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자 (2009)




여행자 / Une vie toute neuve (A brand new life) 

감독: 우니 르콩트

출연: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 설경구, 문성근, 박명신 등등



기말 페이퍼를 완벽한 미완성의 글로 냈다.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도저히 내용을 채워넣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내용과 문장의 공백마다  말줄임표로 도배를 해뒀다. 항상 떨어지는 글의 퀄리티에 노심초사했지만, 이번엔 그저 미완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나 송구스럽다. 


하지만 이미 장시간 좌탁에서 글자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생각하기도 싫었고 암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야겠다 싶었다. 무심코 들어간 아마존 프라임에 추천영화가 떴고, 이것저것 뒤지던 와중 이 영화까지 왔다.


사실 여행자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봤다. 알았으면 이미 지친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을까 싶지만서도.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자신이 잘 아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생각을 했다는 점의 힘은 정말 놀랍다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보면 볼 수록 무척 영리한 영화면서도, 정말 좋은 조합을 만난 영화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영화의 큰 줄기는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빛날 수 있었던 것에는 바로 작은 디테일들과 주변의 여러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아는 큰 줄기에 살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흡입력을 가진다.


좋은 조합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카메라 연출,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부분이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복잡한 기교를 부리는 도구가 아니라, 정말로 주인공과 고아원의 원생들을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살아있는 그 어떤 무언가라는 느낌을 준다. 일관되게 주인공 진희의 눈높이에서 접근하면서, 동시에 간섭이나 "난 너를 이해해" 의 경계를 넘지 않는 노련함이 잘 어우러져있다. 


이는 음향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각종 음악이나 사운드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영화 속 현장의 소리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소리만으로도 오후의 고아원 운동장의 느낌 같은 것이 전달될 정도로 말이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노래를 변주해서 활용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음향도 상당히 일관성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지 않은 것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연기 하나하나가 정말 빛이 났지만, 무엇보다도 주연을 맡은 김새론 양의 연기의 폭과 깊이는 전대미문 수준. 김새론 양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따뜻한 인간미가 존재하는 고아원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한결 진중하면서도 비교적 가볍게 (경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짓눌리는 무거움의 반의어다.) 풀어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한국어 제목 선정 또한 재미있다. 






  Comments,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