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남기는 습관/책 (2)
[책] 히가시노 게이고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 한 달 전 쯤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가끔 짬날 때 조금씩 읽어왔다. 그러다 어제 오늘 술기운에 괜히 기분이 좋아 집어 들어 단박에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아무래도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때문인지 특별히 긴장감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이 끝나고 역자의 글을 슥 살펴보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평소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분명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자극적인 형사 사건이 주축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분명히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왜 나는 장르를 읽어내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이 글에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다는 것이 이 글에게, 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글을 읽으며 독자들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작가의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또한 그 시선이 훈계라든가 가르침이 아닌, 편지와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 이러한 형식들을 소설 그 자체에 잘 녹여내어 서사의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을 정말 높이 사고 싶다. 반드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혹은 자극적인 이야기들만이 능사는 아니구나, 이 글을 빚어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들었을까, 따뜻한 소설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될 수 있구나. (학문적 글읽기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시 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최근에 좀 성찰할 일이 있었다.)


사실 소설의 잡화점과 편지는 어떻게 보면 제법 진부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을 가만히 인내심을 갖고 엮어 냄으로써 어떻게 다른 글,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작가의 인내심이 정말 빛나는 글이다.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완급조절 또한 일품.)


영화나 리뷰글 등이 아닌 온전한 글로서, 소설로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접해서 무척 기쁘다. (번역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제법 유려한 모양.) 작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다. 


섬세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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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차이쥔 - 모살 (谋杀似水年华) [스포일러 주의]

리디북스에서 중국 추리소설인 '모살'을 무료 공개하였다. 

그래서 궁금해서 봤다.





http://ridibooks.com/event/3350



주 배경은 상하이고, 작가가 나름대로 사회적 문제를 담아보려고 한 결과 농민공이라든가 본지인/외지인 문제, 빈부격차 이야기 등이 인물들을 움직이는 주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이런 게 한국에 공개됐는데 안 읽을 순 없지!! 재미도 재미지만 나름의 연구의지와 부채감 때문에 읽은 면도 없잖아 있다. 


아마 지금은 5화가 무료 전화 됐을 건데, 한 삼일 전에는 4화까지만 공개된 상태였다. 속도감 있는 전개 때문에 뒷 부분이 무척 궁금하여 결국엔 인터넷에서 중문 원서를 찾아보았다. 부족한 중국어 실력 때문에 번역본을 읽는 것보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깊이 있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정말 스토리에 집중하면 되는 글이라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막 다 읽은 참이라 (그렇다 페이퍼를 쓰지 않고 소설을 읽고 노는 중이었다...) 생각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읽고 나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써본다.

아, 그 전에 세 줄 요약:


크리스마스 때 할 일 없는 심심한 분들 킬링타임용으로 읽기엔 훌륭합니다. 무료니까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만, 깊이 같은 건 기대할 게 못 됩니다. 이 책으로 중국을 배울 필요는 없으며, 중국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으시다면 글이 좀 불편(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1. 리디는 이 책의 작가를 두고 '중국의 기욤 뮈소'라고 소개한다. 기욤 뮈소의 글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하냐면 잘 모르겠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 속에서 글에 대한 평가가 계속 바뀌었는데 결론적으로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상업추리소설이다 - 정도. 사실 한 4부까지만 해도 글의 독자가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생각이 많이 오갔다. 그 시점에서 내렸던 소결은 이 책의 '사회적 시선'이라는 것은 결국 농민공이라든가, 상해 본지인이라든가, 고위층 자제 등에 대한 여러가지 환상들을 결합해 추리 소설에 끼얹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리디 공개 부분으로 치면 한 5부 정도의 포인트에서는 치우셔우(秋收)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농민공, 공장 노동자의 애환 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때만큼은 아, 이 글도 잘하면 그냥 추리소설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글이 될 수 있겠다하는 기대심으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나의 기대심도 같이 풀렸다. 나는 사회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결국 이도저도 아닌 치정극으로 끝나버리면서, 사회의 아픔을 그저 소비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즉, 작가가 어떤 계급의 대표로 그려내는 각 인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는 커녕, 그저 주변에서 쉽사리 소비되는 이야기들로 너무나 진부한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불편해 미치는 줄 알았다. 



2. 모살을 읽으며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문화 소비재들이 떠올랐다. 하나는 소시대 (小时代) 나 수많은 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부자들에 대한 환상과 동경 (그리고 그들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성립되는 멸시)을 그린 소비 컨텐츠들이다. 모살에서는 주인공 샤오마이의 남자친구인 셩짠(盛赞)과 그의 어머니, 와이탄에서 작업을 거는 페라리 남자 등에서 투영해 볼 수 있다. 그 밖에 드라마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들 또한 이에 해당하겠다.


