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1)
이 시국에 미국에서 자동차 산 후기 - 1

#1. 결심 과정

그간 시카고에서는 쭉 뚜벅이로 지내왔다. 물록 한국이랑 비교하면 볼품없지만, 그래도 시카고 권역은 버스, 기차, 지하철 등 여러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이다. 물론 원하는 곳을 마음껏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버가 도입된 이후로는 대중교통에 우버를 끼얹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이곳저곳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텍사스로 이사오게 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구입을 결심하게 되었다. 텍사스행이 결정된 이후에도 한동안 자동차는 웬만하면 구입하지 말자!로 마음이 많이 간 상태였다. 하지만 텍사스 땅 한 번 밟아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ㅎ 

 

이사오게 된 동네는 대도시면서도 정말 눈물날 정도로 대중교통이 빈약하다. 그래도 억지로 어떻게든 대중교통으로 오피스까지 통근가능한 곳에 집을 구했으나... 집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차가 없으면 출퇴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카고처럼 주변에 공원이나 각종 근린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존재하는 식당, 가게, 마트 등도 죄다 대형 주차장을 갖춘 쇼핑몰 형태라 걸어갈만한 곳이 아니었다. 인근 카페까지 걸어서 1분컷, 홀푸즈 4분컷, 공원 5분컷, 호숫가 10분컷에 살던 내게는 너무나 낯선 이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인을 위한 인프라가 너무 빈약했고 (나무그늘조차 없는 한줄짜리 시멘트 인도 극혐...) 기후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래저래 불 타는 거는 매 한가지...

 

 

#2. 중고차 vs 신차

 

2-1. 예산은 얼마?

그간 집카 같은 거나 간간히 운전해왔지 특별히 차를 가져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집카도 사실 잘 운전 안해서 장롱면허나 다름 없었다. 이쯤되면 면허가 있는 게 놀라울 지경. 그래서 중고차를 사는 것으로 대충 마음을 먹었다. 이게 2022년 4월 말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Craigslist와 Facebook Marketplace 앱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대충 1-2주 살펴보면서 시세나 분위기를 파악해볼 심산이었다. 목표는 2010년 전후에 생산된 도요타 프리우스. 연비도 좋고 마일이 높아도 대체로 잘 굴러간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예산을 5-10K 정도로 잡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참혹했다... 5K 밑으로는 도저히 쓸만한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자동차 잘 모르지만... 5K 밑으로 올라오는 차들은 부식정도가 심하거나 박살난 걸 수리한 소위 "salvage title" 자동차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금액대가 내려가니 허위매물이 너무 말도 안되게 많았다. 그렇게 그냥 살펴보겠다는 기간동안 늘은 것은 거짓말 탐지능력, 흰머리, 주름, 스트레스, 식성,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예산을 더 올려잡아 15K로 잡았다. 왜 15K였냐면... 내 통장에 저금되어 있는 금액이 작고 귀여운 이유도 있지만 일리노이에서 중고차 거래시 납부하는 세금을 고려한 부분도 있었다. 일리노이의 경우 15K 미만으로 개인간 중고차를 거래할 경우에는 자동차 연식에 따라 비교적 적은 액수의 세금을 납부하면 된다. (자세한 금액 산정은 RUT-50이라는 서류를 참고하면 된다.) 예를 들어 최종거래가가 15K 미만의 10년된 차라면 일리노이에는 115불만 납부하면 된다. 물론 쿡 카운티에 속한 시카고 시에 산다면 거기에 카운티랑 시티 택스가 더 붙지만, 그래도 10년쯤 된 차는 카운티에는 90불, 시에는 50불을 납부하면 끝이다. 하지만 15K가 넘는 순간 택스가 850불대로 뛴다. 물론 이는 개인간 거래에만 적용되는 세율이다. 딜러에게 중고차를 살 경우에는 딜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에 일리노이 (6.25%) +카운티 세금 (1%)을 더해서 7.25%라는 금액을 내야한다. 만약 10K 자동차를 산다면 세금으로만 750불이 나간다.

 

2-2. 사기꾼들의 향연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애초에 딜러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중고시장에 개인인척 하면서 광고 올리는 딜러놈들도 너무 많고 그냥 사기꾼들도 진짜 개 많다.나중에는 지쳐서 여기저기 메시지도 보내봤는데 아무리 거르고 걸러도 반 이상은 사기꾼이었다. 그리고 판매하는 차량에 접근하는 딜러들도 많은 모양인지, 멀쩡한 판매자 중에서도 내가 딜러인지 여부를 계속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던 2-3일 만에도 온갖 군상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중고차를 살 때는 무조건 vin을 받아서 도난 및 사고 이력과 타이틀 상태, 그리고 수리이력을 살펴보라고 인터넷의 온갖 유저 선생님들이 알려주셨다. 카팩스는 돈이 드니까 일단 무료로 가능한 범주 내에서 vin을 받아 체크하고 있었다. 도난여부와 타이틀 상태는 ncib에서 (다만 일일 개수 제한이 있는 모양), 사고나 수리 이력은 대충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각종 vin check 웹사이트 (주로 vehiclehistory.com과 vincheck.info를 봤던 것 같다)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 정도만 해도 아무나 하나 걸려라고 내던지는 사기꾼들이 걸러진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기꾼놈은 Clean title이라고 나에게 박박 우겨댔으나 ncib에서 조회해보니 salvage title인 차량이었다... ㅎ

