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 한 달 전 쯤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가끔 짬날 때 조금씩 읽어왔다. 그러다 어제 오늘 술기운에 괜히 기분이 좋아 집어 들어 단박에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아무래도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때문인지 특별히 긴장감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이 끝나고 역자의 글을 슥 살펴보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평소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분명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자극적인 형사 사건이 주축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분명히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왜 나는 장르를 읽어내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이 글에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다는 것이 이 글에게, 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글을 읽으며 독자들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작가의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또한 그 시선이 훈계라든가 가르침이 아닌, 편지와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 이러한 형식들을 소설 그 자체에 잘 녹여내어 서사의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을 정말 높이 사고 싶다. 반드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혹은 자극적인 이야기들만이 능사는 아니구나, 이 글을 빚어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들었을까, 따뜻한 소설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될 수 있구나. (학문적 글읽기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시 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최근에 좀 성찰할 일이 있었다.)
사실 소설의 잡화점과 편지는 어떻게 보면 제법 진부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을 가만히 인내심을 갖고 엮어 냄으로써 어떻게 다른 글,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작가의 인내심이 정말 빛나는 글이다.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완급조절 또한 일품.)
영화나 리뷰글 등이 아닌 온전한 글로서, 소설로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접해서 무척 기쁘다. (번역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제법 유려한 모양.) 작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다.
섬세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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