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환영받고 있는 한한(韩寒)이라는 작가가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학교를 때려치웠고, 여러 소설들을 발표했고, 나름 훈훈한 외모로, 그리고 최근에는 딸바보 노릇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고 한다. 계속 크다보니 음악도 하고, 영화도 찍고 (작년의 후회무기后会无期 영화가 한한 감독), 요즘엔 레이싱을 한다고. 뭐 대충 여기까지 들으면 어떤 인물인지 알 것도 말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무튼 최근에는 이 사람이 개업한 식당이 인기가 많다고 해서 친구랑 먹으러 갔다.
식당의 이름은 무려 Nice Meeting you 很高兴遇见你. 진짜 말 그대로 나이스 투 미츄.
우리 앞에 무려 16테이블이나 있었다...배고파서 혼났다...
내부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뭐랄까, 좀 괴랄하다. 벽에는 찰리 채플린의 영상이 흐르고 있고, 그 주변엔 미국 50개주의 자동차 번호판이, 카운터 쪽 벽에는 한한이 레이싱 때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레이싱복이 유리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내 친구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무슨 박물관 만드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그곳에 가본 다른 친구의 말로는 벽쪽에도 무슨 뭐지 싶은 문구들이 적혀있었다고. 그 밖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것이 흡사 카페 같았다. 식탁은 제법 있어보였다.
아, 그리고 또 찍지 못한 것이 메뉴판! 메뉴판에는 중국어와 영어로 음식 이름이 적혀있다. 영어 이름의 경우 대부분 그냥 평범한 요리 이름들인데, 중국어 이름들이 좀 빡세다. 예컨대:
나름 이곳 식당의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두부 요리 : 你没吃过我的豆腐. 직역하자면 너는 나의 두부를 먹어 본 적이 없다....지만, 사실 吃豆腐란 남자가 여자를 성희롱...한다는 의미도 있다.
차가운 순두부에 새콤한 칠리새우 소스 같은 것을 올린 건데, 생각보단 괜찮았다. 왠지 집에서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가 레시피 좀...
이것은 영어로는 페스토 소스를 버무린 버섯 링귀니 정도로 해석되겠지만, 중국어로는 森女系罗勒菌菇意面으로, "모리온나계 바질 버섯 파스타"다. 모리온나는 일본에서 유행해서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하는 화장법으로, 마치 숲에서 나온 것처럼 청초하고 꾸밈 없는 수수한 화장법을 의미한다... 뭐 이렇게 들은 것 같다. 친구는 내게 아오이 유우가 모리온나의 대표라고 거듭 강조를....
그래서인지 아주 맛이 은은한 것이, 뭔가 거부감은 없고 고소한 것 같으면서도 무슨 맛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이상한 파스타였다. 추천은 못하겠고,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도대체 뭘 넣은 건지 알아보기 위해 한 번 더 먹어볼 듯... -_-ㅋ
즉흥적으로 시켰는데 밥과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그리고 고기는 죄다 비계여서 친구가 조금 분노했던 것 같다.
메뉴 이름은 도저히 모르겠다. 나중에 영수증 뒤져봐야지...
두부 요리 다음으로 인기를 구가한다는 오리고기 퀘사디야. 北京味儿的亚馅饼. 무슨 풍자가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뭐 무난무난한 맛이었다. 좀 더 맛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자, 우리가 시킨 메뉴를 보면 각이 나오겠지만... 우리는 이날 포크, 숟가락, 젓가락 죄다 사용했다. 무슨 일본식, 이탈리식, 중국식, 멕시코식 메뉴를 다 먹은 기분... 하나하나가 그리 나쁘진 않지만, 메뉴를 시킬 때 라인업을 좀 잘 고려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점원들이 음식 갖다줄 때마다 이 긴 이름들을 다 외우면서 주는데 참 마음이 그랬다...ㅋㅋㅋ
튀긴 닭고기 주면서 "별에서 온 닭고기(来自星星的炸鸡,아마도 요즘 중국서 유행하는 한국식 치킨)" 같은 어이없는 이름이라든가, 음식 갖다 주면서 한한의 소설 이름을 읊고 있다는 것이 참... 재미난 아이디어긴 하지만 그래도 참 기분이 묘했다 ㅋㅋㅋ
아무튼 재밌는 경험이었다. 가격대가 좀 있는 편이라 언제 또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음식도 크게 나쁘지 않고 선택폭이 넓다면 넓은 것이 장점이려나.
한한이라는 사람의 소설은 안 읽어봤지만, 슬프게도 식당을 다녀온 후에도 별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구 어딘가 > 중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의 기록 - 면점왕광장 面点王广场 (0) | 2015.09.21 |
---|---|
코코넛 닭 샤브샤브와 광동식 솥밥 (0) | 2015.09.21 |
중국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0) | 2015.08.12 |
상해 예원 (0) | 2015.05.08 |
나를 분노케 했던 상해 예원의 남향만두 (0) | 201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