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국경절을 맞아 긴 휴일이 생겼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도 볼 겸 해서 항저우에 한 3일 정도 잠깐 다녀왔다.
구구절절 쓰면 쓰는 나도 보는 사람도 지겨울테니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만 나열해봄.
1. 국경절에 항저우 가는 것은 미친 짓임.
특히 서호(西湖)와 영은사(灵隐寺)는 사람 뒤통수만 보다가 왔다.
영은사 부지 입장구역
영은사 경내
서호에서는 사진 찍을 엄두도 못냈고 시내에선 만차+교통 체증 때문에 버스를 탈 수가 없어서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래서 서호 간 날 20 km 넘게 걸었다 ㅋ
2. 영은사는 입장료가 두 번임.
말 나온 김에 영은사 한 마디 더.
영은사 일대에는 무림산 비래봉, 연화봉 등 일부 구역, 영은촌, 영복사 등 여러 구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 입장할 때 입장료 한 번 내야함. 참고로 위의 사진이 영복사.
그리고 영은사 자체에 들어갈 때 또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한다. 사람이 많았다, 절이 엄청 크다 등등 이외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은사 입장티켓를 넣고 게이트를 통과하면 기계에서 "아미타불"이라고 말한다....
비래봉 (飞来峰), 연화봉(莲花峰) 등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항저우에서 이 계단들 오른 게 최대의 실수였다고 생각함. 길도 안 좋고 볼 것도 없는 와중에 낚여서 올라가는 관광객은 많다. 경치 그 딴 것도 없다. 그냥 볼 게 없음. 차라리 동네 뒷산 산책 가는 게 훨배 낫다.
3. 중국식 자본주의 노답...
2년 전인가 항저우에서 G20 열렸을 적 장예모(짱이머우张艺谋)가 서호에 "인상서호"(印象西湖)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솔직히 말해 빛공해나 다름 없는 이 유료 불빛쇼를 위해 공연시각이 다가오면 해당 구역에 검은 천을 두른다.
서호가 마냥 좁지도 않지만 상당히 요지에 검은 천을 둘러 다른 사람들은 물 구경 하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것도 무슨 개인이 소유한 호수도 아니고 항저우의 랜드마크인 서호인데....
아주머니들 몇 명이 검은 천을 세우고 있는 작업반이랑 말다툼 하는 것도 보았다.
이쯤 되니 장예모 꼴보기도 싫음.
영은사 쪽에 위치한 서호 안쪽 호변을 갔는데 (지도를 보니 아마도 서리호西里湖 쪽은 것 같다) 사람은 없고 새는 많고 풀벌레 소리 낭랑하고 해지는 풍경은 멋져서 기분이 좋았다.
다른 곳들은 사람이 너무 많음.
4. 와이포지아 (外婆家) 처음 먹어봤다.
중국여행 한국블로그에 보면 와이포지아 얘기가 꼭 나와있던데 사실 와이포지아(혹은 외할머니집 정도 됨...)는 항저우 요리 식당이다.
서호변의 외할머니집....이 컨셉임.
그래서 항저우에 도착하니 친구가 바로 와이포지아에 데려가줘서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와이포지아를 먹어봤다.
가성비는 정말 독보적이긴 하더라. 우리는 달랑 두 명이라서 냉채(冷菜)를 포함해 요리 세 종류와 밥 두 그릇, 맥주 한 병만 시켰다.
참고로 가운데에 있는 생선 튀김은 송슈위(松鼠鱼)라고 해서 직역하면 다람쥐...생선인데 비교적 잘 알려진 강소성 요리인 것 같다.
아마 생선살을 튀긴 모양이 다람쥐 털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새콤달콤한 소스에 생선튀김인데 맛 없긴 좀 힘들지.
가지는 그냥 무난하게 채소 하나 먹으려고 시켰고, 오른쪽은 산마(山药)에 계화꽃(桂花) 소스를 뿌린 것인데 시원하고 향긋해서 입맛 돋구기 좋다.
항저우에 가니 도처에 계화꽃으로 만든 식품과 기념품들이 널려 있었고, 길에도 계화꽃이 잔뜩 펴있었다. 계화꽃 진짜 향그러움.
음식이 아주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정말 싼 축에 속해서 만족. 다만 앱으로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좀 짜증났다. 항저우는 앱 주문만 가능한 곳이 지나치게 많다...
5. 항저우의 비밀주점...!
첫 날 밤,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하러 나섰다. 친구는 나를 데리고 웬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뒷골목에 홀연하게 빛이 보이는 한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킹오브파이터 97의 네오지오 오락기 한 대가 놓여있었다.
친구가 오락기 앞에 섰다. 나는 반가움에 오락이나 한 판 하려는 걸까 하며 오락기로 다가갔다. 친구가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오락기 오른쪽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 벽 뒷쪽으로는 위로 향하는 계단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 봤지만 이 계단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건물 안 팎을 뒤져보아도 말이다.
친구가 계단을 올랐고 나는 조금 긴장한 채 친구를 뒤따랐다.
계단을 오르니 정말 멋진 바가 나왔다. 이 바에는 메뉴도 없어서 그날 그날 마시고 싶은 종류의 맛이나 음료 등을 주문하면 바텐더들이 뚝딱 하고 한 잔을 내어준다. 벽면에는 수백 병의 다양한 리큐어, 술 등이 도열해 있었고 우리가 자리잡은 좌석 옆 장식장에는 손님들이 킵해두고 간 듯한 여러 위스키가 늘어져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꽤나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시간이 늦어지자 손님들이 한둘 늘어났고, 느지막한 시간에는 제법 만석이었던 것 같다.
아마 친구가 직접 데려온 게 아니면 영영 볼 일 없는 그런 술집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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