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먹은 음식들 (1) - 차찬탱과 패스트푸드편

지난 몇 달 동안 홍콩섬 남단의 애버딘/香港仔(광동어 발음으로는 행겅자이 쯤 됨) 근방에서 골골대며 노동을 했다. 사실 지금 사는 곳도 심천/선전(深圳, 광동어로는 쌈잔 쯤 된다)이라 홍콩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래도 홍콩은 홍콩이니 당시에 먹었던 음식들 나열해봄. 가끔 함정카드로 당시에 먹은 음식이 아닌 경우도 있다. 선전에 있으면서 홍콩에 친구 만나러 뭐 행사 참여하러 등등 종종 건너간다! 건너갈 때마다 출입경이 잦아서 그런가 매번 국경에서 붙들리는 건 안 자랑...

내 생각에 홍콩음식이 곧 광동음식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기본베이스는 광동음식이지만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중국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들이 많다. 거기다 분명히 내가 대륙에서는 아주 지역특산이 아닌 이상 대체로 메뉴판 읽는데에 크게 무리가 없는데, 홍콩에서는 정말 매번 주문할 때마다 뭘 주문하는지 몰라서 아주 스릴이 넘쳤다.  또한 광동음식 외에도 객가/하카(客家)음식이나 조주/차오저우/치우차우(潮州) 음식들 영향이 큰 것 같다. 조주는 행정구역상 분명히 광동성 내에 속하지만 이쪽 문화권은 대충 광동과 복건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보면 된다. 

덧붙여 홍콩은 워낙 국제화 된 동네라 정말 별별 나라 음식들이 다 있다. 사람들이 홍콩에 쇼핑하러 간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면세 (심천 사람들도 비싼 수입품, 전자제품 등은 홍콩으로 사러 간다)도 있고 과거 동서양의 교역이 다 모이는 곳으로 정말 쇼핑의 성지와도 같은 점도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조지루시 밥솥), 나는 그보다도 생활 속에서 뭐든지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특히 먹는 거라면 홍콩은 기본적으로 수입 의존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정말 별별 걸 다 구할 수 있다. 일본 게 유난히 많은 편이긴 한데, 최근엔 한국 농산품도 엄청 들어가 있더라.


아무튼 밥 먹을 때마다 꼬박꼬박 사진을 찍었으니, 종류별로 분류해서 업로드 해봄. 먼저 차찬탱 (茶餐厅) 음식들. 보통화로는 차찬팅이라고 읽지만 차찬탱은 사실상 홍콩식 식당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광동어를 사용해서 차찬탱이라고 읽어봤다. (어차피 광동화는 성조가 핵심인데 우리는 9성을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안될거야 아마....)

차찬탱은 글자만 보면 차를 팔 것 같은데, 현지에서는 그보다는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느낌이다. 전형적인 차찬탱은 4인용 쇼파에 테이블이 있고 말도 안되게 엄청 많은 메뉴판을 자랑하는... 뭐 그런 경우가 많다. 한국의 식당들과 달리 중국 식당들은 메뉴가 엄청 많은 편인데, 특히 홍콩의 경우 새벽/오전/점심/오후/저녁 별로 계속해서 메뉴가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 특히 오후에는 보통 오후차 메뉴를 많이 판다. 말이 좋아 오후차지 간식 수준. 가장 대표적인 음료로는 레몬차(뜨거운 거 혹은 차가운 거)와 밀크티 (역시 뜨거운 거 혹은 차가운 거) 정도가 있다. 이들은 대륙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맛이 사뭇 다름. 딱 앉으면 뜨거운 차를 주는데, 보통 여기다가 수저를 담가 소독하곤 한다. 그냥 마셔도 상관은 음슴. 대륙, 그것도 광동 쪽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이런 뜨거운 차를 주면 식기를 꼬박꼬박 씻기는 하는데 홍콩에서는 귀찮아서 그냥 먹은 적도 많다.ㅋㅋ 

사실 정확한 정의는 나도 잘 모르겠고, 식당을 가보면 아, 저거슨 차찬탱이구나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혹시나 해서 위키에 찾아봤는데 위키에서는 양식을 홍콩 현지화 해서 파는 패스트푸드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_chaan_teng

사실 아예 차찬탱 특집편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차찬탱에서 먹은 게 없어서 (살던 동네에 차찬탱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세 장 밖에 올릴 게 없다....

홍콩음식


일하던 사무실 건너편에 있던 차찬탱의 점심메뉴 중 하나. 쌀국수에 오리고기를 얹어먹는 음식인데 쌀국수는 굵기나 모양에 따라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대륙보다 다양성이 훨씬 엄청나다. 이 날 처음으로 다른 외국인에게 차찬탱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설명함.... 

참고로 저 국수 모양은 내 기억에... 라이판이라고 불리는데 쉽게 말해 쌀스파게티 쯤 된다. 성조가 미묘해서 끝까지 제대로 못 외운 단어임...


