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비오는 밤 홍콩 센트럴을 헤매고 다니는데 매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급하게 샨터우(汕头)에 다녀왔다.
홍콩서 국경을 넘어 선전으로 들어가 선전베이(深圳北)역에서 차오저우(潮州)행 고속철도를 탔다. 샨터우 역은 아직 공사 중이라 이용은 불가능하고, 차오저우 역으로 가서 1시간 정도 걸리는 10위안 짜리 버스를 타면 샨터우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다. 버스 타고 오가면서 발견한 특이한 점. 버스 방송은 기본적으로 보통화인데, 종점에 도착하면 차오샨말도 같이 나온다. 원래 차오저우랑 샨터우 쪽 지역 사람들이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 세서 심지어 차오산말로 만든 영화도 있다고 한다. 영화적으로 굉장히 엉망인 작품이라며 현지인 친구가 매우 깠다.
남쪽에서 기차를 타면 저렇게 착착 지어져있는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차오저우 깡촌 가보니까 막상 정말 오래된 가옥들은 저렇게 질서 있게 지어두지 않았던데...
개혁개방 시기에 새로 지은 집들인가?
아님 70년대 도시에 신촌(新村) 지을 때 시골에 저렇게 지은 것인가...
누가 좀 가르쳐주세요....
차오저우 역은 생각보다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다. 전에 왔을 적 같이 온 친구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기차를 놓쳤고, 그 바람에 차오저우 역에서 2시간 기다려봤는데 진짜 앉을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었음.
중국 기차역들은 표 없으면 못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대합실 이용도 안 된다 ㅂㄷㅂㄷ
역이 작기 때문에 오고가는 기차들도 대부분 광동과 복건성 기차들이다.
그 와중에도 홍콩 가우롱까지 가는 기차가 있긴 하네...
그나저나 선전베이에서 상하이 홍차오까지 가는 저 열차는 몇 시간 짜리 열차일까...
샨터우 시내, 항구쪽을 거닐어봤다.
승객을 실어나르는 항구는 아니고 수산물들이 오가는 항구인 것 같다.
이쪽 바다는 심해가 아니기 때문에 큰 배가 진입이 되질 않는다.
건물들 뒤로 큰 다리가 보이는데, 저 다리엔 말이야...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어...
조금 걷다보니 몇 년 전 새로 생겼다는 시디공원(西堤公园)이 나온다.
나름 바다스러운 배들도 보이지만 어쩄거나 여긴 다 수심이 얕은 편이다.
이 시디 공원에 생각지도 못한 화려한 전시가 설치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해외로 나간 화교들이 고향에 써 보낸 편지들을 전시해둔 것이다.
이렇게 화교들이 해외에서 보내온 서신들을 차오샨 말로 "꼐포이"(뭐 그런 발음이었음) 라고 한다.
이를 보통화로는 "桥批"라고 표기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다.
아무튼 이 서신들을 기념하는 공원이었다! 화면 위로 물이 흐르는데, 꽤나 잘 해뒀음.
그래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Memory of the World)로 등록도 해둠ㅋ
슬픈 전설이 있는 다리 밑 쪽으로 가면 화교들이 진출한 각지의 지명들과 이들까지의 거리가 해리(海里)로 표기 되어있다. 필리핀 마닐라가 627해리로 의외로 제일 가깝고 버마 양곤이 가장 먼 것으로 나온다.
육로나 상공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바다로 이동하는 거리라서 그런 것 같다.
아, 그리고 다리의 슬픈 전설은 별 건 아니고 리카싱과 관련된 이야기다.
홍콩의 리카싱 역시 차오샨 출신 화교인데지라 샨터우 곳곳에는 리카싱이 투자한 건물, 설비 등이 제법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샨터우 대학교고, 샨터우의 가장 큰 병원도 현지에서는 리카싱 병원으로 통한다.
이 다리 옆에는 다른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그 다리 역시 리카싱이 투자한 다리라서 "리카싱 다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당시 리카싱 다리가 개통했을 무렵, 샨터우 시정부와 리카싱은 일종의 딜을 했다고 한다. 리카싱이 다리 건설을 전액 지원하는 대신, 수익 보장 (다리 통행세) 차원에서 향후 X년간은 해협을 건너는 다리를 짓지 않기로 했단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샨터우 시에서는 위 사진에 나오는 다리를 지어 버렸고, 그 뒤로 리카싱을 비롯한 해외의 화교들과 샨터우 시의 관계가 매우 미묘해졌다는 후문. 그래서 리카싱도 학교와 의료 외에는 큰 투자를 안한다고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공원 담 쪽으로 가면 사당도 하나 있는데 이 사당에서 모시는 신을 세보았더니 한 20 명 쯤 되는 것 같았다. 사당의 현판에는 천후궁(天后宫)이라고 해놓고 정작 틴하우(天后)/마주(妈祖)는 찾지 못했음...
