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정식 리뷰문이 아님. 정식 리뷰문은 좀 더 관대하게 작성될 예정. 감독이 굳이 한국어 블로그까지 와서 글을 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좀 더 불만 위주로 써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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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Iron Ministry> (중국명: 철도, 铁道, 한국명 "철의 나라")의 감독 스나이데키는 하버드 센서리 에쓰노그라피 랩 (sensory ethnography lab, 이 따위로 음독해서 죄송합니다 감각민족지?라는 말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출신이다. 애초에 영상인류학 자체가 글자 기반의 인류학적 기록에 대한 일종의 반동, 실험, 부연 등으로 태동했음을 고려할 때, 민족지적 실천과 소통을 활자와 시각을 넘어선 온갖 감각으로 실험해보는 그런 곳이라고 일단 이해는 하고 있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무척 반가웠다. 영화제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감독을 본다는 것, 이 영화 자체가 센서리 랩 출신 작품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마음을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반가운 감정이 앞섰기 때문에 그냥 어물쩡 넘어갔다.
1년 반 후,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반가웠다. 1) 일단 한 번 본 영화고, 2) 1년 반사이에 나의 중국어와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3) 그 영화를 본 후 중국에 갔을 적 열차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남다른 관심은 영화 속 내용을 다소 부정하는 반감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관심'을 길러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반감도 관심의 일부니까.)
다만 이번에는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석연치 않은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었다. 이미 영화의 진행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에 대한 다소간의 불안감을 덜고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크게 한 몫 했지 싶다. 감독과 패널들, 관객들과의 대담 이후엔 석연치 않은 감정이 복잡한 분노와 실망, 의구심 등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분명 이 영화는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특징들이 있다. 감독의 영상언어에는 분명히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 3년 간의 촬영본을 편집한 작품이라는 점, 감독이 촬영하는 상황과 현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 스태프 없이 1인 촬영했다는 점, 소리나 물질에 대한 관심 등등. 하지만 이 대다수의 특징들은 그저 감독의 '실험성', 혹은 자신의 '영상제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추켜 새우는 데에 소모되고 만다. 얼마나 소모되냐면은 감독의 윤리성에 굉장한 의구심이 제기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꼈던 찝찝함은 대충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가면 더 많음):
1.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촬영: 동의는 과연 구한 것일까? 길게 유지된 관계성에서 기반한 촬영인 것인가? 웃통 다 벗어 던지고 자는 사람들은 이 키 큰 백인이 비디오 카메라로 자신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간에 촬영당하는 것을 목격한 잠자던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계속 카메라를 쳐다봤을까?
2. 민감한 논의에 있어 촬영대상에 대한 보호 장치 부재: 티벳 얘기를 하거나 위구르 얘기를 하는 승객들의 얼굴을 그대로 넣었다. 동의를 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촬영당함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나, 분명히 정치적으로 (많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 등을 그냥 그대로 넣었다. 심지어 신분증이 없어서 검표관이 데리고 나가버리는 신장 사람 얼굴도 고스란히 나온다. 과연 촬영 대상자들은 영상 촬영의 결과를 알고 있었을까? 특히나 카메라가 영화 카메라가 아니라 일반 비디오 카메라였는데?
3. '이상한 중국'에 대한 이미지: 중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는 모든 영상을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 또한 중국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려 '인류학 박사과정의 필드워크 중 촬영'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즉, 속칭 중국 전문가가 만든 필름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상은 미국의 TV나 대중매체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실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백성들',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 고기가 주렁주렁 걸린 열차의 모습과 같은 이국적 풍경, 바닥의 쓰레기나 무질서한 차내 풍경에서 암시될 법한 후진성 등의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센세이셔널'한 그림들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저 대중매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재현할 것이라면 뭐하러 인류학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복잡했고, 내가 오해하는 것인가 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들었지만 Q&A 듣고 아, 이건 그냥 망했다고 생각함.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은 패널리스트들도 대체로 비슷하게 떠올렸던 것 같다. 그들이 던진 질문들 중에는 잠자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윤리성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감독이 만약 미국에서 촬영을 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들은 모두 친절하게, 그리고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장화 되어 제기 되었다. 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대화를 거절하였다. 자신이 답하기 용이한 질문들에만 답을 하였다. 물론 감독이 모든 것을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널들의 질문들, 그리고 연이어 관객에서 등장한 질문들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윤리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영상제작가지 도덕주의자(모럴리스트)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대화 거부의 순간이었다.
패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우리 지도교수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 눈에는 그 옆의 친구 지도교수님 역시 미묘하게 그 미소가 바뀐 느낌이었다.