홍콩음식


이것은 셩완의 어느 차찬탱에서 먹은 에그누들이다. 이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시켰고 정확하게 내가 아는 그 맛이 났다. 늦은 시간이라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들어간 건데 차찬탱 안에서 나이 지긋한 홍콩 아저씨들이 즐겁게 생파를 하고 있었다. 


홍콩음식


이것은 케네디타운의 차찬탱에서 먹은 스파게티다. 오른쪽으로는 아이스밀크티 (똥나이차라고 발음)가 있다. 사실 아이스레몬티(똥랭차)를 시킬 생각이었는데 말 잘못해서 밀크티 시킴 ㅠ_ㅠ

분명 서양음식이지만 왠지 모를 아시아의 그 느낌이 많이 나는 저런 음식들을 많이 판다. 대표적인 것들이 밥에다가 소스+치즈를 얹은 치즈도리아/그라탕류 음식들. 절대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것들. 이런 거 먹으면서 기뻐할 때마다 나는 천상 아시아인이구나 싶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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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건너편인 선전에만 와도 차찬탱은 딱 차찬탱 색깔이 나며, 대체로 홍콩식(港式)이라는 이름을 달거나 지극히 홍콩스러운 이름들을 달고 있기 때문에 알아보기 어렵지 않다. 아마 홍콩 가서 많이들 먹어봤을 대가락(大家樂/Cafe de Coral/따이가록)이 대충 차찬탱의 패스트푸드화 및 표준화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가락 외에도 맥심(Maxim's 혹은 MX, 혹은 美心 메이쌈) 및 대쾌활(大快活, Fairwood, 따이파이웃)이 유명한데, 보통 대가락이 중간 쯤 되면 맥심은 대가락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편이고, 대쾌활은 대체로 음식이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대쾌활은 음식이 맛이 없다면서도 식당 운영을 어떻게 하는거지 싶었는데 그냥 홍콩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급하면 가는구나 싶기도 했다... 음... 또는 롯데리아 같은 느낌이려나. 어라 근데 이 글 작성하면서 대쾌활 잠깐 찾아봤는데 이거 로고보니까 옛날에 즐겁게 먹던, 피에로가 그려진 그 식당이 맞네?! 헐, 대쾌활 맨날 욕했는데 내가 좋아하던 곳이었구나... 동심파괴 느낌...

아무튼 이 패스트푸드 점들의 경우 메뉴판에서 메뉴를 고른 후 (영어+그림에 알파벳+기호까지 나와 있어서 주문하기 쉬움) 번호가 뜨면 가서 음식을 받아와서 먹으면 된다. 다 먹은 후에는 식판을 퇴식구나 퇴식선반에 놓고 오면 된다. 중국의 경우 음식을 받고 퇴식하는 과정은 모두 종업원이 담당해준다. 인건비 빨 인해전술이랄까. 참고로 홍콩에서도 노인 분들이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직원들이 음식 갖다주고 하는 거 많이 봤다. 


홍콩음식


특별히 힘들었던 어느 하루, 퇴근한 후 홀린 듯이 대가락에 갔다. 사실 뭐 굳이 대가락을 먹어야하는가 싶어서 홍콩 가서 한동안 대가락을 안 먹고 있었는데, 왠지 이 날만은 뭔가 특별한 걸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멀리 나가긴 힘들고, 애버딘 쪽에는 사실 다른 지역만큼 식당이 많지 않아서 무진장 고민했다. 그러다가 어릴 적 추억 보정과 함께 철판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어쩌다보니 소울푸드행...

이날 고기 썰면서 울 뻔했음... 사실 45홍콩 달러 정도 되는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안난다) 음식이니 대단히 좋을 리가 없다. 저 고기는 실제 스테이크라기 보다는 햄스테이크의 맛에 가깝다. 스테이크의 맛이 저얼대 아님. 그렇지만 철판에 올라가있으니 기분 내기도 좋고 맛도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빵도 맛있고, 뭔가 뜨끈뜨끈한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그저 기쁠 뿐. 소스는 토마토랑 블랙페퍼 소스가 있는데 후자는 내가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그 뒤로도 유난히 힘든 날 하루 이틀 먹었다. 이렇게 힘든 날 먹는 음식 정해놓는 거 조차 위로가 될 정도로 멘탈이 안 좋았음ㅋㅋㅋ


홍콩음식

그 뒤로 대가락에 무진장 자주 갔다. 그런데 아무리 메뉴판에 그림과 글자가 있어도 그림이 없는 메뉴들이 있다. 영어 표현으로는 사실 뭔지 잘 모를 때가 있는데... 이 날도 대충 주문했다가 상상과 좀 다른 게 나와서 당황했던 날임. 그냥 스파게티 소스 비빔밥 수준인데 은근 중독성 있어서 싹싹 잘 긁어 먹었다. 이 날도 음료는 아이스레몬티. 난 저거 모든 홍콩식 식당에서 거의 고정 메뉴 수준임. 



