화되며 날카롭게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등장할 때마다 흠칫 놀랐다. 액션 씬들도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진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정중동(靜中動)과 같은 배치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가 느리다고 말했는데, 내 생각엔 '느리다'기 보다는 다른 시간성(temporality)을 강조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무협 액션이 탄생할 때까지의 빚어져야 할 관계성과 자객의 그림자 같은 존재를 부각시킨 것일 뿐이라고. (사족: 실제로 일본의 자객과 같은 닌자忍者는 인내하는 자다...그나저나 일본판 제목은 검은 옷을 입은 검은옷의 자객...黑衣の刺客) (사족2: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는 참 느슨한데 인물 간의 관계는 참 복잡하게 얽혀있다...)




4.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는 다소 파편적인 스타일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마도 선택과 집중을 매우 잘했다는 것의 방증이지 않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객'이라는 캐릭터에 영화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섭은낭이 자객을 수행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 모든 것을 조용히(영화가 조용해서 나도 반드시 조용히 봐야한다) 지켜보는 내가 자객이 된 것처럼, 영화의 화면과 그 너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어내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아무리 고요하지만 모든 화면이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바람 소리와 같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바람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비단 소리 뿐만이 아니라 차양막이나 비단, 촛불, 나무, 풀잎, 구름 등 시각적인 매체들도 총동원 하였다. (특히 티엔지안田季安이 방에 있을 때 섭은낭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이전에는 본적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면이다. 매우 충격 받았다.) 이러한 감각의 확장 덕분일까, 관객은 스크린에 비쳐진 풍경 이상의 넓이와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써놓고도 나중에 읽으면 무슨 미친 소리야 할 만한 문장이긴 한데,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앞서 말한 <더 폴>이 아기자기한 프레임 속의 판타지 세계를 상상케 했다면, 자객 섭은낭은 프레임은 그저 눈길이 가는 곳일 뿐, 마치 내가 그 속에 빨려들어가 영화 속 세상의 일부가 된듯한 느낌을 준다. 스케일과 화려함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그 우아함에 압도되는 느낌? 



5.

이 영화를 보고나서 왕가위의 <일대종사 一代宗師, 2013> 생각을 간간히 했더란다. 둘다 무협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느낌인데, 그 지평이라는 것이 사뭇 다른 듯 하다. 일대종사의 화려함과 다소 난잡한 스토리(반드시 엽문 이야기를 알아야만 이해가 갈 정도로...)는 기존 무협영화를 정면 돌파하여 새로운 길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슬로우 모션의 활용, 거대한 눈밭의 붉은 꽃과 같은 영상들은 무척 세련되었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없는 것도 만들어낼 것 같은 영화 감독의 패기가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반면 허우샤오시엔의 자객섭은낭은 기존 무협영화를 품어내며 새로운 지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느낌에 가깝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한껏 담아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암만 눈씻고 봐도 중국 건축양식이 아닌 것 같은 건물들이 등장하고, 실제로 촬영도 대만, 중국, 일본(교토)을 오가며 촬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나라를 제대로 재현 못했다고 욕 먹는거지만, 세트가 아닌 세계를 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뭐 상관없다. 재현 못하면 어때, 어차피 당나라 소설인데. 

요컨대 왕가위 영화만큼의 충격적인 느낌보다는 조용히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일대종사를 보고나니 다른 무협영화에 대한 실망감이 들었다면, 자객섭은낭을 보고나니 다른 (분위기 있는) 무협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물론 일대종사를 본지 2년이자 지났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제 한 번 연속으로 보고 비교를 해보는 것으로...



6. 