샨터우는 폐쇄적인 동네라고들 많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항구도시 중 하나다. 아편 전쟁으로 인해 당시 청나라는 서방과 여러 개의 불평등한 조약을 맺게 되는데, 그 중 하나인 티엔진 조약의 조건으로 11개의 항구를 열면서 1860년에 샨터우 항구가 개항되었다. 샨터우는 이때부터 급속도로 개발된다. 그리고 1979년, 선전, 샤먼, 주하이와 함께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되지만 제일 망한 곳이 샨터우라는 게 중론.
아무튼 일찍이 개항한 영향으로 인해 샨터우 시내의 항구 주변에는 이러한 서양식 건물들을 정말 어어어엄청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는 이들을 어떻게든 관광자원화 하려고 겉에 폭풍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주로 정말 큰 길가에 보이는 부분만 새로 색칠하고 조명을 창 안 쪽이 아닌 창문 *바깥*에다 설치해서 밝히는 식이다. 참고로 페인트 색깔이나 칠 퀄리티는 거리마다 매우 들쑥날쑥한 느낌. 돈 많은 도시라면 진짜 예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다 못해 샤먼 만큼만 되어도 진짜 멋질텐데...
대부분의 이 유럽풍 건물들은 거의 관리가 안 되어 있다. 원래는 돈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다 망했다고 함. 그래서 이제는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들 산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많은 건물들에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위험건물(危房)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지만 안에 잘 살펴보면 사람들이 많이 들 살고 있다. 관리는 정말 안 되었지만 창틀이나 건물들 장식들, 조각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규모 보수/개조 공사 중인데 공사하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건물 꼭대기에도 가건물을 세워 살마들이 살고 있다.
장장 과거 100여년의 서로 다른 건물들이 한데들어있다. 오른쪽 뒤로 살짝 보이는 멋드러진 지붕을 가진 건물은 19세기에 개항한 후 지어진 유럽풍 건물이고, 앞쪽에 철판으로 만들어진 가건물 밑의 건물은 아마도 문혁 시절 건물일 것이다. 왼쪽의 아파트는 개혁개방과 함께 지어진 아파트들이고, 그 뒤로 보이는 고층 건물들은 2000년대 이후 지어진 고층 아파트.
유럽풍 건물들의 개조 보수가 매우 들쭉날쭉하고 정말 바깥만 칠한다고 했는데,
이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보통 중국의 작은 도시로 가면 외국인이 주숙 가능한 숙소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샨터우는 나름 경제특구였고 수많은 화교들의 고향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 전체에 널리고 널린 게 외국인들 투숙가능한 숙소들이다.
숙소들 리뷰를 보면 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온 투숙객들의 리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차에 미친 고향답게 호텔 방에도 다구 풀셋트와 티백들이 준비되어 있다ㅋ
근데 티백들 대홍포 이런 거던데, 마시면 엄청 비쌀 것 같아서 손도 안 댐...
이 동네 사람들 진짜 차 어어어어ㅓㅓㅁ청 마셔댄다. 쉬지 않고 마심. 동네 구멍가게에도 찻잔 다 마련되어 있고 찻잎 박스 수준이 아니라 포대 수준으로 사두고 마시더라.
호텔 입구의 전광판에 흘러가는 무지갯빛 화려한 글자는 다름 아닌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산터우정신 홍보 문구. 도대체 호텔에서까지 왜 이러는거니...
산터우에 간다고 하니까 다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맛있는 거 많이 먹었는데 먹느라고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고, 딱 한 장 찍은 게 바로 이 창펀(肠粉)이다. 미국 차이나타운 딤섬집의 창펀,부터 홍콩의 창펀, 광저우 얌차집의 붉은색 창펀, 차오저우 깡촌의 땅콩 소스 끼얹은 창펀까지 별별 창펀 다 먹어봐서 솔직히 별로 기대 안했는데
와
이건
내 인생 창펀이었다.
특히 가장 오른쪽의 소고기 창펀은 두고두고 기억날 맛이었다.
피도 정말 얇은 게 야들야들하고, 소고기와 채소도 실하게 들어있는데다가 소스까지 꿀맛!!
위생상태는 답없는 식당이었지만 진짜 핵맛 꿀맛 요즘 말로 JMT이었다!!!
또 먹어볼 날이 오려나?!
기승전창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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