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이상한 영화 하나 보고왔음.
치가사키 스토리 (3泊4日、5時の鐘; 3박4일, 5시의 종; Chigasaki Story)
88분
일본, 2014
감독_미사와 타쿠야
주연_스기노 키키, 이이지마 슈나, 나카자키 하야, 코시노 에나, 호리 나츠코 등
웹사이트: http://www.chigasakistory.com/
한국에는 별로 정보가 없는 듯 하여 간단하게 리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매년 가을 영화제가 열리는데, 이를 앞장서 홍보 겸 앙케이트 등의 목적으로 여름 내내 세계 영화를 무료로 상영 중이다. '코미디와 유머'라는 주제로 각국 대사관들이 선정한 영화들을 매 주 한 편씩 상영하는데, 이번 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걸 보고 왔다.
영화가 얼핏 보기엔 정말 평범한 일본의 시골에서 여름을 보내는 영화 같아 보인다. 그런데 보다 보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전개가 등장한다. 뭔가 정갈해보이던 영화가 갑자기 좀 의외의 수를 둔다고 해야하나. 같이 보러 간 일본인 친구들도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좀 놀랍다는 반응은 비슷했다.
일단은 감독이 뭘 찍고 싶어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나름 섬세하게 짜내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러다가 큰 그림을 놓친 것 같다. 영화에 전반적으로 다소 힘이 들어가서 좀 튀는 장면들이나 전개가 있어서 다소 애매한 영화가 되었다. 여름용 영화인 것은 확실하고, 영화 관람 타겟은 잘 모르겠음. 무언가 일본 영화답게 좀 지나칠 정도로 정갈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면서 미묘하게 튀는 구석들이 있는지라 색다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좀 애매하게 볼 것 같은 영화고, 적어도 풋풋하고 상큼한 그런 청춘물을 찾고 싶다면... 글쎄..... 포스터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영화라고 일단 못을 박아두고 싶다... 여심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겠다고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데 확실히 여성 캐릭터들에 힘을 많이 쏟긴 했고 나름 리얼리티라면 리얼리티...
이렇게 욕 비스무레하게 썼지만 일단 감독이 조금 설익은 듯 하니, 좀 더 경험치가 쌓여 노련해지고 보다 과감해지면 후에 괜찮은 작품들을 기대해 볼만할 지도 모르겠다. 싹수는 조금 보이는 듯 한데... (그리고 실제로 찾아보니 과연 졸업작품이었다고.) 참고로 위의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경국제영화제 (얘도 BIFF임) 에서 신인감독 각본상을 탔는데, 정말 신인+각본상 이 조합에 최적화 된 느낌. 갈 길은 멀어보이지만 언젠가 좋은 감독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일본의 홍상수가 되고 싶은 건가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만큼 세련되지가 못해서 보면서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어른들 연기는 대부분 괜찮았는데 좀 어린 축에 속하는 청년들이나 어린애들 연기가 영 별로였다. 캐릭터들이 확실한 편이라 그런지 주연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고, 특히 카린 역을 맡은 코시노 에나가 어찌 보면 정말 전형적인 캐릭터인데도 매력을 발산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초반부~중반부가 인상적임) 감독이나 편집이 다소 밋밋한 부분에서 주연 배우들이 조금 하드캐리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엄청 섬세한데 이상하게 거친 영화임.
일본인 친구 4명과 같이 갔는데, 나와 다른 한 명(女)은 별로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셋(男)은 좀 이상했지만 괜찮았다는 반응이었다. 불꽃놀이라든가 바닷가 같은 거 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꼈다는 말도 있었음. 그래, 너네가 집에 돌아가고 싶겠지...ㅠ_ㅠ 하지만 가장 격정적인 반응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는 저런 로맨스 같은 거 구경도 못했어!"와 "영화 못지 않은 드라마가 우리 랩에서도 있었어"였음. 이게 설레고 심쿵하는 로맨스냐고 하면, 음, 글쎄다.
아무래도 전체 줄거리가 한국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내가 써봄...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 혹시 영화 볼 기회가 있다면 줄거리를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혹시 보신 분 있으면 저랑 대화 좀 해봐요...
실제로 보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전혀 어렵지 않다. 캐릭터들도 확실하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쉽게 배열해뒀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분명히 인물들이 줄거리에 나열한 것보다 더 많고, 이곳에 쓰지 못한 각종 세심한 디테일들도 영화에 결을 더해줄망정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목표의식이 비교적 뚜렷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처음엔 뭐 이런 영화를 골랐나하며 일본 영사관의 무능함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뭐 나름 고심해서 고른 것 같기도 하다. 혹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상 편집을 좀 살펴보고 싶긴 하다. 딱히 눈에 띈 건 없었지만 말이다.
음악은 좋음. 여름 냄새 물씬 남.
앞서 말했지만 상큼한 청춘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조금 핀트가 안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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