나는 허우샤오시엔 영화가 그간 무협영화에 대한 훌륭한 변이라고 생각했다. 무협영화라는 장르가 모색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을 제시하면서도, 기존 영화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그런 영화들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무협영화의 풍경들은 늘 아름다웠다. 대나무숲, 멋진 기와건물들, 첩첩산중의 안개 등... 하지만 너무나 정형화된 나머지 관객들은 이들을 보면서 신비로운 중원의 이미지를 소비했을 뿐,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무협영화는 일단 액션이 멋지잖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무협의 이야기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한껏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일종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날아다니지도 않고, 번개나 비바람을 동원하는 등 자연을 호령하지도 않는다. (사족인데, 자연 속을 거니는 인물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이들을 축소시켜 촬영한듯 했다. 예컨대 갈대라든가 길가의 관목 등의 크기, 그리고 배경의 암벽 등은 그 크기가 극대화 된 반면 인물들은 아주 작아보이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영화 자객섭은낭이 무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말이었다. 영화사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한 듯해 내가 다 영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7.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목적에 따라, 추구하는 지향점에 따라, 익숙한 템포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일대종사보다는 조금 더 접근하기 수월한 영화일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지루해서, 답답해서, (자막 퀄리티에 따라 - 영문 자막은 헬이다 헬) 이해가 안 가서 상영관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ㅋㅋ 나는 허우샤오시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특히 과거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추천하고프다. (같이 관람한 분들에 따르면 기존 영화작과의 비교가 제법 쏠쏠하다고 한다.) 덧붙여 혹시 보고 싶다면 꼭 영화관에서 볼 것을 권한다.



덧:

스토리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슬프게도 영어 자막 덕분에 스토리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 사극이나 중국 무협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보는 것은 지옥이다.) 심심하면 고문 쓰고 (하지만 고문을 가장 많이 쓴 섭은낭 스승님의 연기는 국어책 읽기 style... 초반에 몰입도 떨어져서 혼났다), 애초에 대사가 적은 영화라 나의 일천한 중국어를 믿을 수가 없어서 자막 열심히 봤는데 혼돈의 무아지경에 빠졌다... 혹시 나처럼 불쌍한 영혼이 있을까봐 인터넷에서 건져온 인물관계도를 첨부합니당...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 거 몇 개가 있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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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행자 (2009)




여행자 / Une vie toute neuve (A brand new life) 

감독: 우니 르콩트

출연: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 설경구, 문성근, 박명신 등등



기말 페이퍼를 완벽한 미완성의 글로 냈다.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도저히 내용을 채워넣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내용과 문장의 공백마다  말줄임표로 도배를 해뒀다. 항상 떨어지는 글의 퀄리티에 노심초사했지만, 이번엔 그저 미완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나 송구스럽다. 


하지만 이미 장시간 좌탁에서 글자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생각하기도 싫었고 암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야겠다 싶었다. 무심코 들어간 아마존 프라임에 추천영화가 떴고, 이것저것 뒤지던 와중 이 영화까지 왔다.


사실 여행자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봤다. 알았으면 이미 지친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을까 싶지만서도.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자신이 잘 아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생각을 했다는 점의 힘은 정말 놀랍다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보면 볼 수록 무척 영리한 영화면서도, 정말 좋은 조합을 만난 영화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영화의 큰 줄기는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빛날 수 있었던 것에는 바로 작은 디테일들과 주변의 여러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아는 큰 줄기에 살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흡입력을 가진다.


좋은 조합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카메라 연출,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부분이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복잡한 기교를 부리는 도구가 아니라, 정말로 주인공과 고아원의 원생들을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살아있는 그 어떤 무언가라는 느낌을 준다. 일관되게 주인공 진희의 눈높이에서 접근하면서, 동시에 간섭이나 "난 너를 이해해" 의 경계를 넘지 않는 노련함이 잘 어우러져있다. 


