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을 오갈 때 늘 아메리칸 항공을 탄다. 그저 시간대가 좋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인데...
아메리칸 항공은 기체가 상대적으로 낡았고 인플라이트 프로그램도 영 엉망이라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 창가석을 선호하는 나에게 좌석 밑의 미디어 박스는 헬... 가뜩이나 좁은 좌석인데 발 뻗을 곳이 줄어든다. 물론 나는 신체건강하고 돈 없는 대학원생이므로 한국에 오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함.
하지만 이번에 매우 운이 좋게도 아메리칸 항공을 일본항공 코드쉐어 편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내가 아메리칸을 타는 것이지만 아메리칸이 아니야!
원래 일본항공도 아메리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승무원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다는 것과, 기내식이 좀 더 내 입맛에 맞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뭐 좌석 등에서 큰 차이가 없었는데, 작년인가 제작년쯤 일본항공이 기내를 뜯어고치면서 상황은 반전...
이번에 탑승했던 일본항공. 보잉 777-300ER.
비행기 기내 촬영하는 것을 까먹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JAL 기내 잡지에도 좌석의 두께를 줄여 레그스페이스를 확보했다고 되어있는데, 실제로 체감되는 공간이 굉장하다. 미국 갈 때 다시 AA 탈 걸 생각하니 벌써 멀미가...
비행기 탑승 후 음료수와 간단한 스낵이 나왔고, 곧이어 점심이 나왔던 것 같다. 치킨과 뎀뿌라가 있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뎀뿌라 선택. 미소 국물도 따로 내어준다. 샐러드는 그저 그렇고, 저 발사믹 소스는 매우 짜므로 적당량만 먹을 것을 추천. 과일은 뭐 그냥 과일이고, 햄과 참치샐러드도 햄과 참치샐러드 맛.
기내식에서 뭐 크게 바라지 않는다. 바삭한 튀김옷 이런 거 바라지 않고 그냥 맛있으면 장땡. 일식 답지 않게 간도 적당히 짜지 않고, 적당히 달달하다. 채소들 배합도 무척 좋고, 진짜 신의 한수는 밥. 찹쌀로 지은 밥인데, 이게 일식에서 뭐 드물거나 한 건 아니지만 찹쌀이 일반 백미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점에서 기내식이 찹쌀인 건 정말 신의 한 수. 비빔밥 같은 것에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국내 항공에서도 밥에 찹쌀을 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간 먹은 기내식 중 베스트 쓰리에 꼽힐 듯. 참고로 이때 나는 아침 점심 다 굶어서 매우 배고픈 상태였다...ㅋㅋㅋ
하지만 우동은 완전 망함. 뭐 있으니까 먹는 건데, 면이 아니라 무슨 굳은 가래떡 꺾어 먹는 기분. 예전에 아시아나인가 대한항공에서도 소바 먹어봤는데, 아직 국수로는 JAL은 좀 멀었다...
참고로 사이드 메뉴에 대한 꼼수? 함정?이 하나 있다. 나는 '아시안 메뉴'인 뎀뿌라를 시켰기 때문에 참치샐러드와 햄이 좀 뜬금 없었는데, 옆자리 서양식인 치킨을 시킨 미국인은 이 우동 때문에 좀 멘붕했을지도.
JAL에서 좋았던 것은 미리 그림메뉴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샐러드. 아예 와쇼쿠로 밀어부칠 거면 샐러드 드레싱도 오리엔탈이나 일식에서 자주 나오는 그걸로 안 되겠니...ㅋㅋㅋㅋ저 발사믹 소스가 싸우전 아일랜드보단 낫지만 그래도 너무 짜다...
디저트는 하겐다즈 바닐라.
이상하게 도착지인 나리타도 미국도 낮시간대인데 다들 창문 덮개를 내려놓고 자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급 스튜어디스의 방송! 바깥에 알래스카를 지나가는데 맥킨리 산이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고. 갑자기 기내가 웅성거리며 다들 덮개를 올렸다.
사실 산맥 사진 자체는 더 멋진 걸 본적도 있는데, 반쯤 얼은 강이 굉장히 멋있었다. 옆의 할머니는 계속해서 어느게 맥킨리 산이냐고 묻는다. 내가 어떻게 알아....
곳곳에 사람들이 서서 창밖을 감상 중이다. 비행 중 맥킨리 산맥을 보고 싶다면 기체 북쪽으로 앉기를....
이것은 저녁. 나를 화나게 했던 실망스러운 메뉴. 주니까 먹는다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먹었다. 그냥 들이밀면 들어가는 맛.
내가 이코노미석을 찬양한 본격적인 이유.
1. 매 좌석마다 USB를 이용한 충전기와 핸드폰 거치대가 있다. 다만 당신의 폰이 5인치 이상의 대형스크린 폰이라면 거치대 이용은 좀 무리일 듯 합니다. 아이폰 크기임. 나의 오래된 옵G는 간신히 들어갔다.
2. JAL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그새 또 업그레이드 되었다. TV쇼는 좀 볼 게 없지만 뭐 그래도 화면도 크고 터치도 잘 먹고 훌륭하다. 나는 이 날 두 번의 JAL 비행기를 타며 테트리스의 신이 되었다.
3. 리모콘이 앞좌석에 스토우 되어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보통 팔걸이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러면 옆 사람한테 자꾸 양해를 구해야해서...
4. 넓은 레그룸. 지인짜 넓다. 나처럼 키 작은 사람은 간간히 다리도 쭉쭉 뻗을 수 있다. 그리고 몹쓸 AA처럼 미디어박스가 좌석밑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5. 영화를 내리 네 편이나 보느라 써보지는 못했지만 타는 순간 흥분했던 것은 다름 아닌 매 좌석마다 존재하는 콘센트!!!!! 일본/미국의 11자 모양 플러그만 지원하지만,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다!!!!! 꺄 이건 진짜 감동이었다. 다만 좌석 두 개에 걸쳐 위치해있기 때문에 옆좌석에 승객이 탑승하면 양해 좀 구해야할듯.
물론 JAL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JAL의 새로운 기체플랜이 적용된 장거리 노선에나 해당되는 것이고, 한일 노선 같은 단거리는 어림없다...ㅋㅋ (심지어 한일노선의 소라벤은 맛도 없어짐... ㅠㅠ)
아아아아 JAL도 AA만큼 가격후려치기를 시전하면 내가 AA 마일리지 갖다 버리고 JAL로 갈아탈텐데 ㅠㅠ
가격 앞에 장사 없다.... 보통 코드쉐어로 일본항공 타면 AA보다 수백불 더 내야하는데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다. 만약 AA보다 한 100불 정도 더 내고 JAL을 탈 수 있다면 왠지 탈 것도 같다. 물론 이번 탑승 경험은 옆좌석이 비었기 때문에 퀄리티가 월등히 올라간 측면도 있지만서도, 그간 느껴보지 못한 하드웨어의 위력을 느꼈다. 이제 AA와 JAL의 태평양횡단 노선 간 기체의 격차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듯... AA가 표를 싸게 푸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인가...
아무튼 JAL이 아주 파산까지 갔다가 발버둥 치는 덕에 나는 덕보고 삽니당
이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의 날개도 좀 타보고 싶다. A380을 타보고 싶은데 가격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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