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기획이 있어서 보고 왔다.
A Trip Through China
1916
Benjamin Brodsky
DCP, 108 min
스틸컷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행사 공지에서 빌려왔다. 1
이 영화는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계 미국인이 만든 영화로,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중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촬영한 기록영상들을 모아 편집한 영화다. 어디까지가 직접 촬영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들의 촬영본을 따온 것인지 좀 불분명하다고 듣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그가 만든 것이 맞다. 브로드스키는 이민자로, 때로는 폴란스키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영문 이름은 Brodsky니 브로드스키가 맞는 이름이겠다.
원래 세일즈맨이자 투자가에 가까웠던 그가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의 권유로, 중국 현지에서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를 중국의 서양인들에게 상영했을 뿐 아니라, 따로 강연가를 고용하여 미국에서도 순회 상영을 다녔다고 한다. 당시 1917년에 공개 상영된 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공개상영되는 자리였다고 한다. 2년 후였으면 100주년 기념이었을듯...뿐만 아니라 싱가폴 등 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상영을 했지만 뭐 좀 기록들이 불분명한 것 같다.
무성영화여서 따로 음악가 두 분이 동행하셔서 라이브로 신디사이저 반주를 해주셨다. 우리가 본 버전은 2013년 대만의 국가전영중심, 한국으로 치면 영상자료원 같은 곳에서 복원한 버전이다. 총 108분으로, 홍콩에서 시작하여 광저우, 수저우, 항저우, 상하이, 티엔진, 북경까지 여행하며 찍은 영상들을 모은 작품이다. 중간중간 코멘트들 (무성영화니까 화면상 글자로)이 등장하는데, 몇몇은 관찰을 전달하는 내용이었지만 나름 재밌게 하려고 만든 코멘트들도 있었다. 복원본의 한계인지, 원래 편집이 그랬는지, 혹은 당시 상영되었을 때엔 강연가와 본인이 함께 영상을 동반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초반을 제외하고는 장소들이 마구 섞인다. 그러니까 화면상으로는 천진에 있어야하는데 홍콩이나 광저우의 장소들이 나온다거나, 앞에서 쓴 화면들을 자꾸 재활용한다거나. 아마도 브로드스키의 사고와 관심사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 맥락이 조금 부족한 오늘날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들도 없잖아 있었다.
완결된 글을 쓰기 귀찮으므로 여기서부터 짤막한 감상.
1.
아는 장소들이 나온다는 것이 무척 재밌었다. 특히 홍콩의 경우 대부분의 장소들은 거의 다 대략적으로 분간이 갈 정도였고, 생각보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100년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심천을 떠올리며 아, 나도 저렇게 역사가 좀 긴 곳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음을 부정하기가...ㅋㅋㅋ 뭐 홍콩 땅덩어리가 작은 탓도 있겠지 싶다. 상하이의 와이탄의 경우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경의 전문과 자금성이었다. 전문의 경우 그 모습이 정말 완벽히 그대로 싱크로가 되어서 그 익숙함에 놀랐고, 자금성의 경우 익숙하지 않아서 놀랐다. 궁내야 익숙할지 몰라도, 자금성을 둘러싼 풍경이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 천안문광장을 비롯한 각종 정치중심기구들이 없는 고궁 주변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정말 담장 너머로 궁궐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천안문 광장의 모습이 없는 고궁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2.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언급이 제법 있었다. 미국 관객들에게 상영했을 때, 그들이 당시 미국에 대거 유입되었던, 동시에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쿨리들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애초에 당시 미국인들은 중국의 쿨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영상 자료는 어떤 상상을 촉발시켰을까? 진짜 제일 궁금했던 부분.
2-1.
'노동'에 대한 감독의 입장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화의 소재로 삼는다. 물론 이는 '중국인'이라는 몸의 존재를 통해 바라본 노동이므로 한층 더 복잡하지 않았나 싶다.
3.
앞서 언급했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미친듯한 재활용의 향연이었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4.
친구의 말대로 영화 속에는 강과 바다, 물 위의 교통수단(다양한 배)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한 편으로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영화를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성) 영화 카메라가 담기에 좋은 그림'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5.
영화는 근본적으로 러시아계 미국인인 그의 호기심, 그리고 미국의 관객들이 가질법한 호기심을 만들고 풀어나간다. 그곳의 서양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곳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 말이다. 다소 파편적이어서 깊이는 부족할지 몰라도, '본다'라는 감각을 가장 충실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영상 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브로드스키가 중국을 세계의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언어적, 비언어적 코멘트들이 흥미로웠다. 예컨대 다른 나라들을 언급하거나, 미국과의 차이를 언급하는 방식들 말이다.
6.
몇몇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촬영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카메라 앞에 세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를 들어 원세개 아들 세명이 인사 몇 번씩 하는 장면... 요즘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세계에 카메라라는 물건과 인간이 관계하던 방식이 궁금하다. 물론 카메라라는 물건을 쥐고 있던 백인/미국인의 존재 또한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사형수의 형집행장면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었고 (결국 난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가림 ㅠ), 그 장면에서 또 한 번 놀란 것은, 누군가가 카메라 앞을 얼쩡거리는 바람에 안보이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카메라 찍게 비켜라고 손짓하는 장면이었다. 사형장면을 영화 카메라에 담는다고?!
7.
영화를 보다보니 예전에 한국에 대한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났다. 독일 신부였던 베버가 촬영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라는 무성영화였는데, 배급용 영화, 즉 상업영화적 성격이 강한 브로드스키의 중국 영상과는 달리 영상기록의 성격에 가까웠기에 마냥 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같이 영화를 본 중국인 친구가 100년 전 칭화대의 모습이 나오자 사진을 찍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나에게 익숙한 무언가의 100년 전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신기해할 것 같다.
- http://filmstudiescenter.uchicago.edu/events/2015/trip-through-chin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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