이는 음향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각종 음악이나 사운드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영화 속 현장의 소리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소리만으로도 오후의 고아원 운동장의 느낌 같은 것이 전달될 정도로 말이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노래를 변주해서 활용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음향도 상당히 일관성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지 않은 것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연기 하나하나가 정말 빛이 났지만, 무엇보다도 주연을 맡은 김새론 양의 연기의 폭과 깊이는 전대미문 수준. 김새론 양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따뜻한 인간미가 존재하는 고아원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한결 진중하면서도 비교적 가볍게 (경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짓눌리는 무거움의 반의어다.) 풀어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한국어 제목 선정 또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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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선희 (2013)




CEAS 필름 도서관에서 이 DVD를 집은 데에는 홍상수표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는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사실 그 동안 강원도의 힘 정도를 제외하고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본 적이 없고, 그나마도 홍상수 감독 영화인지 모르고 봤다... 그 밖에 한국어에 대한 갈망과, 한국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갈망, 다른 DVD 하나가 연구주제와 관련 있는 영화니 최대한 지금 내 삶의 어느 것과도 관계 없는 무언가를 보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래서 우리 선희,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영화들을 집었다 놨다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 선희를 집어든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DVD 뒷면의 작품 소개에, 선희라는 인물이 유학을 가기 위해 추천서를 받는다는 설명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별거 아닌 계기인데, 이토록이나 어디선가 공감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간 홍상수 감독 스타일에 대해 들었던 말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우리 선희는 엄청나게 몰입을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고, 실제로 감독의 연출 자체가 그런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찌질한 일상 속에 관객인 내가 녹아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영화라고 생각하면 거슬리는데 오히려 그런 장치 때문에 내가 더욱 더 이 사람들을 훔쳐본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인물들의 찌질한 감정들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내가 찌질해진 순간이었다. 물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설정상 나와 나이가 비슷할 선희를 보면서, 그리고 좁은 사회에서 엮여나가는 몇몇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의 지난 학부 때의 술먹고 헛소리 하던 기억들과, 여기서의 찌질함과, 지금 여기 미국에 있음으로써 성립되지 않을, 다른 이들은 공유하지만 나는 공유하지 못할 조각들의 형상들이 자꾸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문수(이선균)라는 인물의 섬세한 손연기, 구부정한 선희(정유미)의 목과 어깨 같은 걸 보노라면 나와 주변 사람들의 자그마함과 위축된 몸짓이 떠오르면서도, 비슷한 나이대일 선희에게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인물이 있단 말이야? 

 정말 오랜만에 그냥 '한국' 아니라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말을 쓰는, 어딘가 새침할 것만 같은 서울사람들과 좁은 거리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떻게 보면 정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서울은 내게 늘 낯선 곳이었고, 평생 살진 못할 곳이었는데, 잠깐 머무르겠다고 다짐한 곳을 그리워하는 법도 있구나. 

처음에는 감기기운으로 인한 두통 때문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계속 보다보니까 좋았다. 음악 사용도 좋았고.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찌질함의 한도 내였고, 그래서 좋았다. 지금 마음 상태로는 이것보다 더 하면 못 볼 것 같아... 소품 같은 영화라고 하긴 어렵지만 뭐 그런 말이 떠오르긴 했다. 노란 밝은 분위기를 내내 유지하는 것이 참 인상깊었다. 좋다. 저건 나도 지향하는 바다.밝은 노랑, 밝은 연두, 밝은 보라, 이런 색깔들로 덧칠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법 그럴듯하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하고 심지어 산뜻하기까지 해서 이걸 찌질함이라 불러야하는가에 대해서도 살짝 고민이 들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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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코세이지 + 디카프리오 (2) 에비에이터 (2004)




이번엔 에비에이터이다. 나로선 갱스 오브 뉴욕처럼 할 말이 많은 영화는 아니므로 리뷰도 아주 간략하게...







에비에이터 The Aviator


169' (갱스 오브 뉴욕만큼 길다)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하워드 휴즈), 케이트 블란쳇 (캐서린 햅번), 케이트 베킨세일 (에바 가드너), 존 C. 레일리 (노아 디트리히) 등등





영화 에비에이터는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적인 영화다. 이름도 낯선 그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사와 미국 비행사, 항공기사에서는 아주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동시에 기벽으로도 유명했다고... 실제로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는 나머지,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의 기벽을 보고 있는 관객도 속이 터질 정도...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몇 가지 조금 나열해보겠다: 


1) 사실 이 영화 리뷰는 스코세이지 + 디카프리오 시리즈보다는 스코세이지가 만든 전기적 영화 리스트에다가 포함시켜 리뷰를 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갱스오브뉴욕 모두 무언가 서사구조가 제법 큰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고 긴장감을 계속해서 형성시키지만, 에비에이터는 그보다는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을 영화를 통해 재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독이 취하는 전략도 조금 다른 듯 하다. 


