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1)
중국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국에서 지내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들이 있는데, 재미도 있고 무언가 지금 당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 중 기억에 남는 것들 몇 가지만 나열해본다. 


*  한국은 중국보다는 민주적인 나라다

  생각보다 매우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물론 이 '민주'라는 단어가 갖는 어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생각은 든다만, 근본적으로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결정이나 좀 더 공개된 소통의 장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중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논한다면 공산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할지 모르나 (이는 냉전과 분단현실에 있어서의 한국의 특수한 경험과도 관계가 있겠다. 원론적으로는 공산당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중국인들이 운운한 '민주'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공산당이라는 존재와 대척된다기 보다는 언론의 자유에 좀 더 초점이 갔다는 느낌이었다. 


* 한국은 남존여비 사상이 덜 하지 않느냐. 무려 여성 대통령도 있지 않느냐

  아마도 이것은 작년인가 제작년 쯤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중관계가 좀 괜찮았을 때의 언론플레이와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들으면 20대 지지율이 무려 9%나 되는 우리 대통령님(아직 임기가 반이나 남았다...)을 여성 인권 신장의 상징으로 삼는 데에 많은 무리가 있음을 지적하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귀찮아질 정도로 생각보다 제법 자주 듣는 말이다. 


* 한국은 그래도 여기보다는 살기 좋지 않은가. 

  이는 최근 중국의 치솟는 물가와 열악한 노동환경, 사회불안, 환경문제 등과 결부되어 언급되곤 한다. 예컨대 '적어도 한국은 음식은 더 안전하지 않은가'라고 말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유난히 음식안전 문제를 많이 언급한다. 진짜 일상적으로 위생卫生이라는 말을 쓴다.) 중국인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할 때, 한국 사람들의 불안한 노동환경에서 겪는 비참함과 스트레스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여태껏 나에게 이 말을 했던 사람들은 교육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한, 농촌에서 도시로 상경한 이주공민들인 경우가 많아서 그냥 입을 다물고 한다. 내가 그분들의 삶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헤아릴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 한국은 드라마를 참 잘 만든다. (김수현)

  예전에는 성형수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그 소리를 별로 못 들었다. 그 보다는 '한국은 드라마를 잘 만든다' '한국 여자들은 예쁘더라' '한국 남자들은 잘생기지 않았느냐' 등의 말을 제법 듣는다. 작년에 히트 친 별그대 덕분에 사람들 열심히 만나고 다닐 땐 거의 1일 1김수현 수준이었다. 옛날에는 장나라를 언급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김수현이 원톱. 정작 그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는 고통받음... 얼마나 대박을 쳤는지, 이는 비단 한드에 관심을 가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등의 젊은 여학생들 뿐 아니라 중학교까지만 졸업한 농민공부터 시작해서 전문대를 졸업한 아저씨, 택시 기사 등등 별별 사람들이 다 얘기를 꺼낸다... ㅎㄷㄷㄷ  


*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건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말 통하는 외국인들에겐 다 묻는 질문인 것 같다. 지금은 광동 지방에 있으므로 그냥 홍콩의 예를 들면서 중국의 경제력 등에 대해 사회적인 공포(?)와 반감이 있다는 정도로만 말한다. 과거에는 수교관계가 없고 이데올로기 진영이 달라서 중국을 잘 모르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했다면, 최근에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도 있고 또 한국에 워낙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인식도 많이 변했다고도 부연설명하곤 한다. 


* 결혼은 했니, 한국 사람들은 몇 살에 결혼하니

  왠지 무례한 질문 같은데 중국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보니 진짜 조금만 오래 대화하면 이 소린 꼭 듣는다. 물론 대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이 질문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묘하게 다르다. 예컨대 나이 좀 있으신 어머니뻘 아주머니들은 거의 초반부터 이 질문이 들어온다. 결혼하지 않은 내 손을 잡고는 아이고 어쩌니, 어서 좋은 사람 찾으렴하고 호들갑 떠는 것도 이젠 놀랍지 않다... (심지어 미국 차이나타운에서는 그래, 어서 미국인과 결혼해서 시민권을 따렴...하는 소리도 들어봤다...) 남자 분들은 이 질문이 나올 때까지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등장했던 것 같다. 오히려 학력이 높거나 외국인을 많이 만나본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 결혼하냐고 물을 때 30대 앞뒤라고 하면 늦다고 놀란다. 그냥 요즘엔 이 모든 과정을 건너 뛰기 위해 내가 선수 칠 때도 있다. 중국 사람들은 몇 살에 결혼하나요, 왜 그리 빨리하나요 (호들갑)


* 한국은 어디가 놀러가기 좋니

  보통은 제주도라고 답한다. 가끔 외국에 대한 감이 정말 없는 분들, 예컨대 정말 깡촌에서 올라온 분들 등은 한국을 미국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한국 도시는 중국 도시랑 더 비슷하게 생겼다고 친절히 알려주곤 하는데,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참 궁금하다. 


* 중국에는 미래가 없다 혹은 중국 젊은이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보통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이 소리를 종종 하곤 한다.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의 현실을 실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본과 한국이 밟아간 전철을 중국도 슬슬 밟아가는 걸까 싶기도 하다. 후자의 말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에 가까운데, 삶의 팍팍함이라든가 사회적 발전 등에 대해 논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여러가지 맥락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음에 좀 더 상술하는 것으로...


이 밖에도 그냥 한국에서 할 만한 질문들도 듣곤 한다. 너 학위 과정은 도대체 얼마나 걸리니라든가... 뭐 물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밥 먹었니'. 이상하게 상해선 별로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 오고나서 진짜 인사 대신 듣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도 다들 밥 먹었냐고 물어본다...


아마 나와 성별과 나이, 지위 등이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다른 얘기를 듣지 않을까 싶다. 또 누구와 대화를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고 말이다. 언제 중국을 연구하시는 다른 선배가 이와 관련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과연 선배는 보통 초면인 중국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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