두 번째는 마윈의 성공신화를 비롯해 각종 스타트업의 창업전설로 대표되는 소위 '성공기'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얘기한다. 한 가지는 어려움을 뚫고 각고의 노력 끝에 물질적으로 성공하는 젊은이들의 고생담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성공이 가져다준 물질적 행복이 가져다 주는 허무함이다. 예컨대 제작년 중국을 말 그대로 강타했던 <중국합화인>과 같은 영화라든가, 향촌에서 봉사하는 삶>>>>>부잔데 혼자만 남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익광고가 이에 해당하겠다. 이는 앞서 언급한 부자들에 대한 환상과 동경과도 맞물려 있다. 치우셔우가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겠고, 이를 목도하는 구페이는 이러한 컨텐츠에 나오는 조연(=관찰자)의 역할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 잘 모르겠다. 멀리 보면 결혼 잘 해서 잘 나가게 된 셩짠의 아버지 셩스화(盛世华)도 어느 정도 해당되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왕펑(汪峰)의 춘천리(春天里) (실제로 치우셔우의 삶을 그리는 어느 장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로 장이 시작된다)라든가, 안즈(安子)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다공문학(打工文学)에서 볼 수 있는, 농민공들의 삶과 애환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어 뭐라고 말은 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모살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것은, 첫째 과연 단순히 이들의 애환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 <모살>이 이들을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다만 차이쥔이라는 작가가 상기한 것들이 연상되는 컨텐츠들을 생산이 아닌 소비하는 축에 속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들었다. (솔직히 주강 삼각주 지역에서 떠도는 치우셔우 얘기가 몰입감이 좀 떨어졌다ㅠ 다들 이미 아는 이야기 수준에서 언급되어서 그런가...)


뭐 일단 내가 만났던 농민공들을 돌이켜볼 때, 삶 조차도 너무 버거워 이런 글을 읽을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모살>은 이미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는 장르들을 또다른 훌륭한 소비재로 한데 묶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이 글 자체가 시한폭탄 같은 팍팍한 중국 사회에서 쉽사리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산물이기에, 그만큼 한계가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3. <모살>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예측가능하다. 그나마 가장 입체적이었던 것은 샤오마이 정도지만, 샤오마이의 배경에 대해 조금 설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샤오마이는 앞서 2번에서 말한 각종 혼합된 장르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 같은 인물이다. 샤오마이는 가난한 집의 소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부잣집 소녀도 아닌, 상해 호구를 가진 경찰의 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미 틀어져있고, 이따금 충동적인 면 같은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일개 경찰의 딸이 무슨 재벌가 아들들을 만나고 다니는가... 물론 상해호구는 매우 귀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만큼은 아니다. (상해 호구를 가졌으나 빈곤에 처한 도시빈민들도 무수히 많다.) 결국 외모로 귀결되는 건가요.... 


치우셔우라는 캐릭터 설정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작가는 치우셔우를 통해 어느 순간 농민공과 소위 개미족(蚁族)이라 불리는 취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동일선상에 놓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불만이 많다. 치우쇼우는 어디서 각종 사회, 문화자본을 취득했는가? 과연 대학까지 나온 이족과 고졸의 농민공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가? (참고로 적어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농민공들은 중졸이었다. 이는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기 때문.) 이들이 갖고 있는 아픔의 경중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들의 아픔의 결과, 이들이 바라보는 사회, 세계, 시간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다시 돌이켜보니 이들의 납득되지 않는 배경이나 그나마 존재하는 '입체성'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인물을 그림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누가 읽어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소설이 지향하는, 혹은 이 소설을 탄생케 한 각종 사회적 환상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닐런지. 작가가 이를 정말로 의도했다면 이는 매우 영악한 장치라고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아 뭐 할 말 더 있었는데 나중에 작성하는 걸로...



4. 까먹기 전에 한 가지 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을 영화화는 것은 독배 마시는 거다. 책을 보면서 안젤라베이비가 주연한 영화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해봤는데... 이거 타깃층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것도 나중에 다시 보충하는 걸로...



5. 혹시나 오해할까봐 다시 말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무척 재밌다. (진짜 재밌다. 그래서 페이퍼도 집어 던지고 중국어로까지 찾아 읽었다....) 좀 용두사미 느낌도 나고 마지막엔 약간 허무하기도 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 그리고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는 부분 등이 돋보인다. 크리스마스 때 심심한 여러분께 킬링타임용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무료니까)

그렇지만 이 책이 어떤 아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책이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어디선가 광고에 '사회파 소설'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은데, 사회파라는 단어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뜻이라면 조금 동의하기 어렵다. 킬링타임, 오락용으로 차위쥔의 다른 책을 볼 일이 생긴다면 모를까, 차이쥔이라는 작가가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6. 중국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가는 조금 다른 문제겠다.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무척 궁금하다. 나중에 평이나 좀 찾아봐야겠다.



뱀발: 

생각해보니 혹시 문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라면 이렇게 안 썼을텐데... 혹은 나라면 이런 저런 걸 더 살렸을 텐데... 하는 부분들이 없잖아 있었다. 취향의 문젠건가?? 


뱀발2:

번역가가 거른 것들이 좀 있다. 말장난 때문에 어렵다기 보다는, 독자가 중국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어떻냐에 따라 번역이 어렵겠구나 싶은 부분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디에서 6화까지 다 공개되면 한 번 재빨리 살펴봐야겠따. 번역이 궁금함.

사실 처음에는 아 왜 죄다 발음기호로 인명, 지명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특히 맨 앞의 음식 이름들...), 원문의 이름들을 보고 대번에 납득하였다... 샤오마이는 소맥(小麦)이고 치우셔우는 추수(秋收)다.... 셩짠은 성찬(盛赞)이니까 좀 나으려나... 이 뭐...


벰발3:

한 3~4부 까지 읽었을 땐 너무 재밌어서, 중국의 책/영화 평점사이트인 도우반(豆瓣)에서 별점이 왜 이리 낮을까 참 궁금했더란다. 읽고나니 이해가 감... 참고로 도우반 가면 진짜 다양한 평들이 넘쳐나는데, 혹평들도 상당히 눈에 많이 보인다.  "쓰레기, 차이쥔은 글 그만 써라" 뭐 이런 평들도 있는데, 가장 웃겼던 건 "내 세 시간을 모살당했다" 였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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