2)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을 확 사로잡는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다. 스코세이지가 의도적으로 한 건지, 영화를 만들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솔직히 무언가 뻥 뚫린 느낌이 든다. 관객이 부여잡을만한 것은 오로지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이고, 휴즈의 인생 역경 대박 스토리 그 자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그의 심리 상태와 인생 그 자체를 상상하고 재현하는 데에 힘을 많이 썼기 때문에 서사 자체에서 오는 재미요소는 조금 덜 하다. 영화의 줄거리를 말해봐!라고 하면 조금 난감해진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 구멍을 메꾸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느낌이 강력하게 든다. 하워드 휴즈 자체가 아니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사, 비행기 등등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관객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을 잡아낸다면 빅재미겠지만 슬프게도 대다수의 한국 관객들에게는 대다수의 소재들이 너무나 먼 얘기가 아닐까 싶다. 이것저것 밑밥은 많이 깔아두었으니 하나라도 집어든다면 영화로부터 보너스 재미를 얻으며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럼에도 영화가 한국에서 별점테러를 당하지 않은 것은,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독특하기도 하고, 영상이나 디테일, 연기 등등이 모두 발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법 긴 영화인데도 제법 집중해서 끝까지 보았다. 어쩌면 디카프리오가 가장 빛나는 영화일지도. 디카프리오는 이런 연기에 특화된 것일까... 이건 드립이고, 감독도 디카프리오도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왠지 최근에 뮤지컬 영화 이런 걸 좀 봐서 그런가 당장 음악이 떠오르진 않지만, 그 때 끄적여놓은 메모를 보니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좋긴 좋았나보다.... 역시 스코세이지!


4) 나레이션 없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관객에게 정말 인상깊게 전달하였다. 하워드 휴즈라는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영화 한두 번 더 돌려봐야 할 말이 생길 것 같다.


5) 공개 청문회 장면은 진짜 거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신나는 장면이었다. 가자 하워드 휴즈!!!! 오웬 꺼졍!!!!! 



사족:

이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던 것은, 스코세이지가 하고 싶은 영화, 말하고 싶은 메시지들은 어쩌다 보니 조금 특수한 면들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예컨대 뉴욕이나 할리우드 같은 도시, 지역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미국 대중 문화에서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든가... 예전에 핀란드 감독 아끼 까우리스마끼는 농촌의 시골에 있는 할머니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는데, 그와는 반대의 인물인 것 같다. 영화들이 다들 굉장히 문화적 배경의 이해를 많이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세이지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 된 데에는 아마 1)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그 이상의 울림이나 특색을 지니고 있거나 2) 미국 문화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것의 반증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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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코세이지 + 디카프리오 (1) 갱스오브뉴욕(2002)

이번 주는 어쩌다보니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가 함께 작업한 영화들을 리스트업해서 보게 되었다. . 


갱스오브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모두 워낙 이름있고 호평받은 작품들이라 그런지, 왠지 스코세이지와 디카프리오가 함께 작업한 작품들이 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네 개가 전부다. 11월 미국 개봉을 앞둔 월가의 늑대 The Wolf of Wall Street까지 포함하면 다섯 개가 되겠다. 물론 네 개도 꽤 많지만, 스코세이지가 정말 작업 같이 많이 한 건 디카프리오보다는 사실 로버트 드 니로다. (초기작에서는 하비 카이텔이라고 한다.) 언제 또 스콜세지 작품 정주행할 일 생기면 스코세이지+드 니로 조합을 탐구해보는 것으로 하고... 




