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요약: 라디오를 듣다가 어느 노래에 꽂혔는데, 진짜 역대급으로 힘들게 찾아냄. 그래서 사설이 길다.
본문삽입한 유툽 비디오가 뜨지 않는 것 같아서 별개로 링크 달아둠:
알리푸 미라지한 (어쿠스틱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6IF4R3G0eUI
알리푸 미라지한 공식 MV: https://www.youtube.com/watch?v=--3SSRq-KKc
자취 생활이 길었기 때문일까, 삶의 공간에 소리가 없으면 좀체 견디기가 힘들다. 그래서 방구석에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음악이나 라디오를 튼다. 최근 몇 달 간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홍콩 라디오 RTHK-2 채널이 현지 시각 일요일 새벽에 송출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홈페이지에서도 들을 수 있고 각종 라디오 앱으로도 쉽게 들을 수 있는데, 한밤 중의 프로그램 답게 차분하거나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노래들을 많이 틀어주기도 하고, 한국에서 좀체 접하기 어려운 노래들을 배울 수 있어서 무척 즐겁게 듣고 있다. 게다가 시차 덕분에 북미에 있을 때엔 일요일 아침을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시작할 수 있어서 참 좋다. (RTHK 홈페이지에 가면 재방송 청취도 가능하다: https://www.rthk.hk/radio/radio2/programme/keepuco)
그런데 어제 노래를 한창 듣고 있는데 완전 취향 저격의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나라 말인지 조차 분간이 안 가는 가사였다. 보통 RTHK 채널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광동어, 보통화, 영어, 한국어, 일본어 정도기 때문에 DJ 의 멘트를 못알아들어도 적당히 가사를 검색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알아낼 수 있는데, 이 노래만은 정말 예외였다. 몇 번이고 돌려들어도 어느 노래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심지어 러시아어인가 싶어서 러시아어를 하는 친구에게 클립까지 보내줬는데 러시아어가 아니라는 확답을 받았다. DJ가 가수의 이름을 말하긴 했는데, 애초에 광동어로 외국어 이름을 말하는 거라서 엄청 까마득했다. 구글 번역기도 무슨 언어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샤잠이나 사운드하운드에서도 검색을 못하는 것이었다. 어쩌지, 홍콩 친구들에게 좀 들어봐달라고 해야하나, 라디오 채널에 문의를 넣어야 하나.. 별 생각을 다했다. 그 정도로 세게 꽂혔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번만 더 잘 들어보자 하면서 라디오 채널 홈페이지에 올라온 녹음본을 다시 듣는데, 마지막에 노래가 끝나기 전에 DJ가 광동어로 멘트를 치는 것이다. 혹시 힌트가 있을까 해서 사전을 동원하고 최선을 다해서 들어보니... 알고보니 신장 위구르 출신의 가수였다! 아... 위구르어였구나... 그럼 당연히 검색이 될리가 없지.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멘트를 듣고 있으니 신장의 가수라며 잘생겼다, 찾아볼 사람은 이러이러한 글자를 검색해보라면서 가수 이름 쓰는 법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광동어 어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게는 진짜 어려웠는데, 그래도 용케 찾아냈다! 바로 알리푸(阿力普)라는 가수로, 주로 인디 쪽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보통화로 부르는 듯하며, 대만에서도 활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려 터키를 다녀온 영상도 봤지만 대륙 쪽 활동 영상들이 많이 보여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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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지한은 신장 지역 위구르족의 전통 민요 중 하나다. 알리푸의 어쿠스틱 버전 외에도 수많은 버전들이 존재하며, 유투브에 "Mirajihan"이라고 검색하면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전체 가사 번역은 뒤지고 뒤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어느 모녀에 대한 이야기인데, 딸의 이름이 미라지한이라고 하며,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라는 설명을 접했다. 딸이 시집을 간 건지, 죽은 건지, 여행을 떠난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추측컨대 아마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들이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내가 구할 수 있는 가사라곤 알리푸 미라지한에 등장하는 중국어 해석 버전 밖에 없어서... 그거라도 해석해서 올려본다. 난 어쿠스틱 버전에 꽂히긴 했지만 알리푸의 뮤비 버전도 꽤나 인상적이고 음악의 결이 또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나서 같이 링크를 올려본다. 가사는 이 뮤비를 참고해서 작성함.
밑의 뮤비는 위구르어 가사 번역은 무딩(穆丁)이 작성했고, 크레딧을 보아하니 촬영 장소는 카스인 것으로 보인다. 무딩이라는 이름 역시 위구르어 이름의 음차일 가능성이 높... 촬영 회사 자체가 베이징 회사라서 약간 놀랐다. 이런 영상이 2017년의 중국 대륙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자막은 또 번체라서 혼돈 그 자체. 한참 전세계가 신장 위구르족 탄압에 대해서 난리를 치던 시기에 중국 관영 통신에서 신장 음악가들로 영상 만든 곳에 나오기도 해서... 아 모르겠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노래가 좋음. 역시 돌고돌아 클래식(?!)으로 가는 이유가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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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지한 - 알리푸
(중국어 중역본)
너는 이렇게 가버리는 거니
나를 여기에 홀로 남겨두고
아, 나의 미라지한이여
내 마음은 떨고 있네
너는 그리도 너 스스로만을 생각하는구나
아, 나의 미라지한이여
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 검은머리방울새와도 같아
목소리가 갈라져 잘 울지도 못하는구나
아, 나의 미라지한이여
다가오는 그림자도 너가 아니구나
나의 검은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지만
아, 나의 미라지한이여
종다리야 어디 있느냐
뻐꾸기야 어디 있느냐
내가 사랑하는 이여 어디 있는가
다시 그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 나의 미라지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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