홍콩음식


케네디 타운의 차찬탱에서 먹었던 스파게티가 맛있어서 대가락에서도 시켰다. 그런데 이 날은 진짜 더럽게 운이 없었는지 좀 식은 스파게티가 나왔다. 주문 들어가서 정말 20초 만에 나왔으니 미리 만든 걸 새로 덥히지도 않고 나온 게 아닌가 의심함. (원래 미리 만들어둔다. 패스트푸드니까.) 이 날은 나름 특별하게 먹겠다고 음료도 좀 색다르게 시켰는데 음식이 대실패해서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겼다. 면도 다 말라붙고 흥 ㅠ


홍콩음식


하지만 난 이미 대가락의 노예. 실패한 메뉴가 있다면 그 메뉴 빼고 다른 걸 먹으면 그만일 뿐. 어느 일요일 오후 3시 쯤 가서 간단히 끼니를 떼우는데... 와... 대가락에 그렇게 사람 많은 건 첨 봤다. 정말 줄도 너무 길고 자리도 없을까봐 매우 걱정했다. 내 기억에 할아버지 2분, 아주머니 1분과 한 테이블에서 같이 먹었던 것 같은데... 

특히 오후차(下午茶) 메뉴들의 경우 가격적 메리트가 어마어마하고 (진짜 쌈) 동네 식당 상황이 영 거시기해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게 아닌가 싶다. 샌드위치 맛은 무난했던 것 같은데 그 뒤의 옥수수가 더 맛있었음ㅋㅋㅋ 참고로 대가락은 시간대별로 계속 메뉴가 바뀌고, 보통 아침, 오후차, 늦은 저녁 메뉴들이 20홍콩 달러 이런 수준으로 무진장 싸다. 



홍콩음식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는데 이것은 가히 대가락의 대표메뉴라고 할 수 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 (오히려 "소고기 스테이크"보다는 더 스테이크 느낌임)에 토마토, 파인애플, 양파, 완두콩 등을 얹고,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끼얹어 오븐에 구운 요리다. 이름은 哥焗猪扒饭...인데 이걸 번체로 바꾸면 뭐가 되더라. 광동어 발음은 모르겠고 메뉴번호를 그냥 외우고 다녔는데 이건 항상 그림에 나와있으니 그냥 가리키면서 음꺼이 하면 그만이겠다.  다른 홍콩분의 묘사에 따르면 홍콩 사람들의 소울푸드 같은 느낌이라는데 진위는 모르겠다. 이거는 회전율이 빨라서 그런가, 스파게티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가락에서 정말 물리도록 먹었고, 그마저도 모잘라 최근 선전에서도 대가락 갈 때마다 먹고 있다. 특히 대륙에는 멀쩡한 서양음식이 잘 없어서 (중국화 정도가 매우 심함) 적당히 서양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오히려 이걸 먹으면 대충 서양음식에 대한 욕망수치가 내려가는 느낌이 팍팍 든다 ㅋㅋㅋ 다만 애버딘 대가락보다 이쪽 선전에서 먹는 대가락은 양파도 더 많고 치즈도 좀 더 적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사진 보니 홍콩도 비슷하구나... 

굳이 찾아가서 먹을 필요는 없고 딱히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 

참고로 서양식 음식만 줄창 먹어서 그런데, 대가락에는 중국식 음식도 있다. 단오절 즈음을 겨냥해서 쫑즈(粽子)를 팔기도 했고, 하이난치킨(海南鸡肉)은 제법 먹을 만함. 홍콩에선 안 먹어봤는데 대륙 대가락의 하이난치킨은 값이 좀 세서 그렇지 진짜 괜찮았다. 


홍콩음식


이거슨 맥심에서 시켜먹은 카레. 맥심은 2층이고 대가락은 1층이라 올해엔 이때 한 번 가고 또 안 갔다. 어차피 경쟁 업체들끼리 메뉴들이나 가격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참고로 올해는 각종 카레들이 유행을 탔는지 특선 메뉴로 어엄청 나와서 가는 곳마다 저런 카레를 팔아댔다.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데 먹어보면 생각만큼 크리미하거나 하지는 않고, 오히려 많이 묽은 편이어서 조금 탕을 먹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도 싹싹 비웠음. 그나저나 평일 점심 시간이었는데 동네 중고딩들이 맥심에 와서 많이 먹고 있어서 좀 당황했다. 


참고로 패스트푸드 식당들에서는 옥토푸스 카드 결제가 가능하고 또 좀 장려하는 느낌이다. 맥심은 아예 자동주문기기까지 설치해둬서 옥토푸스 카드로 스스로 결제도 가능했다. 그런데 옥토푸스 카드 특성상 내가 돈을 얼마나 어떻게 쓰는 건지 1도 감이 안 옴ㅋㅋㅋ 돈이 아주 쑥쑥 나간다. 

다른 곳에서도 옥토푸스 카드를 많이 받지만 노포거나 규모가 작은 식당들은 안 받는 경우가 많다. 홍콩에서는 현금을 항상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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