 

다음으로는 일리노이 차량 한정이긴 한데, 일리노이 주 Secretary of State 웹사이트에서 vin 넘버를 조회하면 차량 등록 및 타이틀 상태를 조회할 수 있다. 여기서도 한 두 어명 걸러졌다... 한 명이 상태가 상당히 좋아보니는 프리우스를 팔고 있어서 연락을 해봤다. 하지만 vin넘버를 받아서 사이트에 조회해보니 자동차가 애초에 일리노이에 등록도 안되어있길래 도대체 차는 어딨냐고 물어봤더니 피츠버그에 있고 판매가 결정되면 자기가 몰고 온다고 했다. 차를 보여줄 생각도 없이 팔 생각이었다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소유권자(owner)라고 했는데 일리노이 주 DB에서 조회해보니 은행 소유였다... ㅎ 이걸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더 이상 내게 답장을 주지 않았다.

 

그 외에는 그냥 계속 살펴보거나 연락해서 대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여러 번 해보니 제일 좋은 건 직접 통화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해보는 거 같았다. 자동차를 팔게 된 계기도 물어보고, 수리이력도 알아보고, 또 구매 전 점검(pre-payment inspection, 혹은 ppi)이 가능한지도 물어보고 하면 도움이 된다. 쓸데없이 사연이 긴 경우, 느낌이 이상한 경우, ppi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만나는 장소가 영 수상한 경우 등등은 아예 구매선상에서 제외하는 걸 추천한다. 혹시 올라온 사진이 폰에서 캡처된 사진이거나 화질이 묘하게 떨어지면 그냥 창을 닫자. 페이스북 마켓의 경우 판매자 프로필을 눌러볼 수 있는데, 판매자 위치가 판매하는 도시가 아닌 경우도 그냥 창을 닫자. 그리고 가급적이면 판매지역을 잘 살펴보고 치안이 거시기한 곳이면 피하자. 이런게 중요한 이유는 남들이 올린 사진을 도용해서 허위 광고를 올리는 사기꾼놈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돈만 뺏기면 그나마 다행인데 괜히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서 맞거나 다치면 안되잖아... 

 

나도 온라인 중고시장에 잠복한 사이 몇 번이고 사기꾼들 게시글을 목격했다. 자동차 판매자가 시카고에서 판다해놓고 정작 본인은 일주일 전에 러시아, 동유럽, 서아프리카 등등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 사진을 올린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음...ㅎ 한 번은 좀 오래된 프리우스가 꽤나 좋은 가격에 올라와서 주인에게 연락을 해봤다. 하지만 올라온지 1시간도 안되었는데 이미 차량이 팔렸다고 해서 무척 슬펐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사람이 똑같은 차량 광고를 올린 것을 봤다. 판매자에게 연락하면서 차량 사진을 굉장히 유심히 봐서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실제로도 사진이 도용된 경우였다. 신고를 넣었지만... 이미 페이스북 마켓을 넘어서 Craigslist, Offerup 등의 사이트에서 똑같은 사진도용 매물을 봤다.

 

 

2-3. 미쳐 날뛰는 중고가

사기꾼 거르고 허위매물 거르느라 이미 멘탈이 가루가 된 상태에서 결정타를 날린 건 미쳐 날뛰는 중고가였다. 도저히 프리우스 만으로는 매물수가 충분하지 않아 10년 이쪽저쪽 된 코롤라, 시빅, 캠리까지 모두 고려사항에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말이 안됐다. 10년+에 마일리지가 100k를 훌쩍 넘는 세단이 10K는 물론이고 심지어 15K 이쪽저쪽에서 팔리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CarMax도 찾아봤는데 애초에 15K를 밑도는 가격의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 와중에 Carvana는 일리노이에서 딜러 라이센스 정지된 시국이었음...ㅋ) 아니... 그 엄청난 금액을 주고 차를 산 다음에 수리비가 또 몇 천불 깨질 것 같은데... 이런 차들을 사라고?

 

 

 

 

#3. 신차를 사자... 신차를 사자...!

상황이 이쯤 되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분명 이 미친 중고차 시장은 언젠가 내려갈 듯했고, 그때가 되면 내가 쏟아부은 돈이 그냥 휴짓조각이 될 게 너무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잔고장에 시달리면 거기에 드는 시간이나 돈도 감당할 자신이 업었다. 그래, 그 돈이면 차라리 5-6K 더 붙여서 깡통 신차를 사자! 어차피 빚의 나라 미국인데 빚내서 갚으면서 신용점수나 쌓지 뭐!

 

예전부터 하우스푸어는 몰라도 왜 사람들이 카푸어가 되는지 이해를 잘 못했는데, 내가 딱 그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10K-15K라는 복불복 중고차 뽑기에 투자할 자신이 없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카푸어가 되는구나...

 

 

다음 편에서는 저처럼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에서의 신차 구매 과정을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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