관객석에서 또다른 질문들이 나왔다. 그의 교수법에 대한 질문과, 영화 속에서의 젠더 표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옴)에 대한 질문이었다. 분노를 꾹 눌러참고 나도 질문했다. 영상 제작시 의도된 관객은 누구며 당신의 목적/책임 등은 무엇이었냐고. 한국어로 옮겨쓰니 좀 대범해보이는데 사실은 나름대로 매우 정중하게 돌려돌려 질문했다. (편집 과정에 대한 질문도 했는데, 이는 순전히 나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편집해놓고 나니 더 우선시하게 된 시기나 지역, 차종 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도 뭐 이렇게 대단한? 프로젝트는 아닐지어정, 학부생 시절 사회학과 친구와 같이 한 학기 내내 수십 시간 분량의 촬영 끝에 15분 50초 짜리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질문도 다른 질문들과 연결이 된다.)
다시 감독은 원하는 대답만 했다. 젠더 질문에는 약간의 변명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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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작에서의 윤리 문제는 몹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영화 상영회에서 유난히 윤리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은, 영화를 관람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거나 영화를 연구하는 학자,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분야 쪽에서는, 어느 지역이나 시대와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종과 성별의 문제가 매우 부각되곤 한다. 아니, 실제로 학계의 수면 위로 부각되지는 못하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그것을 느낀다. 연구주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근거 없이 '백인 남성'이라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더욱 쉽사리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실제로 그들은 '백인 남성'의 입지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일반성을 쉽사리 이야기하고, 각종 지식의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처한다.
툭 까놓고 얘기해보자. 이 영화는 감독이 성과만 따먹고 책임은 갖다 버린 케이스다. 또한 이 영화는 감독이 기성의 권위만을 맞추는 영화다. 검표원에게는 동의를 구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승객들에게는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영상에 더 많이 출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영화에 등장하는 소수의 남성들이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은 등장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젊거나, 소수민족이거나 (백인감독보다 더 중국어 구사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기반이 약한 사람들이다.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않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대해지지 않는다. 이미 제목부터 망했다. Iron 'ministry'라잖아.
감독은 자신이 중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많이 어울렸다고 했다. 과연 어떤 다큐 제작자들이었을까? 중국에서 나오는 다큐들 중에는 다분히 서구사회가 선호할 만한 이미지와 메시지로만 구성된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 걸 나같은 인간이 보면 내가 중국인은 아닐지언정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마련이다. 혹시 이런 사람들과 어울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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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철의 꿈을 매우 싫어했다. 한국에서 상영되기 전 이곳 영화제에서 보았을 적, 반가운 마음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로 치솟았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같이 본 언니에게 영화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은 좋지만 그렇다고 같이 촬영에 임해준 사람들마저 매우 오만한 방식으로 물화시켜 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산업의 역사 뿐 아니라 처절한 투쟁의 역사 또한 존재했을 조선소에서 그 역사성과 시간성을 앗아가버린다. 철의 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영화에 임해준 사람들 - 대다수가 조선소의 근로자들이다 - 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더 부추기고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소모시켜 버리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다큐의 원칙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그 분노는 어디 가지 못하고 블로그에 기록될 뻔했으나, 당시 네이버에 철의 꿈 리뷰가 없어서 내가 차마 개봉도 안한 영화에 욕을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화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기저기서 상도 타고 호평을 받는 것을 보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의 미적감각의 문제인건가? 나의 윤리적 감각은 너무나 한정된 분야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호평을 받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나의 상식이 세간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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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때 김홍준 선생님의 영상인류학을 들었다. 이곳에서 보다 이론 위주의 영상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따금 그때 작성했던 저널이나 쪽글들, 학과 내 과지에 영상인류학과 관련해서 기고한 글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영상들을 다시 보면서 비교해보거나 되짚어 보곤 한다. (슬프게도 당시 촬영한 영상은 싸그리 다 소실되었고 화질이 아주 떨어지는 최종버전과, 화질은 덜 떨어지지만 편집이 다 되지 않은 B컷만 남아있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심지어 김홍준봇....을 찾아서 정독하는데, 몇 가지 마음에 꽂히는 말들이 있었다. 영화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과,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에 대한 말들이었다. (트윗은 짧으니 내 맘대로 해석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친구가 만든 영상은 진짜 조야했다. 영상도, 사운드도, 편집도, 기술적인 건 다 개판이었다. 우리의 영상은 관객들에게 강제 상영하는 것이 아닌 이상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영상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수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영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착이 간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부족한 기술은 부끄러움), 저널을 읽으니 당시의 치열한 고민들이 녹아있구나 싶었다. (다만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아쉬워라.)
영상 만들기를 처음 접한 것이 스나이데키 같은 사람이 아니라 김홍준 선생님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솔직히 내가 남자가 아닌 것, 백인이 아닌 것이 원망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필드'에 나가면 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권력관계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은 추악할지언정 솔직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속칭 '유색인종' (이 말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음)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삶에서는 불편할지언정 학문을 하는 데에서는 안일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감각을 날카로이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너무 안일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것들을 모두 누리기만 했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들은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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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같이 본 한 친구는 Act of Killing의 오펜하이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윤리적 지적이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만약 감독이 최소한 대화에 응했더라면, 도전이라도 했고 고민을 회피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난 이 영화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오늘의 분풀이를 끝맺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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