왼쪽 위부터 차례로 갱스 오브 뉴욕 (2002), 에비에이터 (2004), 디파티드 (2006), 셔터 아일랜드 (2010)




스코세이지 할아버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슬슬 살펴보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키워드들이 대강 좁혀진다. 물론 영화 자체를 많이 보지 않은 내가 이래저래 말할 건 없지만, 일단 짐작 가는 대로 짚어본다면 음악과 뉴욕(도시) 정도를 유추해낼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영화 크레딧에 등장하는 음악명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 밖에도 종종 영화감독 등 영화인,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찍지만 내가 본 네 개의 작품 중에서는 에비에이터 정도에다가 영화사엔 거의 문외한 뺨치는지라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이 글에선 과감하게 생략...


디카프리오야 할리우드 배우!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 중 하나고, 타이타닉 시절부터 이미 꽃미남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역시 할 말이 크게 없다. 다만 중년의 디카프리오하면 꽃미남...보다는 연기파 배우!로 확고하게 인지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원래 연기도 잘했지만 워낙 꽃미남의 임팩트가 강해서... 일단 스코세이지와 함께 작업한 네 개의 작품에서는 손색없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사실 네 개의 영화를 정주행하게 된 것은, 디파티드와 셔터 아일랜드를 보고 나서 두 작품에서 나는 냄새가 생각보다 달랐다는 점에 있었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설국열차의 송강호, 그리고 두 영화는 어쩐지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디파티드와 셔터 아일랜드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나머지 두 영화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네 영화 모두 각자의 색깔들이 진하게 묻어나와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스코세이지의 음향/음악 선정과 사용 방식은 정말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괴물을 갖다대는 것이 조금 거시기한 면이 있는게, 두 영화는 어느 정도 장르나 색채가 일치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고아성까지 같이 등장해서 더 그런 걸지도. 반면 앞에 나열된 네 영화는 각자 주제의식과 영화를 진행시키는 키워드가 상당히 다른 편이라서 그만큼 다르다고 느낀 것이지 싶기도 하다.)


영화를 비교하고 어쩌고 하기에는 능력이 조금 많이 안되기도 하고, 네 영화가 잡고 있는 키워드들이 꽤나 다르기 때문에 그냥 각자 리뷰를 해야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갱스 오브 뉴욕부터!


[스포일러/내용누설이 도처에 널려있을 수 있음!!]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


164' (꽤나 장편이다)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암스테르담 발론), 카메론 디아즈 (제니 에버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빌 더 버처 커팅)




갱스 오브 뉴욕은 사실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영화여서 깜짝 놀랐다. 디파티드를 본 후라 그런가, 아니면 스코세이지를 좋아하는 친구가 갱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그런가, 좀 더 대부나 퍼블릭 에너미스러운 갱을 상상했는데, 그것보다는 시곗바늘이 좀 더 돌아간 시점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오던 18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또 뉴욕이 나에게 별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갱스 오브 뉴욕은 확 다가오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조금씩 감을 잡아가긴 했지만, 미국이란 무엇인가, 뉴욕이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이 크게 의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뉴욕'이라는 배경보다는 주인공 암스테르담과 빌 커팅 간의 미묘한 관계, 암스테르담의 감정선, 그리고 집단 간의 폭력 정도를 따라가야하는 영화였다. 물론 빌 커팅의 강력한 카리스마라든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뉴욕의 풍광 그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갖춰진 영화긴 하지만 그 생소함 때문에 조금 힘든 면도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스코세이지 감독에게는 '뉴욕'이라는 배경과 이민자 집단, 원주민 집단, 상류층 간의 분화양상, 그리고 징병거부라는 사건에서 드러나는 '미국인', '미국'이란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단지 나의 경험이긴 하지만, 이러한 키워드들은 소화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왜 이 영화가 호평을 받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약간 공을 들여야하므로 모두에게 즐겁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듯 하다. 사족을 달자면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 포스터의 카피는 "사랑과 복수" 면에서는 아주 적절하지만 "전세계" 측면에서는 조금 무리수라고 생각한다....ㅋ 미국판 포스터의 카피는 스크롤을 조금 올려보면 알겠지만 "America was Born in the Streets (미국은 길가에서 태어났다)"이다. 여기서 길가라는 것은 뭐라고 해야하지, 좀 더 싸우고 피터지는 그런 뉘앙스의 길가라고 보면 되겠다. 거봐, 마케팅이 이미 다르잖아?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된 뉴욕이라는 도시,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징병을 떠안기는 미국이라는 국가란 무엇인가, 미국인이란 누군가 등의 질문도 흥미롭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쓰려면 나도 시간이 필요하고 이야기도 길어지니까 일단 생략. 언젠가 뉴욕 배경 영화 특집을 할 때 다루기로 하고...  음향 및 음악 사용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악/음향 사용은 두 개다. 하나는 영화 초반에 데드 래빗과 원주민 간의 결투 직전, 데드 래빗이 파이브 포인츠로 나서는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다. 무언가 부족민들의 싸움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음악과 장면들은 영화 후반부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반복학습 덕분에 영화를 보다가도 이 음악만 들으면 관객들은 암스테르담과 함께 극중 과거를 자연스럽게 회상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의 분위기가 여타 장면에 사용된 음악 분위기랑 상당히 다르기도 한데, 이는 아마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매개로 미국이 탄생하는 과정의 서로 다른 단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경찰이 힘을 얻어 파이브포인츠를 누비고, 징병이 전폭적으로 실시되는 단계에서의 국가와 정부라는 것은, 흡사 부족의 추장과 부족 간 전쟁을 통한 중심지에서의 권력 쟁탈전을 통해 일종의 통치가 발생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써놓고 나니 무슨 소린지. 아무튼 이러한 국가의 탄생 과정이라고 해야하나, 서로 다른 단계라고 해야하나, 이를 스토리와 화면 상으로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서도 함께 강렬한 대비를 준 것이 인상적이어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순 있지만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이었다. 난 원래 크레딧도 끝까지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보통 크레딧을 보면 별 재미가 없는 건 사실인데, 이 영화만큼은 크레딧도 분명한 영화의 일부라고 느꼈다. 뭐 딱히 아이언맨 처럼 끝에 덧붙여진 영상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음악을 통해 크레딧도 영화의 일부러 편입시켜 버린 것이다! 다른 영화들은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에 사용되었던 트랙들이 이것저것 나오는데, 갱스 오브 뉴욕은 유달리 딱 두 곡만 등장한다. 하나는 U2의 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인데, 자세하게 가살 알아들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제목만 보아도 영화의 키워드가 거의 다 들어가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진짜 피날레는 U2의 곡이 끝나고 나온다. 무엇인고 하니, 현대 뉴욕을 연상시키는 길거리 음향을 쭉 틀어주는 것이다! 자동차 달리는 소리, 경적 소리와 같이 듣기만 해도 오늘날의 뉴욕시티가 떠오르는 바로 그 사운드다. 18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크레딧 가장 마지막에 음악도 아닌 이런 음향을 사용함으로써 영화는 자신의 메시지를 한 번 더 각인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딛고 서 있는 미국의 뉴욕시티라는 것이 지어진 과정과 배경은 이러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그 이면은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렀고, 엄청난 차별과 갈등들이 존재했다고. 어떻게 보면 뉴욕이라는 도시, 미국이라는 국가는 처절한 갈등 위에 세워진 지저분한(부패했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니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복잡하다는 의미에서 지저분하다는 뜻) 것임을...


월가의 늑대 내용은 몰라도 제목만 보았을 땐 일단 월가가 위치한 뉴욕이 배경일 것이고, 공개된 트레일러의 스크린샷만 보아도 현대가 배경인 만큼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갱스오브뉴욕이 뉴욕이라는 도시와 미국이라는 국가의 배경을 다루었다면, 월가의 늑대는 아무래도 스코세이지가 바라보는 뉴욕과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현재를 보여주지 않을까? 


뭔가 리뷰가 산으로 갔는데 아무튼 어서 월가의 늑대를 보고 같이 묶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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